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세우스가 되고 싶었던 돈키호테 유시민

그의 산초는 어디에.

by조하나






프롤로그: 슬픔의 주파수



이태원 참사를 나는, 유럽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내가 살던 해외 열대 섬에서 라이브로 지켜봤다. 그날의 분위기, 공기의 색깔, 해변가의 습도, 사람들의 표정, 모든 게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들이어도 그 순간 나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한국인들끼리만 공명하는 어떤 주파수. 그 '슬픔의 주파수'를 혼자 감당하고서야 나는 알았다. 아무리 다른 나라 말을 유창하게 하고 다른 문화 속에서 편안해져도, 어떤 순간에는 결국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2023년,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결정했다. 이미 윤석열 정권이 엉망인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돌아와서 마주한 민주당은 더 엉망이었다. 정권을 뺏기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 '엉뜨' 켠 세단에 앉아 운전기사와 보좌관을 여럿 거느린 채 맛집을 나서며 튀어나온 배를 튕기고 이쑤시개를 굴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날부터 나는 민주당에 대해, 김어준과 유시민과 조국에 대해 한결같이 썼다.



그런데 요즘 들어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내가 써온 유시민 관련 글과 영상이 수십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유튜브를 켜면 쇼츠에 내 얼굴이 튀어나와 스스로도 흠칫 놀란다.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는 건가. 이재명 대통령 취임식 날, 나는 이렇게 써두었다. "김어준의 진영은 반년 안에 이재명을 죽도록 까기 시작할 것이다."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나는 그게 통찰의 문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때 내가 본 건 예언할 만한 미래가 아니라, 이미 정해진 인간의 습성이었다. 권력에 대한 특정한 태도, 이념과 진영과는 무관하게 반복되는 어떤 사람들의 몸짓. 그 몸짓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달라진 건 그 몸짓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숫자뿐이다. 그때는 진영 안에서 내가 배신자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같은 말과 글이 통찰이라 불린다. 하지만 이 사이 정말 변한 건 나의 눈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서 있는 자리다. 선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다르다. 유리한 자리에서 보면 배신이던 말이 불리한 자리에서 보면 지혜가 된다.



그러니 이건 내가 옳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언제 진실을 들을 준비가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진영이 이기고 있을 때는 내부의 경고음이 소음으로 들리고, 지고 있을 때는 그 소음이 갑자기 예언으로 들린다. 나는 그저 같은 소리를 계속 냈을 뿐이고, 그 소리를 알아듣는 귀가 상황에 따라 열렸다 닫혔다 했을 뿐이다. 세상이 나를 따라온 게 아니라, 세상의 필요가 내 목소리를 잠깐 지나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랫동안 유시민이라는 한 사람의 몸짓을 계속 지켜봤다. 흥미로운 건 유시민이라는 '인간'의 몸짓, 그 자체다. 왜 저렇게 하는가. 왜 저렇게밖에 못 하는가. 왜 똑같은 패턴을 스무 해 넘게 반복하는가.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있다. 유시민이 나올 때마다 매번 대응하지 말자고, 그냥 무시하자고. 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내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그에게 쓰는 게 맞는 건가.



그런데 아니었다. 유시민은 지금 멈출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가 나와서 두 시간을 떠들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이 그걸 받아쓴다. 무엇보다 <조선일보>가 가장 신났다. 대구경북 지역에선 "이재명 정부는 이미 끝났다"고 말한다. 정치 저관여층이나 중도층은 민주 진보 세력의 자중지란과 이기주의, 분열을 보고 있다. 20년 전 노무현의 편이라 자처하며 노무현을 가장 괴롭힌 이들을 다시 떠올린다.



유시민은 지금 열과 성을 다해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고 있다. 그렇게 이재명 정부의 입지를 좁히고 팔다리를 묶어 국정과 개혁의 동력을 꺼뜨릴 것이다. 대한민국 레거시 언론과 뉴미디어의 지면과 시간이 유시민을 다루는 대신, 지금 우리 슬롯에 정말 필요한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이야기로 채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유시민, 김어준, 조국으로 인해 치르는 대가와 기회비용은 얼마나 될까. 유시민은 그렇게 공동체의 관심과 에너지를 소모적인 논쟁 쪽으로 계속 끌어당긴다. 그가 그 생태와 구조를 모를 사람이 아니다. 행정부 장관을 지냈고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그걸 즐긴다.



