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혐오로 물든 새덕후 논쟁

새와 고양이가 대신 치르는 인간의 전쟁

by조하나






오랜 시간, 나는 해외 외딴 섬에서 다이빙 강사로 살았다. 사막화된 바닷속에 어린 산호를 이식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비치 클린업을 했다. 다이버들에게는 선크림이 산호를 죽인다고, 관광지에서 스노클링하며 물고기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필리핀에서 먹이로 유인해 고래상어를 보여주는 투어에는 가지 말라고, 고래와 상어를 가둬놓는 아쿠아리움에는 발도 들이지 말라고 수없이 말했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 산호를 심는 다이버들을 태우는 보트도 매번 다이브 사이트에 기름을 흘린다는 사실이다.



이 지구라는 별에서 보호와 보존은 정말 모순적이고 복잡한 일이다. 완벽하게 무해한 손은 없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우리는 계속 산호를 심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 모순을 핑계 삼아 아예 다른 생명을 짓밟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 슬롯 논쟁을 보고 있으면, 자꾸 다른 질문이 떠오른다. 이 지구의 모든 생태계를 위협하는 건 결국 인간이라는 종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을 다 없애버리면 새도 고양이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물론 이건 반어법이다. 다만 이 반어법이 왜 이렇게까지 그럴듯하게 들리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새 vs 고양이라는 착시



요즘 한국 슬롯를 뜨겁게 달구는 논쟁이 있다. 조류 전문 유튜버 새덕후가 마라도와 홍도에서 고양이가 멸종위기종을 사냥하는 장면을 공개하며, 중성화 사업은 실효성이 없으니 살처분이 유일한 해법이라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며, 고양이 혐오도 여성 혐오도 아니라고 여러 차례 해명했다. 그 말을 믿고 안 믿고는 별개로, 적어도 이 유튜버는 공식적으로는 계속 선을 그었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 팔로워층에서는 얘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캣맘을 향한 반감이 여기 올라탔다. '캣맘 금지법'이라는 별칭까지 붙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캣맘이라는 존재 자체를 조롱하는 말들이 넘쳐났다. 결혼 못 한 노처녀의 히스테리라는 식의 말, 페미와 겹치는 부류라는 식의 말. 고양이 얘기로 시작한 논쟁이 어느새 여성 혐오의 언어로 미끄러지는 걸 지켜보며, 나는 이 싸움이 애초에 새와 고양이의 싸움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고양이를 섬에 데려간 것도, 그 섬에서 개체 수가 과밀해지도록 방치한 것도, 그 고양이에게 먹이를 준 것도 전부 인간의 선택이었다. 새와 고양이는 원래 같은 생태계 안에서 함께 진화해온 포식자와 피식자 관계가 아니다. 고양이는 인간이 가축화해 배를 타고 전 세계로 데리고 다닌 종이고, 그래서 고양이가 없던 고립된 섬에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 그 섬의 생태계는 준비할 시간조차 갖지 못한다. 고양이가 새를 잡는 능력과 새가 그 사냥을 피할 만큼의 경계심이 함께 자라날 시간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제로섬 게임판 위에서, 두 종이 인간 대신 대가를 치르고 있을 뿐이다. 이건 새 대 고양이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대 새와 고양이의 이야기다.





새덕후의 국회 청원



새덕후가 국회에 올린 청원의 정식 이름은 "소유자 없는 고양이 급식 제한 및 관리체계 개선에 관한 청원"이다. 청원은 정확히 네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소유자 없는 고양이에게 토지 소유자나 지자체장의 허가 없는 급식과 급식시설 설치를 금지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할 것. 둘째, 지자체가 운영하는 공공급식소를 법정 요건과 주기적 재심사 대상으로 제한할 것. 셋째, 현행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14조가 정하고 있는 구조·보호조치 제외 규정을 삭제하고, 소유자 없는 고양이도 개나 다른 유기동물처럼 포획, 개체식별장치 확인, 소유자 확인, 공고, 반환, 입양, 그리고 보호기간이 지난 뒤의 법정 절차를 밟도록 편입시킬 것. 넷째, 관리정바카라의 무게중심을 방치와 방사에서 보호와 입양 쪽으로 옮길 것.



