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텔로 점철된 세상에서,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하며 살아야겠다
최근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올린 몇 개의 유시민 비판 영상 이후 흥미로운 피드백을 많이 받고 있다. 사실 나는 블로그에 유시민과 김어준, 조국에 대한 비판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나에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부 독자들이 내 글을 운전할 때 들을 수 있도록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줬다. 그래서 내가 써 온 수많은 글들 중 몇 개를 영상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영상들이 바이럴되고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갑자기 쏟아진 관심에 나는 조금 얼떨떨하다.
최근 메일을 하나 받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레거시 언론 기자를 거쳐 오래전 국회의원까지 지냈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우리 또래 세대 모두 유시민 '형님'의 민낯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다들 이런저런 비겁한 이유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젊은 세대가 용기 있게 해줘 고맙고 부끄럽다."
출판 관계자 친구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영상이 왜 이렇게 주목받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하는 나에게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유시민은 출판계에서 말 그대로 '언터처블'이야.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낸 최고의 출판 상품이자 성역화된 인물이라 아무도 그를 비판하지 못해. 출판계엔 유시민을 숭배하는 사람들도 많고."
서울대, 레거시 언론, 국회의원이라는 이력을 가진 사람이 왜 그 오랜 세월 유시민이라는 사람의 민낯을 알고 있었음에도 비겁하게 침묵했을까. 출판계 사람들은 대한민국 슬롯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바카라들을 펴내면서도 정작 그들의 세계 속 권력자인 유시민에 대해선 비판하지 못할까.
그들의 이야기가 뒤늦은 고백처럼 읽히기 시작했다.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으려고 말하지 않았다는 고백, 자신 역시 그 침묵의 대가로 무언가를 누려왔다는 자백.
이 편치 않은 마음은 그들만을 향한 게 아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내 목소리를 빌려 자신의 침묵을 정당화하려는 것 같았고, 그 앞에 서서 내가 용기 있다고 박수를 받는 게 온전히 옳은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특별히 용감해서가 아니라, 잃을 게 적어서 말할 수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도 함께 왔다.
왜 다들 알면서 말하지 못했을까. 이 질문이 바로, 지금부터 쓸 모든 문장의 출발점이다.
카르텔은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다
국카스텐과 검정치마가 이름을 크게 알리기 전 소속사가 그들의 코 묻은 공연비, 앨범 판매 비용 등을 야금야금 횡령하고 있었을 때 나는 인디잡지 기자였다. 홍대 인디씬의 한복판에서 나는 그 사건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당시 홍대 인디 레이블 업계는 다 조용했다. 왜냐. 자기들도 똑같이 해먹었으니까. 인디 아티스트를 비슷한 방식으로 부려온 다른 레이블들이, 누군가를 고발하는 순간 자기 발등을 함께 찍는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들이 택한 건 집단적인 침묵이었다. 그 바닥의 산업 관계자, 공연 관계자부터 기자, 평론가까지 모두 다 한통속이었다.
몇 해 뒤 잡지계의 어시스턴트 열정페이 착취나 포토그래퍼 어시스턴트 착취와 성비위가 폭로됐을 때도 같은 침묵을 봤다. 잡지사들은 모두 다 입을 다물었다. 수많은 청춘들을 '열정'과 화려한 패션계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기회'라는 이름으로 부려온 건 모두에게 해당되는 거였으니까. 공론화되는 순간 그 화살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걸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우리 모두, 동조자였든 방관자였든 결국 공범이었다.
이걸 보면 우리 슬롯에서 카르텔이 작동하는 방식이 선명해진다. 침묵은 비겁함이 아닌 자기 보호다. 한 사람을 고발하는 순간 자기 자신도 함께 고발되는 구조 안에서 집단적 침묵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다.
그 시절 나는 그걸 못 견디고 한국을 떠났다. 내가 특별히 정의감에 불타서가 아니었다. 그냥 내 성질을 내가 못 이겨서였다. 그 후로 한참 해외를 떠돌았다. 그런데 스타일만 다를 뿐 이 세상 어디든 인간이 모이는 곳은 다 마찬가지였다. 언어와 옷차림과 방식과 스타일만 조금씩 달랐을 뿐 어디에나 자기들끼리 지켜주고 감춰주는 판이 있었다.
