13화. 잡지가 망하려나

by조하나




다음 호 광고 지면을 짜다가 확정된 페이지 수를 세어봤다. 이 정도면 광고가 아니라 부고에 가까웠다. 지난달까지 연락하던 브랜드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이직했다는 말과 함께 후임자 연락처도 없이 끊겼다. 3년째 매 호 광고를 내던 편집숍이었다. 다른 한 곳은 이번 분기는 어렵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옆자리 동료가 화면을 넘겨다보더니, 요즘 다 이래요, 온라인으로 다 넘어갔잖아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게 이 바닥에서 제일 무서운 말이었다. 몇 달 전 충무로 골목에서 봤던, 셔터를 내린 인쇄소가 떠올랐다. 그땐 남의 부고를 구경하듯 지나쳤다. 이번엔 우리 차례일 수도 있다는 걸 반 페이지짜리 광고면이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편집장이 나를 불러 미국 버번 위스키 브랜드 얘기를 꺼냈다. 광고는 아니고, 신제품 소개를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가 뭘 뜻하는지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협찬이라는 단어 대신 콜라보라는 단어가 쓰였고, 원고료 얘기는 아예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내가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신다는 거였다.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벌게지고 심장이 뛰는 체질이라 아예 입에도 안 대는 편이었다. 시음 안 해도 자료만 보면 다 쓸 수 있잖아, 편집장이 말했다. 못 쓸 것도 없었다. 자료 사진과 시음 노트를 앞에 놓고 나는 마셔본 적 없는 맛을 문장으로 지어냈다. 오크 향, 부드럽게 넘어가는 목 넘김, 겨울밤 벽난로 앞에 앉은 것 같은 온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겨울밤 벽난로 앞이었다. 마셔본 적 없는 술을 마신 척 쓴 건 처음이었다. 내 삶이 그렇게 가짜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원고를 편집장 메일로 넘기고 나서 손을 한 번 바지에 문질렀다. 안 묻은 걸 닦아내는 기분이었다.



오후엔 표지 일러스트를 그린 아티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너머로 텔레비전 소리가 얕게 깔려 있었다. 실물로는 두 번 만난 게 전부였는데, 목소리는 그림보다 훨씬 조심스러웠다. 작업비 얘기를 꺼내기 전에 나부터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이번 호는 예산이 좀 빠듯해서요, 대신 크레딧 크게 넣어드릴게요. 좋은 게 좋은 거잖아요. 대표가 만든 말을 내가 옮겨 전했다. 혀끝에서 비린내가 났다. 혹시 다음 호엔 좀 나아질까요, 그가 물었다. 그럴 거예요, 아마. 나는 그렇게 반쯤 거짓말을 했다. 수화기 너머가 잠깐 조용해졌다. 네, 뭐, 그러시죠. 이번엔 그냥 이름 알리는 걸로 할게요. 그 짧은 대답에 체념이 섞여 있었다. 몇 초쯤 더 이어진 침묵 끝에, 저 이거 하려고 며칠 밤 새웠거든요, 라는 말이 흘러나왔다가 곧 아니에요, 로 지워졌다. 전화를 끊고도 한동안 수화기를 도로 내려놓지 못했다. 내려놓으면 그 침묵까지 내가 만든 게 확정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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