여기서 세 번째 항목이 이 논쟁의 핵심이다. "보호기간 경과 후 법정 절차"라는 문장 안에 안락사라는 단어는 없다. 이 절차가 자동으로 안락사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동물보호법 조문을 따라가 보면, 공고기간이 지나 소유권이 지자체로 넘어간 동물은 우선 분양과 기증, 즉 입양을 시도하는 게 원칙이고, 안락사에 해당하는 "인도적인 처리"는 질병 등 특정 사유가 있는 개체에 한해 적용하도록 법에 명시돼 있다. 그러나 안락사가 이 절차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절차 안에 합법적 선택지로 이미 포함돼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입양이 성사되지 않거나 보호소 수용 한계를 넘는 개체가 실무에서 결국 그 대상이 되어온 것도 유기동물 보호소 운영의 오랜 현실이다. 새덕후가 요구하는 건 바로 이 절차, 안락사가 합법적 선택지로 들어 있는 그 절차로 길고양이를 다시 편입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번째 항목이 삭제를 요구하는 그 조항, 즉 길고양이를 구조·보호조치 대상에서 뺀 2012년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은, 애초에 안락사를 늘리려고 만든 조항이 아니라 정반대로 안락사를 막으려고 만든 조항이었다.



그전까지 길고양이는 개와 똑같이 유실·유기동물로 분류돼, 포획되면 보호소에 들어가고 입양이 안 되면 일정 기간 뒤 안락사되는 절차를 그대로 밟았다. 문제는 고양이가 개와 습성이 다르다는 데 있었다. 좁은 보호소에 갇히는 것 자체가 고양이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인 데다 입양 성공률도 개보다 현저히 낮아, 결국 안락사로 끝나는 비율이 높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대부분 자기 영역 안에서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습성 탓에, 굳이 포획하지 않아도 되는 개체를 억지로 잡아들여 결국 죽이게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래서 2012년 개정은 도심이나 주택가에서 자연적으로 번식해 자생하는 고양이 가운데 중성화됐거나 중성화 대상인 개체를 구조·보호조치 대상에서 아예 빼고, 대신 중성화 후 방사(TNR)로 관리하도록 바꿨다. 잡아다 죽이는 대신 중성화만 시키고 원래 살던 자리로 돌려보내자는 논리였다.



문제는 이 조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원래 취지와 다르게 굳어졌다는 데 있다. 이 조항이 생긴 뒤로 길고양이는 아예 구조나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는 인식이 퍼졌고, 다치거나 자생 능력이 없는 경우가 아니면 보호소가 접수 자체를 거부하는 지침도 이 조항에 근거를 두게 됐다. 안락사를 막으려던 조치가 개체수 관리 자체를 방치하는 결과로 흘러간 것이다. 새덕후 측이 이 조항을 문제 삼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그러니 이 조항을 둘러싼 논쟁은 처음부터 누가 옳고 그른가의 문제가 아니라, 좋은 의도로 만든 제도가 14년 뒤 전혀 다른 결과를 낳았을 때 그 제도를 어떻게 현명하게 되돌릴 것인가의 문제에 가깝다.



