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점도 부족한 나라
우리가 무덤으로 등 떠민 사람
2025년 6월 4일 오후, 대한민국의 새 대통령은 업무 첫날 용산 집무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꼭 무덤 같다."
인수위도 없이, 취임식도 없이 출근한 대통령이었다. 컴퓨터도, 프린터도 없었다. 전자 서명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니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으려 해도 인주 하나 없었다. 전날까지 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떠나며 볼펜 한 자루조차 남겨두지 않았다. 김건희가 넣은 주술 그림만 남았다.
나는 이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국가 권력의 정점이라는 그 화려하고 강력한 자리가, 이재명에게는 무덤 같은 텅 빈 방 하나였다는 사실. 우리는 기어코 이 사람을 무덤으로 등 떠밀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방에 도착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하나씩 되짚어보면, 이 텅 빈 방은 우연이 아니다.
끝없이 거절당한 사람
이재명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 전, 끝없이 거절당한 사람이었다. 2017년 당내 경선에서 문재인에게 밀렸고, 2021년 경선에서는 경쟁자인 이낙연 캠프가 제기한 의혹들이 형체를 바꿔 검찰과 보수 언론, 국민의힘의 손에 들어갔다. 2022년 본선에서는 윤석열에게 0.73퍼센트포인트라는 역대 최소 격차로 졌다. 한 진영 안에서 만들어진 흠집이 다른 진영의 무기가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게 마치 '이재명 죽이기'라는 미리 짜인, 여야 합작 각본처럼 돌아갔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고 그가 민주당 당대표가 된 뒤에는 한 주에 네 번씩 법정에 서야 했다. 대장동, 백현동, 성남FC, 위례신도시, 위증교사, 쌍방울 대북송금. 2023년 2월 27일, 그의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부쳐졌다. 재석 297명 중 찬성 139표, 반대 138표. 간신히 부결됐지만, 민주당 소속 169명 전원이 표결에 참여했는데도 반대표는 138표뿐이었다. 최소 30여 명이 이탈했다. 그리고 그해 9월 21일, 두 번째 체포동의안은 찬성 149표 대 반대 136표로 아예 가결됐다. 당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소속 정당 다수의 이탈로 실제 통과된, 한국 정당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건이었다.
2024년 1월, 부산에서 그는 테러를 당해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그해 12월 3일 밤, 윤석열이 불법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 하룻밤이 대한민국의 운명과 이재명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계엄이 해제된 지 열흘 남짓 지난 12월 16일, 민주 진보 진영이 적자라 주장하며 진정한 대선 후보로 염두에 두던 조국은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이 확정돼 수감됐다.
조기 대선을 한 달여 앞둔 2025년 5월, 조희대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유죄 취지로 돌려보냈다. 상고심을 항소심 이후 36일 만에 선고한 속도였다.
그러니까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 건, 이 모든 배제를 뚫고 스스로 쟁취했다기보다, 그때 그들에게 남은 사람이 그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켜 민주당 기득권의 계획과 타임라인이 어그러지지 않았다면, 이재명은 결코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지 모른다.
내란 정국에 치러진 조기 대선, 민주당이 그를 원해서 세운 게 아니었다. 별의별 이유를 다 대며 안 된다고 막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나라가 만신창이가 되자, 이제 와서야 '옛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심정으로 떠넘긴 자리였다.
이재명이라는 '예외'
이재명은 소년공이었다. 가난이 무겁고 깊어 학교 대신 공장에 출근했다. 일하다 팔이 기계에 눌리는 사고를 겪어 장애를 얻었다. 그는 정규 교육과정을 밟지 못한 채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갔다. 이 이력은 한국 슬롯에선 평생 그를 따라다니며 두 얼굴로 소비된다. 그가 일을 잘하고 성과를 내면 '그런 출신 치고는 제법이네'가 되고,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역시 근본이 그러니까'가 된다.
슬롯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계급이 돈으로만 재생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말투, 몸짓, 취향 같은 문화자본이 있고, 이 자본을 갖지 못한 사람이 어떤 자리에 오르면 슬롯는 그를 예외로 처리한다. 성공은 그의 것이 아니라 우연이 되고, 실패는 그의 것이 아니라 본성이 된다. 부르디외는 이것을 '상징폭력'이라 불렀다. 지배계급의 기준을 자연스럽고 정당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피지배계급 스스로 그 기준으로 서로를 평가하게 만드는 폭력.
