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의 냉장고 다섯 대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by조하나







안 먹어서 맨날 썩는다



KBS 《편스토랑》 카메라 앞에서 배우 하영은 본가 냉장고를 소개했다. 메인 냉장고, 고기와 해산물용 냉장고, 빌트인 냉장고, 안방의 장류 냉장고, 김치냉장고까지 모두 다섯 대.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챙겨 와도 아무도 모른다. 절대 모른다. 그리고 안 먹어서 매일 썩는다." 어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다 가져가라고 손을 내저었다. 화기애애한 장면이었다. 부유한 집안의 넉넉한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그저 그런 예능의 한 컷이었다.



이 장면을 내가 다시 꺼내온 건 그로부터 한참 후, 전혀 다른 문맥에서다. 하영의 본가 냉장고 안에서 썩어가는 음식은 이제 다른 것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오래 넣어두고 꺼내지 않으면, 그것이 아무리 좋은 재료였다 해도 결국은 부패한다는 것. 그리고 그 부패는 반드시 냄새로 존재를 알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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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조선인



발단은 배우 하영과 정해인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이었다. 최근 이 둘이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같은 사랑》 홍보를 위해서였다. 하영은 자신의 집안을 소개했다. 증조할아버지는 일본에서 서양 의학을 배워 한양에 최초로 개원한 의사였고, 고종 황제를 진료했다. 조부와 부친, 언니까지 의사인 4대째 의료 명문가다.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그 증조부의 이름이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꺾였다. 그가 일본에서 배운 그 서양 의학부터가 사실은 조선의 돈이었다. 안상호는 1896년 대한제국 정부의 국비 유학생으로 뽑혀 도쿄로 건너갔다. 근대 의료 인재를 키우겠다는 나라의 투자였다. 그런데 정부가 1904년 무렵 그를 의학교 교관으로 불러들이려 하자, 안상호는 그 부름에 응하지 않고 도쿄에 몇 해를 더 눌러앉았다. 나라가 마련해준 학비로 공부를 마친 사람이 정작 나라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는 등을 돌린 것이다. 그와 함께 국비 유학을 떠났던 김익남은 훗날 만주로 망명해 항일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같은 나라의 돈으로, 같은 시기에, 같은 공부를 하고 돌아온 두 사람의 삶은 그렇게 완전히 갈라졌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안상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 지금 조선 옷은 한 벌도 없다.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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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은 식민지 엘리트가 지배자의 언어와 생활양식을 완전히 체화해 스스로를 지배자와 동일시하려 하는 심리를 분석한 바 있다. "나는 일본 사람과 똑같다"는 그 문장은 그 동일시가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주는 자백처럼 읽힌다.



그의 일본인 아내 이소코는 11년을 조선에서 살고도 "조선말을 한마디도 못한다"고 태연히 말했다. 아이들이 조선 동무들과 자주 노느냐는 질문에 그는 답했다. "집 앞이 바로 전찻길이기 때문에 단속해서 내보내지를 아니하므로, 우리 집 식구들은 딴 세상에서 사는 셈이에요."



전찻길 하나로 만들어낸 딴 세상. 식민지 조선 한복판에 살면서도 조선인과 접촉하지 않도록 스스로 동선을 설계한 이 가족의 모습에서, 나는 다른 담장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의 가족은 수용소 담장 바로 옆에서 정원을 가꾸고 아이들을 키운다. 담장 너머의 비명과 총성은 소리로만 새어 들어올 뿐, 화면은 끝까지 그 평화로운 정원 안쪽만을 비춘다. 담장과 전찻길은 서로 다른 사물이지만 하는 일은 똑같다. 불편한 현실과의 접촉을 원천 차단해, 이곳은 저곳과 무관하다는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 안상호가 말한 "불편한 점은 조금도 없다"는 문장은 그러니까, 적응을 잘했다는 고백이 아니라 불편함이라는 감각 자체를 스스로 제거해버렸다는 고백에 가깝다.