그래서 나는 유시민에 대해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내 글의 동력은 가진 게 없어 잃을 것도 없는 나라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기득권에 바라는 것도 없으니 거칠 것도 없다. 그러니 그냥, 김대중 대통령이 말했듯 벽에 낙서라도 하는 심정으로 나는 계속 쓴다.



다만 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내 생각을 그저 스쳐 가는 수만 개의 의견 중 하나로 여겨주시라. 지나치게 동조할 필요도, 지나치게 반대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각자의 삶의 태도와 가치관과 경험으로 벼려진, 제각각 개성 있는 수만 가지의 생각들로 넘쳐나는 슬롯가 되길 소망한다.



이 글이 겨눈 유시민에게도 부탁한다. 부디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고 성찰하기를. 자신이 가진 그 거대한 영향력을 지나간 싸움을 되풀이하고, 같은 진영 지지자들을 편 가르며, 갈등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 대신 더 희망적이고 건설적이고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곳에 써주길 바란다.





초라한 자리에서 극진히 대접받는 권력자



얼마 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를 봤다. 한 사내가 궁전 문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는 한때 자신이 이곳의 주인이라고 믿었다. 오랜 항해 끝에 돌아왔지만 문은 낯설고, 마당에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이 가득하다.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문을 두드리며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계속 말하는 것뿐이다. 이 장면을 기억해두자. 우리는 결국 이 문 앞으로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틀 전, 유시민은 낯선 얼굴 둘 앞에 앉아 있었다. 한쪽은 최근 대통령 공소취소 거래설이라는 검증 안 된 이야기를 던졌다가 역풍을 맞은 전직 기자 장인수였고, 다른 한쪽은 기자 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이 유튜브 카메라 앞에서 먹방을 찍던 이명수였다.



장인수와 이명수, 그 둘은 유시민을 극진히 모셨다. 그를 "최고의 지성"이라 불렀고, "나오실 생각을 해주셔서 영광"이라 했고, 그가 보낸 노래를 오프닝 음악으로 걸었다. 그리고 유시민은 그 극진함 앞에서, 침팬지 슬롯학과 사기열전의 오등급 정치론과 열역학 제2법칙의 엔트로피까지 끌어와 두 시간 넘게 말을 쏟아냈다.



한때 그는 조갑제 같은 보수 논객과 백분토론에서 정면으로 맞붙던 사람이었다. 지금 그가 마주 앉은 상대는 서울의소리에서마저 잘린 이명수와, 자기가 던진 음모론에 자기 발이 걸려 넘어진 전직 기자 장인수다. 유시민의 화려한 언어는 그대로인데 그 언어를 받아 적는 그릇은 계속 작아지고 있다. 이게 이번 방송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다.







가장 영향력 있는 슬롯인 1위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또 한 번, 이미 역풍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지난주 발표된 《시사저널》의 202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유시민은 지목률 25퍼센트로 '3년 연속 가장 영향력 있는 슬롯인' 1위를 차지했다. 이국종, 손석희가 뒤를 이었고 김어준이 14.8퍼센트로 4위였다. 올 한 해 그가 유독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는 걸 감안하면, 이 순위는 그저 인기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슬롯는 너무 쉽게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든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세운 우상은 좀처럼 비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우상과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그 인물에게 투사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상을 비판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이 부정당하고 공격받는 일처럼 느껴진다. 방어기제가 먼저 작동하는 것이다. 25퍼센트라는 숫자, 그리고 이 사람이 이 정도 논란 속에서도 3년째 정상을 지킨다는 사실은,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왜 유독 거센 반발에 부딪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유시민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목소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결이 다른 두 갈래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쪽에는 유시민처럼 서울대를 나오고 한국 슬롯에서 이미 한자리씩 차지한 운동권 엘리트의 방어가 있다. 이들에게 유시민의 궤적, 감옥에 갔다가 지식인으로 재기하고 정치권 언저리에서 계속 발언권을 유지해온 그 서사는 자기 세대의 정당성과 겹쳐 보인다. 유시민이 흔들리면 자기 세대 전체의 이야기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한쪽에는 유시민의 학벌과 지적 권위 자체를 신뢰의 근거로 삼는 목소리가 있다. 내가 갖지 못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내 편을 들어준다는 감각. 예능으로 쌓인 친근함이 정치적 판단력에 대한 검증 없이 그대로 신뢰로 넘어가는 것도 이쪽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계층으로 보면 정반대인 두 갈래가, 완전히 다른 이유로 같은 사람을 붙들고 있는 셈이다.



