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서는 늦게 온 손님에게 먼저 간다
팟캐스트 《디 다이어리 오브 CEO》 최신 에피소드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씁쓸한 웃음이었다.
《디 다이어리 오브 CEO》는 영국 사업가 스티븐 바틀렛이 2017년부터 진행해 온, 세계에서 손꼽히게 큰 인터뷰 팟캐스트다. 그가 이날 마주 앉힌 두 사람, 소련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건너와 자유주의 서구를 옹호하는 정치평론가로 자리잡은 콘스탄틴 키신과, 2008년 금융위기를 몇 해 앞서 경고했던 것으로 유명한 호주 출신 이단아 경제학자 스티브 킨이 이민과 기후, 세계 자본주의의 미래를 두 시간 넘게 논했다.
'세계(글로벌)'라는 단어는 그 두 시간 동안 수십 번 나왔는데, 그 세계를 정의하는 목소리는 시종일관 영국과 영어권 서구가 오랫동안 쌓아올린 역사와 언어와 경제 이론으로만 채워져 있었다. 진행자가 어느 대륙 출신인지는 이 자리에서 중요하지 않았다. 저 자리를 채운 건 사람이 아니라 국가였다.
키신은 스페인이 난민 유입을 막지 못했다며 서유럽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킨은 그 난민이 본질적으로 어디서 왔는지를 되물었다. 서구가 개입해 정치와 경제를 무너뜨린 자리에서 발생한 난민을 무조건 막는다고 될 일이냐는 반문이었다. 기후 이야기로 넘어가자 키신은 중국과 인도가 이제 배출량 바카라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 문장 어디에도 서구 세계의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판단되고 계산되는 대상인 동양
두 사람 다 각자의 위치에서는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 킨이 서구 개입과 난민 발생의 인과관계를 짚은 건 정확했다. 다만 그 인과관계가 국경 정바카라 자체를 무력화하는 논거가 되지는 않는다. 원인 규명과 대응 방식은 다른 층위의 문제인데, 둘은 종종 그 둘을 뒤섞은 채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정교한 반박전을 들으며 자꾸 다른 질문으로 미끄러졌다. 왜 이 세계를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어지럽혀 온 영국과 미국, 유럽 등 서구 세계가 함께 벼려온 언어와 논리 안에서, 두 남자가 마주 앉아 세계의 앞날을 재단하고 있는가.
이 글에서 나는 그 언어와 논리를 편의상 '서구'라고 부르려 한다. 국적을 하나하나 따지면 결이 다른 두 사람이지만, 둘 다 영국과 미국이 가장 오래 벼려온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문법 안에서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같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에서 서구가 동양을 늘 관찰되고 서술되고 판단받는 대상으로 그려왔다고 썼다. 서구는 언제나 보는 자리에, 동양은 언제나 보이는 자리에 놓인다. 이 대담을 보며 실감한 건 그 구도가 21세기 팟캐스트 알고리즘 안에서도 한 치 다르지 않게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대화 내내 아시아가 아예 언급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중국은 핵무기를 가졌으니 미국이 대만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거라는 지정학적 계산의 대상으로, 인도는 탄소 배출량 바카라임을 물어야 할 통계로, 중동은 난민을 만들어낸 불안정 지역으로 등장했다. 매번 판단하고 계산해야 할 대상으로만, 자기 언어로 자기 논리를 펴는 발화의 주체로는 단 한 번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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