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짊어진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왕관

넷플릭스 《젠틀맨: 더 시리즈》 시즌 2

by조하나

《젠틀맨: 더 시리즈》 시즌 2에 대한 스포일러 있습니다.




부러진 몸으로 텅 빈 들판을 기어가는 남자가 있다. 슈트는 진작 걸레짝이 됐고, 얼굴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뭉개졌다. 시즌 2의 첫 장면이 이 남자로 열린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조금 안심했다. 지난 글에서 나는 에디 호니만이라는 인간이 젠틀맨과 갱스터 사이 어디쯤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고 썼다. 그런데 시즌 2는 아예 그 균형을 부수는 데서 시작한다. 균형은 이야기가 아니다. 붕괴가 이야기다. 그리고 이 붕괴는 추상적인 죄바카라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응징이다. 감옥에 갇혀 있는 한 남자가, 그 안에서도 여전히 밖의 모든 것을 제압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려고 내린 벌이다.



이 붕괴는 화면에서도 다르게 드러난다. 촬영감독 스티븐 머피는 감독 애런 크리비와 함께, 요즘 유행하는 부드러운 초점 대신 세트의 깊이와 색감을 또렷하게 살리는 쪽을 택했다. 음악을 맡은 크리스 벤스테드는 가이 리치의 요청으로 시즌 1보다 무겁고 내밀한 음색을 골랐다. 그러면서도 이탈리아의 햇볕 아래 에디의 슈트는 더 헐렁하고 화려해지고, 수지는 이제 버킨백을 든다. 화려함은 늘어났는데 그 화려함을 비추는 빛은 어두워졌다. 이 모순이 시즌 2 전체의 온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젠틀맨: 더 시리즈 시즌 1 리뷰>





지난 시즌에서 나는 물었다. 왜 프레디도 스탠리도 갖지 못하는 '젠틀맨'이라는 타이틀을 에디만 가질 수 있는가. 시즌 2는 그 질문에 훨씬 잔인한 방식으로 답한다. 젠틀맨의 자격은 혈통이나 매너가 아니라, 자기가 만든 죄를 피하지 않고 끝까지 짊어질 수 있는가에 있다는 것.



지난 글에서 나는 이 드라마를 동물원에서 정글로 진화하는 이야기라고 불렀다. 시즌 1의 에디는 정돈된 말투와 몸짓, 영국식 티를 마시는 모습 뒤에 야수성을 숨기고 있었을 뿐 아직 동물원의 예절을 완전히 벗지는 못한 상태였다. 시즌 2에 이르러 그 진화는 마침내 완성 단계에 들어선다.



시즌 1의 에디는 귀족과 범죄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사람이었다. 시즌 2의 에디는 그 갈등을 완전히 걷어내고 자신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 그 세계관을 더 깊고 더 넓게 확장하는 사람이다. 갈등이 질문이었다면, 확장은 대답이다.








아버지를 향한 반란



보비 글라스는 에디를 대마초 범죄 조직의 세계로 처음 끌어들인 사람이다. 시즌 2에서 에디는 그에게 반기를 든다. 영국에서 대마초 합법화 법안을 통과시켜 불법 시장과 합법 시장을 동시에 키우겠다는 계획이었다. 보비는 정확히 그 반대를 원했다. 법이 통과되지 않도록 에디와 수지에게 신신당부했다. 오래된 세계의 질서는 비밀과 통제 위에 서 있었고, 그 세계를 합법의 빛 아래로 끌어내는 순간 자신의 왕국이 무너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에디가 이 반란을 시작하고, 수지를 끌어들인다. 둘은 의원을 매수하고, 에디는 직접 귀족의 자격으로 상원 의원이 되어 법안을 밀어붙인다. 보비 글라스의 세계 안에서 그의 언어로, 그의 규칙을 무너뜨리려 한 것이다.



지난 글에서 나는 터키 국경을 지키던 에디의 총이 조국을 위한 보호의 의무를 넘어 본능적인 권력욕을 드러내는 데 쓰인다고 썼다. 이 반란은 그 총구가 마침내 자신을 만든 사람을 향해 겨눠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보비 글라스는 감옥 안에서도 한 수 위였다. 그는 상황을 제압하고 에디의 뜻을 꺾는다. 시즌 2의 첫 장면, 죽도록 두들겨 맞고 들판에 버려진 에디의 모습은 바로 이 실패한 반란에 대한 보비 글라스의 응징이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이 드라마가 그리는 권력의 진짜 위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공작 작위도, 상원 의석도, 매수한 의원도 결국 종잇장에 불과했다. 감옥에 갇힌 몸으로도 바깥의 모든 판을 다시 짤 수 있는 사람이 진짜 왕이었다. 에디는 계층의 천장을 넘어서려 하지만, 그 너머에는 더 오래되고 더 견고한 보비 글라스의 질서가 버티고 있다. 보비 글라스가 자신을 만든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만든 사람은 언제든 부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에디는 몸으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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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과 아벨



성서에서 카인은 동생 아벨을 질투해 죽이고, 그 벌로 땅에서 쫓겨나 영원히 떠도는 자가 된다. 시즌 2는 이 오래된 이야기를 프레디의 두 번째 살인으로 다시 쓴다. 프레디는 이미 시즌 1에서 한 번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 빚 독촉에 몰려 마약 딜러 토미를 직접 쐈고, 에디는 그 죄를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워 덮었다. 토미의 형 가스펠 존은 진실을 알아채지 못한 채 물러났지만, 그 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갱생 센터에서 치료를 받던 프레디는 이 가스펠 존의 손에 다시 붙잡힌다. 상속 자격을 에디에게 빼앗긴 형 프레디의 원한을 가스펠 존은 교묘하게 이용한다. 급기야 프레디는 에디를 무너뜨리려는 음모에 가담한다. 겨눈 칼끝은 에디를 향했지만, 정작 쓰러지는 건 에디의 아내 벨라다. 겨눈 자리와 맞은 자리가 어긋나는 순간, 카인과 아벨의 서사는 다시 한번 원래의 논리를 잃는다. 죄는 있는데 벌은 엉뚱한 사람에게 간다. 보비 글라스에게 응징당한 에디가 채 일어서기도 전에, 이번엔 형의 오래된 죄가 새로운 얼굴로 그를 찾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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