그리고 이 카르텔은 권력의 구조, 즉 삼각형의 꼭대기에 앉아 있는 당사자가 직접 만드는 게 아니다. 그 주변 사람들, 즉 삼각형의 밑변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만들어주는 거다. 유시민이 자기 성역을 설계한 게 아니다. 그들 곁에서 침묵하고, 방어하고, 이득을 나눠 가진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그 성역을 지어준 것이다.
이건 비난이 아니라 관찰이다. 아주 서글픈 관찰이다.
그들이 사는 세상
2026년 9월, 서울법대 76학번 법조인 27명이 성명을 냈다.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사법권 독립을 단호히 지키라는 내용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사법 장악을 견제하는 것이 진정한 사법개혁이라는 논리였다.
'서울법대 76학번, 눈치 좀 챙기고 입 좀 다물어라.'
기사를 읽자마자 내 안에서 튀어나온 말이 그거였다. 본능적인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거부감이었다. 신물이 올라왔다.
이 76학번 서울법대 동문회는 조희대라는 한 개인을 지키려는 게 아니다. 자신들이 거쳐온 서울법대라는 관문과, 그 관문이 오랫동안 대한민국 슬롯에서 보증해온 권위, 그 자체를 '사법 독립'이라는 고결한 핑계로 지키려는 자기 방어다. 조희대가 흔들리면 그 관문의 신화도 함께 흔들린다는 걸, 서울법대 76학번 27명은 몸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 공동체의 이익이나 미래 따윈 안중에 없다.
서울법대 76학번, 57년생. 70년대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대학에 다니고 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사법고시에 패스해 법조인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그들이 자란 세상은 얼마나 좁았을까. 제대로 방황을 한 적도, 일탈한 적도, 사고친 적도 없이, 자유롭게 놀아본 적도 없이 엄마에게 맞으며 과외 받고 공부만 하다 서울대에 입학하고, 사법고시 패스 후 남의 인생을 재판하는 자리에 앉아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 세상 안에는 인간을 숫자로 매겨 서열화하는 것 말고는 다른 눈금이 없다. 자기보다 낮은 곳에 있는 삶을 볼 일이 없었으니 자기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안다. 그러니 눈치라는 게 있을 리 없다. 이건 개인의 성격이나 오만이 아니다. 한 번도 서열의 바깥에서 자신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서열 그 자체를 의심할 감각이 있을 리 없다. 성장 과정이 통째로 남긴 자기 객관화의 결핍이다.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는 오래전부터 자랑스러운 동문상과 부끄러운 동문상이라는 비공식 투표가 있었다. 서울대 익명의 동문이 진행한 비공식 투표였고, 대표성 논란도 있었다. 2020년 하반기 '자랑스러운 서울대 동문' 투표에서는 윤석열이 89퍼센트로 1위를 차지했다. 조국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 연속 부끄러운 동문 1위였고, 2021년에는 유시민이 부끄러운 동문 2위였다.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과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 한 사람들, 조국, 유시민, 조희대 등 모두 서울대를 졸업했다. '대왕 카르텔'은 승자와 실패자를 모두 자기 안에서 길러낸다. 대한민국은 현재 '서울대 기득권 카르텔'이라는 소수의 권력이 차지한 거대한 슬롯적 영향력을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가진 미약한 힘으로 대항하는 싸움이 한창이다.
그런데도 한국 슬롯는 여전히 자기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려 기를 쓴다. 우리 슬롯 곳곳의 학원가, 자정이 가까운 시각 빼곡히 늘어선 차들을 본 적 있는가. 그 안에서 부모는 온갖 화이트칼라 범죄로 대한민국 슬롯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는 기득권 카르텔을 성토하는 뉴스를 틀어놓고, 정작 그 카르텔의 관문 앞에 자식을 들이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 모순이 바로, 대한민국 카르텔을 지탱하는 진짜 힘이다. 카르텔을 비판하면서 카르텔의 혜택은 원하는 이중성. 왜 안 끊길까. 서울대라는 간판이 여전히 대한민국에선 가장 확실한 신분 상승과 안전망이기 때문이다. 이건 개인의 위선이 아니다. 슬롯 전체가 같은 잣대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군사정권과 압축성장 시대가 만들어낸 대한민국 입시 지옥이 여전히 명문대 입시반이라는 사교육의 이름으로 매일 재생산되고 있다. 간판만 갈아 끼웠을 뿐, 우리는 여전히 같은 문 앞에 줄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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