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사소하지 않은 용기에 관하여.
(스포일러 있습니다)
남자는 매일 밤 손을 씻는다. 하루치의 노동으로 새까매진 손을, 구정물이 가득한 세면대 앞에서 몇 번이고 문지른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석탄 배달 상인의 습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손을 아무리 씻어도 개운해지지 않는다.
손을 씻는다는 행위는 아주 오래된 죄의 몸짓이다. 성서 속 본디오 빌라도는 십자가형을 앞두고 사람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 바카라임이 없다고 말했다. 맥베스 부인은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핏자국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두 이야기 모두 물리적으로는 결코 씻어낼 수 없는 도덕적 바카라임을 다룬다.
빌 펄롱이라는 남자의 손 씻기는 이 오래된 계보를 조용히 뒤집는다. 빌라도는 손을 씻으며 바카라임에서 도망쳤지만, 빌은 씻어도 씻기지 않는다는 그 실패를 통해 오히려 바카라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정화가 실패할 때, 비로소 양심이 시작된다.
영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바로 이 실패의 자리에서 자기 방법론을 조용히 선언한다. 이것은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씻기지 않는 것에 대한 영화다.
말구유의 뒷문
배경은 1985년 아일랜드의 소도시 뉴로스,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이다. 석탄 상인 빌 펄롱은 다섯 딸을 둔 성실한 가장이다. 어느 날 그는 늘 배달을 다니던 수녀원의 석탄 창고에서 꽁꽁 언 채 갇혀 있는 소녀 사라를 발견한다. 그날부터 그는 알아버린 사람이 되어버린다. 알아버렸으니, 이제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크리스마스 시즌은 그저 배경 설정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본래 오갈 데 없던 임신한 여성과 그 아이가 마구간에서 겨우 몸 누일 곳을 얻었다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가 그리는 것도 정확히 그 구도의 반복이다. 오갈 데 없는 미혼모, 몸 누일 곳을 찾아 헤매는 상황, 그리고 그를 받아준 이가 정작 그 종교의 중심이 아니라 바깥의 이방인, 개신교도 과부였다는 사실까지.
정작 그 탄생을 기념한다는 종교 권력이, 자신이 기념하는 사건과 똑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감금하고 학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반짝이는 동안, 언덕 위 수녀원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영화는 이 아이러니를 목소리 높여 지적하지 않는다. 다만 그 계절을 배경으로 골라 놓았을 뿐이다.
문제가 없는 것이 유일한 문제인 사람
이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실화는 무겁다.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1922년부터 1996년까지, 거의 70년 넘게 운영된 시설이었다. 미혼모와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참회와 갱생이라는 명목으로 가두고 강제노동을 시켰다. 수만 명의 여성이 그 문을 통과했고, 아일랜드 정부가 국가 차원의 개입을 공식 인정한 것은 2013년, 사과가 이루어진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 사이의 시간을 헤아려보라. 한 세대가 거기서 태어나 자라고 늙어 죽을 만큼의 시간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겨누는 대상은 수녀원의 잔혹함이 아니다. 마을 전체의 침묵이다. 빌의 아내 아일린은 남편이 소녀의 일로 밤잠을 설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잖아.' 그녀는 이렇게 말하지만, 그녀는 괴물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가족이 무사하고,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고, 이웃과 척지지 않고 사는 것. 그게 그녀가 원하는 삶의 전부다. 문제가 없는 것이 유일한 문제인 사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70년짜리 침묵을 만든다.
이건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형제복지원이 있었고, 선감학원이 있었고, 자기 마을에서 몇 년 몇십 년씩 벌어진 일들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되뇌며 지나쳐온 역사가 우리에게도 있다. 아일랜드와 한국은 놀랍도록 닮은 근대사를 지나왔다. 오랜 식민 지배, 그 지배 아래서 형성된 증오와 모방이 뒤섞인 심리, 종교나 국가 같은 거대한 제도가 여성의 몸을 통제해온 방식, 그리고 그 모든 걸 알면서도 침묵해온 공동체까지. 두 나라 모두 큰 목소리보다 여백으로 슬픔을 말하는 법을 오래 배워온 나라들이다. 이 영화의 절제된 화면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면, 아마 그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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