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서 실망할 자격
국내 채널과 국외 채널을 동시에 운영하는 나에겐 요즘 하나의 사건이 두 개의 얼굴로 보였다. 한국 계정을 열면 '그저 콘서트 한 번 다녀온 일을 두고 왜들 이렇게 예민하게 구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국외 계정으로 바꾸면 전혀 다른 온도의 언어로, 같은 두 사람을 향한 실망이 흘러넘쳤다. BTS 멤버 RM과 제이홉의 이야기다.
그리고 두 타임라인은 서로를 향해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너희는 왜 그렇게 예민하냐고. 국내 팬들은 해외 팬들의 반응을 유난스럽다 여겼고, 해외 팬들은 국내 팬들의 무심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재밌게도 그 말은 방향만 바뀐 채 정확히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선 자리가 다르면 풍경도 이렇게까지 다르게 보이는구나. 나는 그 어긋남을 지켜보며 오래 생각했다.
쌓여온 폭력의 기록
지난 8월 12일, 토론토 로저스 스타디움. 크리스 브라운과 어셔가 함께 도는 '더 알앤비 투어' 두 번째 공연에 BTS의 RM과 제이홉이 다녀갔다. 공연을 즐기는 영상을 제이홉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이후 두 사람이 무대 뒤에서 크리스 브라운과 함께 찍은 사진까지 퍼졌다. 마침 BTS는 같은 스타디움에서 오는 8월 22일과 23일 자신들의 월드투어를 앞두고 있다.
크리스 브라운이라는 이름에 처음 '폭력'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은 건 2009년, 당시 연인이던 리안나를 심각하게 폭행한 사건이었다. 그는 중범죄 폭행 혐의를 인정했고, 보호관찰과 가정폭력 상담 처분을 받았다. 그런데 그건 시작이었을 뿐 끝이 아니었다.
2013년 워싱턴 D.C.에서는 사진을 찍자고 다가온 팬의 코를 부러뜨려 폭행 혐의로 기소됐고, 이듬해인 2014년 유죄를 인정했다. 이미 보호관찰 중이었던 탓에 같은 해 추가 구금형까지 선고받았다. 2016년 무기를 이용한 폭행 혐의로 체포됐고, 이듬해엔 전 여자친구 카루에체 트란이 그를 상대로 접근금지 명령을 신청하며 학대와 협박을 주장했다.
2020년에는 그가 기르던 개가 전 가정부를 공격한 사건으로 소송이 이어졌다. 피해자 측은 브라운이 피 흘리는 그녀 곁에 서서 통화를 하다가 자리를 떴다고 주장했고, 브라운은 매니저의 조언에 따라 구급대가 오는 것을 확인한 뒤 자리를 떴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2026년 6월, 배심원단은 그에게 1290만 달러가 넘는 배상 바카라임을 물렸다. 그리고 2023년 런던의 한 나이트클럽에서는 프로모터의 머리를 병으로 내리치고 발로 찬 혐의로 2025년 체포됐고, 그는 올해 7월 법정에서 그 혐의를 인정했다.
지난 15년, 거의 매해 어떤 형태로든 그의 이름 옆에는 '폭력'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이건 옛날에 저지른 한 번의 실수가 아니다. 반복이자 패턴이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인스타그램에서 손꼽히는 팔로워 수를 유지하며 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멈추지 않는 이유
현재 크리스 브라운과 어셔가 함께 하는 '더 알앤비 투어'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매진됐다. 좌석이 부족해 공연이 하나 더 잡혔고, 그 소식이 다시 화제가 됐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답은 하나의 거대한 악의가 아니라, 여러 작은 계산들이 우연히 같은 방향으로 겹친 결과였다.
레이블과 프로모터에게 크리스 브라운은 이미 검증된 상품이다. 새 스타를 키우는 것보다 그의 티켓 파워를 계속 쓰는 쪽이 훨씬 싸고 확실하다. 공연 산업은 애초에 스타의 도덕성을 심사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지 않다.
이 계산 밑에는 장르의 문화도 깔려 있다. 미국 힙합과 알앤비 신에는 오래전부터 '재능 있는 사고뭉치'라는 서사가 있고, 사고를 친 아티스트일수록 오히려 매력적으로 소비되게 만드는 침묵의 문화도 실제로 작동한다. 래퍼 파볼러스가 여자친구의 앞니 두 개를 부러뜨렸다는 증거 영상이 나왔는데도, 많은 팬들은 여전히 그를 온라인에서 옹호했다.
이건 인상비평이 아니다. 슬롯학자 로널드 와이처와 캐리스 커브린이 랩 가사 403곡을 분석한 연구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내용이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로 확인됐다. 또 다른 연구는 갱스터 랩 490곡 중 22퍼센트가 실제로 여성을 향한 폭력을 직접 담고 있다는 걸 밝혀냈다.
전 세계적으로 미투 증언이 쏟아지던 시기에도 유독 랩과 힙합 신에서는 공개 증언이 드물었다. 스트리밍과 라디오를 장악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가진 장르인데도, 업계 전체가 상대적으로 덜한 대중적 감시 속에 머물러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크리스 브라운과 어셔는 이 투어 직전, 각자 솔로 투어로 이미 커리어 최고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 브라운의 '브리지 보울 XX 투어'는 흑인 남성 솔로 아티스트 역대 최고 흥행을 찍었고, 어셔의 '패스트 프레즌트 퓨처 투어'도 자신의 커리어 최다 판매를 기록했다. 티켓 파워가 부족해서 손을 잡은 게 아니다. 이미 각자 정점에 있는 두 스타가 뭉쳐 만든 건, 스타디움 하나로는 감당하기 벅찬 압도적 스펙터클이었다. 여기에 자선단체와 파트너십을 맺고 티켓 수익 일부를 교육기금에 기부한다는 포장까지 더해졌다. 화려함과 선의라는 두 겹의 포장이, 두 사람 각자가 안고 있는 논란을 대중의 시야 밖으로 밀어내는 효과를 낸다.
RM과 제이홉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사진 한 장은, 바로 이 서사에 신뢰도 높은 이미지 하나를 더 얹어준 셈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선한 영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그룹 BTS의 멤버가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은, 이 투어가 그들의 논란과는 무관한 축제라는 인상을 강화한다. 의도했든 아니든, 그날 밤 두 사람은 크리스 브라운의 이미지 세탁의 서사 안에 한 자리를 차지했다.
결국 누군가 악의적으로 가해자를 계속 밀어주자고 결정한 게 아니다. 그냥 아무도 멈출 유인이 없는 것이다. 도덕적 판단을 배제한 채 수요와 수익만 보는 구조가 만들어낸 결과다. 이 계산에는 애초에 팬의 마음이라는 항목이 없다.
한국이라면 달랐을까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정준영과 최종훈은 집단 성폭행과 불법 촬영물 유포 혐의로 유죄가 확정되며 연예계에서 완전히 퇴출됐다. 같은 사건으로 수사가 시작된 승리는 성매매 알선과 불법 촬영물 유포 방조 등의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실형을 살았다. 고영욱은 미성년자 추행으로 징역형과 전자발찌를 선고받고 지금까지도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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