내가 유시민을 정성스럽게, 조롱이 아니라 이해하는 방식으로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유시민이 하듯 똑같이 나도 그를 원색적으로 몰아붙이는 순간, 그 25퍼센트는 논증을 듣기도 전에 감정적으로 방어부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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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두 얼굴



JTBC 《썰전》과 tvN 《알쓸신잡》을 통해 유시민을 알게 된 대다수 한국 대중은 그 예능적 이미지, 똑똑하고 유머 감각 있고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주는 선생님이라는 인상을 그의 정치적, 비평적 권위와 별개로 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둘을 같은 무게로 받아들였다. 예능에서 보여준 호감이 정치 논평에서의 판단력까지 보증해준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가 쏟아내는 정치적 단정들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호감의 연장선에서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유시민이 현재 쏟아내는 말들엔 불안함이 역력하다. 그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과 변화 때문이다. 예전에는 그가 고전이나 학술 이론에서 인용을 가져와 대중 앞에 풀어놓으면, 원전을 직접 읽어본 적 없거나 바쁜 일상에 치여 읽을 엄두조차 못 내던 청중은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이든 열역학 제2법칙이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든 막스 베버의 바카라임윤리든, 그가 그 개념을 어떻게 비틀어 자기 논리에 끼워 맞췄는지 확인할 도구가 대중에게는 없었다. 그러니 그가 쥔 건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해석의 권력'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유시민이 나온 방송의 스크립트를 그대로 AI에 붙여 넣기만 해도, 그가 인용한 원문의 정확한 출처와 맥락이 곧바로 튀어나오고, 그가 원전을 자기 결론에 맞게 비튼 지점과 논리의 허점이 몇 초 안에 드러난다. 유시민을 비롯해 그동안 수많은 한국 슬롯 지식인들의 해석 권력을 지탱해온 정보의 비대칭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최근 들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평에서 점점 멀어져 감정적이고 주술적이고 비이성적인 언어로 옮겨간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필연적 실패', '문명에서 야만으로', '대통령이 나를 싫어하는 거예요' 같은 말들은 검증 가능한 명제가 아니라 주술적 바람이고 개인적 감각이다. 이성적 논리나 근거를 대면 반박당할 수 있지만 개인적 바람과 감각은 반박당하지 않는다. 해석 권력의 토대였던 정보 비대칭이 무너질수록, 그의 언어는 검증 가능한 논리에서 검증 불가능한 감각과 주술 쪽으로 도망치고 있다.



그리고 그 도망을 부추기는 동력이 하나 더 있다. 지난 7월, 그가 구독자 20만 명 남짓, 평소 라이브 슈퍼챗 수입은 회당 20만 원 안팎이던 유튜브 채널 '2분 뉴스'에 출연했을 때, 그날 방송에서 시청자들이 쏟아부은 슈퍼챗은 약 2,493만원이었다. 평소의 백 배가 넘게 뛰었다. 물론 그는 이 돈을 노무현재단과 평산바카라방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돈의 최종 행선지가 어디든, 정바카라의 조목조목을 파고드는 논리적 비판이 아니라 단정적이고 감정적인 한마디가 나올 때마다 시청자들의 지갑이 백 배로 열린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보 비대칭의 붕괴가 그를 주술과 감각의 언어로 밀어냈다면, 슈퍼챗의 경제는 그 감각의 언어를 계속 쓰도록 그를 잡아끈다.






유시민의 인지부조화



유시민의 수첩이 있다. 윤석열이 대통령이던 시절, 그는 그 수첩에 이런 말들을 써 두었다. "권력은 침팬지 무리와 같아서, 우두머리가 연합을 잃으면 순식간에 물어뜯긴다. 문명은 얇은 막이고 그 막이 찢어지면 인간은 곧바로 짐승으로 돌아간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을 뜬다." 그때 그는 이 말들로 윤석열의 몰락을 짚어냈고,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장인수의 유튜브 채널에 나간 그는 그 수첩을 다시 펼쳤다. "같은 분석 도구로 이재명 정부를 분석해 봐요." 본인 입으로 이렇게 말하며, 문명에서 야만으로 가는 게 순식간이라는 문장을,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을 뜬다는 문장을 토씨 하나 안 바꾸고 이재명 대통령에게 그대로 옮겨 붙였다. 87년 헌정 사상 초유의 내란을 일으킨 내란수괴 윤석열과, 국민이 내란을 진압하고 투표로 뽑은 이재명 대통령을 같은 저울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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