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들쥐》가 묻는 죄와 이름에 대하여

빨간 저고리에 노란 치마

by조하나




<스포일러 있습니다>



아버지는 내가 어릴 적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같은 말을 반복했다. 명절 밥상에서였는지, 옛날 사진을 뒤적이다가였는지 계기는 매번 달랐지만 결론은 늘 같았다.



"너는 빨간 저고리에 노란 치마를 입었다고 기억하는데, 사실은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였어."



나는 아니라고, 분명히 기억한다고 우겼다. 색동저고리의 그 빨간빛과 치맛자락의 노란 물결까지 눈에 선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앨범을 꺼내 사진을 들이밀 때마다, 사진 속 나는 어김없이 노란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웃어넘겼다. 기억이란 원래 허술한 것이니까, 색깔 하나쯤 뒤바뀌어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저고리와 치마, 위와 아래, 두 색은 그대로 있고 자리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지어낸 게 아니라 그저 순서를 헷갈렸을 뿐이라고,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안심시켰다.



그런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들쥐》를 보는 내내, 나는 그 저고리와 치마가 차라리 다정한 왜곡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깔의 자리가 바뀌는 것과,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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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 없는 죄인



성공한 은둔 소설가 문재(류준열)는 자신이 저지른 일을 완전히 다르게 기억한다. 색깔의 위치가 바뀐 정도가 아니다. 그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를 통째로 맞바꾼 채 살아왔다. 문재는 가짜 대학생으로 위장해 한 문학 동아리에 들어갔고, 거기서 대학생 유민을 만났다. 그리고 유민이 자신의 생각과 글감을 스케치해 둔 노트를 훔쳐 그것을 자기 소설로 출간해 부와 명성을 얻었다. 거짓 소문을 퍼뜨려 유민의 연인 민영을 죽음으로 몰아넣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극 중 인물들은 유민을 향해 자꾸 같은 질문을 던진다. 겨우 그깟 질투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냐고.



이 질문이야말로 이 드라마가 숨겨놓은 가장 잔인한 반전이다. 질투에 사로잡혀 모든 걸 걸고 복수극을 벌인 쪽은 유민이 아니라, 애초에 유민의 모든 것을 부러워하다 그것을 훔친 문재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유민에게 던진 질문은 사실 문재를 향했어야 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모른 채 피해자의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 나는 이런 인물을 '죄의식 없는 죄인'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가 무서운 이유는 뻔뻔해서가 아니라, 뻔뻔함이라는 감각 자체를 아예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공황장애 약 때문인지 스스로 만들어낸 방어기제인지는 극 중에서도 명확히 갈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호함이 더 무섭다. 의도적인 거짓말이었다면 문재는 그냥 악인이 되고 이야기는 간단해졌을 것이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게는 적어도 진실을 알고 있는 자아가 어딘가에 남아 있고, 그 틈으로 언젠가 진실이 새어 나올 여지가 있다. 그런데 진짜 기억의 왜곡이라면 사정이 완전히 달라진다. 문재 본인조차 자신이 가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 그러니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자각조차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의 안에는 이제 감출 진실이 남아 있지 않다. 감출 진실이 없으니 들킬 위험도 없고, 들킬 위험이 없으니 죄바카라감이 비집고 들어올 틈도 없다.



죄를 짓고도 죄를 모르는 사람, 그래서 뉘우칠 필요도 사과할 대상도 스스로 지워버린 사람이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런 사람 앞에서는 폭로조차 무력해진다. 진실을 아무리 들이밀어도 그는 그것을 자신을 향한 또 다른 모함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에게 유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를 모르고 질투에 잠식된 배신자였고, 그 확신은 어떤 증거를 들이대도 흔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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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몫의 죄를 짊어지는 사람



반대편에는 노자(설경구)가 있다. 노자는 조직에서 빼돌린 돈을 문재에게 투자했다가, 문재가 그 돈을 들고 3년간 잠적하면서 전부를 잃은 사채업자다. 그 시간 동안 노자는 문재를 쫓았지만, 정작 문재는 공황장애로 집 밖을 나서지 못한 채 무너져 있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같은 세월을 전혀 다른 얼굴로 견뎌낸 두 사람이 다시 마주하는 자리에서 이 드라마는 또 하나의 대비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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