이건 대한민국 서울대 출신 엘리트 기득권 카르텔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슬롯 구성원 다수가 무의식중에 나눠 갖고 있는 감각이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은, 매끄럽지 않은 말투를 가진, 이력서에 빈틈이 있는 사람이 성취를 이루면 우리는 놀란다. 그리고 그 놀람 안에는 이미 '원래는 이럴 자격이 없었다'는 예외라는 전제가 숨어 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직전, 정치 원로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그에게 "정치보복을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그 안에는 가난하고 고생한 사람은 마음에 앙심을 품고 있으리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복수할 줄 알았던 사람
정치보복을 하지 말라던 그 조언이 무색하게도, 이재명은 2022년 대선 때부터 김종인, 이상돈, 윤여준 같은 보수 원로들을 찾아다니며 통합정부론을 앞세웠다. 취임 후에도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공격적인 탕평 인사를 이어갔다. 자신을 죽이려 했던 검찰, 자신을 체포하려 했던 정당, 자신을 파기환송으로 끌어내리려 했던 사법부. 그 모두를 향해 그는 칼 대신 손을 내밀었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람들의 편견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게도 살면서 쌓인 나름의 자격지심과 방어기제가 있다. 이재명이라고 그런 게 없을 리 없다. 다만 그는 그 에너지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 쓰기로 선택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깊은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귀함과 천성적인 밝음이 있다.
나를 물리적으로 죽이려 한 사람들을, 나를 검찰과 카르텔로 겨눴던 세력을 나라면 용서할 수 있었을까. 아니, 나는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재명은 웃으며 손을 내민다. 사람이 저렇게 꼬여 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 한 인간에 대한 존경으로 남는다.
이재명이 앙심을 품을 거라며 다들 걱정했던 그 사적 복수와 피해의식, 정작 그걸로 국정을 파탄낸 건 다른 사람이었다. 윤석열은 연세대 교수의 아들로 태어나 대광초, 충암중, 충암고를 거쳐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사법시험은 아홉 번 만에야 붙었지만, 그 아홉 번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넉넉한 집안 덕이었다. 평생을 검사로 살다 대통령이 된 그가 계엄의 밤 내세운 명분은 종북 반국가세력 척결이었다. 가난하게 자란 사람은 마음에 앙심을 품고 있으리라던 그 오래된 짐작은, 결국 가장 유복하게 자란 사람의 손에서 현실이 됐다.
왜 100점이 아니냐고 따지는 사람들
한국만큼 자주 대통령 지지율을 조사하는 나라도 드물다. 매주 발표되는 숫자가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1퍼센트 2퍼센트의 등락에도 온 나라가 술렁인다. 지난해 12월 62퍼센트였던 지지율은 올해 6월 51퍼센트로, 8월 말에는 취임 후 처음으로 30퍼센트대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세제 개편을 둘러싼 혼선, 대법관 후보자 임명 거부를 둘러싼 위헌 논란, 그리고 유시민의 발언을 둘러싼 여권 내부 갈등이 겹친 결과였다.
부동산은 사실 전 국민의 문제도 아니다. 서울 인구는 930만 명, 그 파급이 미치는 수도권 전체를 다 합쳐도 2600만 명, 전 국민의 절반 정도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먼 이야기다. 또한, 지금의 공급 부족은 대부분 수년 전 인허가와 착공 단계에서 이미 결정된 구조적 결과다. 2026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전년 대비 40퍼센트 수준으로 급감할 전망인데, 이건 지금 정부가 아니라 그 이전에 뿌려진 씨앗의 문제다. 정바카라을 바꿔도 실제 입주까지는 최소 3년에서 5년이 걸린다. 씨를 뿌린 사람과 수확하는 사람이 다른데, 청구서는 지금 이 사람 앞으로 온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언론에서 '부동산'과 '세제 개편'에 대해 부정적으로 호들갑을 떨면, 집 한 채 없고 세금이 오를 일도 없는 내가 괜히 서울 강남 다주택자 걱정을 하게 된다. 정부가 무언가 굉장히 잘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국정 지지율이 떨어지면, 정부는 정바카라 기조를 선회하거나 주춤할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대한민국 상위 10%만 좋은 꼴이다. 우리 공동체 모두가 고질적인 슬롯 문제라 꼽는 부동산, 세제 개편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부동산과 주식은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일이다. 12월 3일 밤, 나라가 계엄으로 뒤흔들리던 그 순간에도 어느 익명의 코인 주식 단체방에서는 폭락한 자산을 향해 '줍줍'하며 쾌재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가가 흔들려도 각자의 계좌 창만 들여다보는 이 장면이야말로, 지지율을 주식창처럼 여기는 태도의 축소판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런 사람들의 욕망마저 만족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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