새덕후는 청원문 자체에는 "살처분"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대신 "구조·보호조치 대상 편입", "보호기간 경과 후 법정 절차"라는 순화된 법률 언어를 썼다. 그런데 같은 인물이 이 단어를 직접 꺼낸 순간이 따로 있다. 청원이 국회에 등록되기 스무 날 전인 6월 20일,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새덕후'에는 "고양이, 이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의 원래 제목은 "고양이, 이젠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였고, 너무 과격하다는 반응이 이어지자 약 2주 뒤 지금의 제목으로 바뀌었다. 이 영상에서 그는 "살처분 할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육성으로 직접 말했다. 12일 뒤인 7월 2일에는 SBS 뉴스 '지식의 발견' 코너에 출연한 인터뷰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왔는데, 영상 제목 자체가 "성역 되어버린 '길고양이' 실체.. 살처분 빼고는 답이 없습니다"였다. 이 인터뷰에서 그는 "가장 먼저 시행돼야 할 것은 먹이 주기 금지"라며 "살처분을 빼놓고서는 개체 수를 줄일 방법이 없다"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8일 뒤인 7월 10일, 청원이 국회에 등록됐다. 청원문이 완곡한 법률 언어 뒤로 숨긴 그 단어를, 그는 이미 자기 채널 영상의 육성으로, 그 영상 제목으로, 그리고 SBS 인터뷰 제목으로, 여러 번 공개적으로 꺼낸 뒤였다. 청원문의 완곡한 법률 언어와 그 직전 방송과 영상에서 꺼낸 육성 사이의 거리, 그 거리 자체가 이 논쟁의 진짜 쟁점이다.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이 논쟁에 오래 침묵하던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의견을 냈다.



최재천 교수는 먼저, 새덕후라는 유튜버가 섬에서 고양이가 새를 물고 뛰어가는 장면을 개인적으로 목격한 것과, 고양이가 새 개체 수 감소의 원인이라는 결론 사이에는 학술적으로 검증된 인과관계가 없다고 짚었다. 지금 거론되는 근거는 대부분 호주에서 나온 연구인데, 생태학은 지역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학문이라 그걸 그대로 한국 도심에 적용하는 건 성급하다는 것이다.



섬처럼 폐쇄된 생태계에서는 고양이가 새에게 끼치는 위해가 국제적으로 이미 상당히 확립된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러나 최 교수가 힘주어 지적한 것은, 정작 한국에서는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제대로 연구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확신은 외딴 섬에서 왔는데, 그 확신이 도시 전체로 그대로 번진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원인은 뭘까. 가장 유력한 답은 고양이가 아니라 숲이었다. 최재천 교수는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 기후변화까지 여러 원인을 짚었다. 철새가 도착하는 시기와 곤충이 번식하는 시기가 기후변화로 어긋나면서, 새끼 새들이 먹을 곤충을 찾지 못해 굶어 죽는 현상까지 관찰됐다고 했다.



TNR, 즉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한 뒤 원래 자리에 풀어주는 방식을 완전히 무효하다고 단정할 근거도 마찬가지로 빈약하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7대 특·광역시(세종 제외)의 길고양이 밀도는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제곱킬로미터당 273마리에서 233마리로 줄었다. TNR의 효과가 없는 게 아니라, 밀도와 지속성이 관건이라는 뜻이다.



그가 가장 힘주어 말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길고양이와 유기견을 두고 사람들은 흔히 "이게 생태계다, 자연의 섭리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원래 인간이 기르던 존재를 유기해놓고, 그 존재가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걸 자연의 섭리라 부르는 건 생태학이 아니다. 인간이 만든 상황이니 인간이 바카라임져야 한다. 그 바카라임을 회피하는 걸 자연에 맡긴다는 말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도 주민과 구청이 협력해 지난 5, 6년 동안 길고양이 개체수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개인적 관찰을 덧붙였다. 무자비하게 숫자를 줄이는 것보다 이런 방식이 훨씬 효과가 좋다는 게 대부분 지자체 데이터로 확인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평생 이 학문에 몸담은 사람인 최재천 교수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아는 게 없으면 조심해야 한다. 아는 게 없으면 결론을 함부로 내리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새를 사랑하기 위해 다른 생물을 제거해야 한다면, 그건 잘못된 사랑이다.



그런데 이 발언에도 일부 사람들의 조롱은 이어졌다. 확신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신중함은 우유부단함으로 읽혔다. 사람들은 때로 진실보다 확신을 더 원한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자신이 평생 갈고 닦은 학문을, 생명을 살리는 데 썼다. 죽이는 데 쓰지 않았다. 사랑을 위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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