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호 회의에서 편집장이 신인 밴드 하나를 밀었다. EP도 안 냈는데 벌써 커뮤니티가 시끄럽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니 답이 간단했다. 멤버 둘이 카이스트래. 요즘 그런 게 먹혀. 대표가 거들었다. 공대 나온 애들이 대기업 안 가고 밴드 한다니까 신기해하잖아. 못 간 게 아니고?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편집장이 말을 이었다. 제목에 학교 이름만 박아도 한 번은 쳐다봐. 그 밴드 음악이 어떤지는 회의 내내 아무도 묻지 않았다. 인디는 학벌에서 자유로운 세계라고들 하는데, 인디 씬 관객들도 무대 위 사람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는 기어코 알아냈다. 나만 해도 밴드 소개에 서울대 출신은 써봤어도 고졸이라고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도현이 고졸이라는 걸 떠올렸다.
그날 밤에도 합주를 마친 도현을 보러 갔다. 멤버들이 다 갔다는 카톡이 오면 그때 갔다. 멤버들이 있을 때 간 적은 없었다. 도현은 나 같은 사람이 자기랑 만난다는 걸 걔들이 곧이곧대로 안 믿을 거라고 여겼고, 나는 나대로 어디 가서 그 얘길 안 했다. 왜 하필 그런 남자냐, 평강공주병이냐, 그런 소릴 들을 게 뻔했으니까.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이런 식이었다. 남들이 보기에 나보다 처지는 남자를 골라 퍼주고 챙기는 연애만 해왔다. 도현이 처음도 아니었다. 왜 매번 그 자리로 돌아가는지는 나도 몰랐다.
지하 계단을 내려가자 눅눅한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방은 냉골이었다. 계란판 방음재 몇 장이 떨어져 덜렁거렸고, 앰프 위엔 빈 캔이 쌓여 있었다. 도현이 케이블을 감다 말고, 처음 와보죠, 하고 물었다. 내가 끄덕이자 뭘 보여줘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앰프를 괜히 밀어놓고 접이식 의자를 펴서 내 쪽으로 돌려줬다. 여기 진짜 아무것도 없어요, 하면서도 목소리엔 어딘가 들뜬 게 있었다. 구석에 전기난로가 하나 있었는데 도현이 그걸 끌어다 내 발치에 놓고 스위치를 올렸다. 오렌지색 선이 하나만 겨우 달아올랐다. 이거 세 개 중에 하나만 나와요. 나머지 둘은 진작 죽었다고 했다. 나는 그 한 줄짜리 온기에 발을 갖다 댔다. 냉골에서 데워지는 자리가 딱 발등만 했다.
발 시려요, 하고 도현이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겨울에 여기서 어떻게 연습해요. 익숙해지면 안 추워요. 손끝이 벌겋게 언 채로 하는 말이라 하나도 안 믿겼다. 나는 가방에서 핫팩을 하나 꺼내 흔들어 건넸다. 마감 때 쓰려고 넣어둔 거였다. 도현이 그걸 두 손으로 감싸 쥐더니 이런 거 처음 받아봐요, 하고 멋쩍게 웃었다. 별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게 이상했다. 나는 여태 아무도 이 사람을 챙기지 않았다는 게 더 신기했다.
우리는 한동안 시답잖은 얘기만 했다. 어느 지하 합주실이 더 추운지, 앰프가 왜 자꾸 죽는지, 겨울엔 어디서 밥을 사 먹는지, 그런 거. 말수가 적은 도현이 그날따라 자꾸 말을 붙였고, 나는 그게 싫지 않아 계속 받아줬다. 도현은 케이블을 감으면서도 콧노래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계속 흘렸다. 무대에서 목숨 걸고 부르던 목소리랑 같은 목에서 나오는 거라고는 믿기지 않는, 무심하게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나는 그걸 들으면서 이 사람이 무대 위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좋다는 걸 알았다. 무대 아래로 내려온 도현 안에 겨우 발 하나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그 생각을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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