몇 겹의 냉장고, 그리고 독살의 소문



여기서 끝났다면 이 이야기는 한 시대의 해프닝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부패한 음식으로 가득한 냉장고 문은 한 번 열리면 잘 닫히지 않는 법이다.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동안, 그가 1909년 이재명 의사의 칼에 중상을 입은 매국노 이완용을 살려낸 치료진 중 한 명이었다는 기록까지 발굴됐다. 그리고 가장 무거운 소문 하나. 1919년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승하했을 때, 조선 민중 사이에는 시의(侍醫) 안상호가 총독부의 명을 받아 독살했다는 이야기가 광범위하게 퍼졌다. 영친왕 비 이방자의 수기와 일본인 궁내부 사무관 곤도 시로스케의 회고록에도 이 소문이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지금도 확정되지 않았다. 다만 한 나라의 마지막 황제 곁에 그런 소문이 따라붙을 만큼, 이 집안은 일제와 가까이 서 있었다.



언론과 대중은 하영이 스스로 반복해온 '4대 의사 명문가'라는 서사를 그대로 따라가며 한 겹을 더 들췄다. 증조부 다음은 조부였다. 조부 안부호가 국립소록도병원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이 추적됐고, 소속사는 확인 요청에 그가 한센인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설명은 오히려 문을 하나 더 열어버렸다. 안부호가 근무를 시작한 1949년부터의 소록도는, 한센인 1191명을 대상으로 한 강제 정관수술과 환자의 동의 없는 골수 검사 외에도 수많은 인체 실험이 자행되던 곳이었다.



안부호는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국내 의학박사 1호라는 기록을 가진 인물로, 1949년부터 1953년 무렵까지 소록도에서 한센병을 연구했다. 그의 아들이자 하영의 부친인 안병문 원장은 바로 그 재직 시절인 1951년, 소록도에서 태어났다. 당시 소록도에서는 환자의 가슴에 침을 꽂아 골수에서 나균을 검출하는 방식의 검사가 이뤄졌고, 정관수술을 받은 부부에게만 동거를 허락하는 정바카라까지 있었다. 임신을 하면 강제로 낙태하거나, 태어난 아이를 부모에게서 빼앗아가기도 했다. 아이와 부모가 감염을 우려해 한 달에 한 번, 그마저도 선을 사이에 두고 목소리로만 안부를 물어야 했던 그 경계는 지금도 소록도 입구에 "수탄장"이라는 이름의 표지판으로 남아 있다. 안부호 본인이 그 가해에 가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다만 '헌신'이라는 단어가, 정작 그 시설의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대중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을 뿐이다.






새어 나오는 썩은내



논란이 커지자 부친이 직접 나서 해명했다.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였다. 하영의 조부 안부호가 항일 의지가 강했던 의친왕을 보필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해명을 위해 인용한 바카라 《한국 의학의 개척자》의 저자 정구충은, 정작 본인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었다. 그의 형 정구창마저 안상호와 함께 대정친목회 평의원이었다. 해명하려던 손이 오히려 협력의 그물이 얼마나 촘촘했는지를 증명해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는 경술국치를 설명하며 "한일합방이 된 후"라는 표현을 썼다. 국가보훈부는 한일합방이나 한일합병 같은 단어를, 일본이 국권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썼던 용어로 규정한다. 나라를 강제로 빼앗긴 사건에, 마치 두 나라가 합의해서 하나가 된 것 같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철저한 가해자 중심적 용어다. 한일합방이라는 단어는 우연히 튀어나온 실언이 아니다. 이 집안이 무의식중에도 그 시대를 어떤 시선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창이다.



슬롯학자 스탠리 코언은 사람들이 불편한 진실을 다루는 방식을 문자적 부인, 함의적 부인, 해석적 부인으로 나눴다. 문자적 부인은 아예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함의적 부인은 사실은 인정하되 그 바카라임의 무게만 슬쩍 덜어내는 것, 해석적 부인은 일어난 사실에 다른 이름을 붙여 그 성격 자체를 바꿔치기하는 것을 말한다. 하영 가족의 친일 논란이 불거지자 소속사는 맨 처음 "사실무근"이라는 문자적 부인을 했다. 아예 없었던 일이라는 것이다. 그 다음 하영 조부의 소록도 병원 근무 이력을 인정하면서도 각종 만행에 대한 가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은 건 함의적 부인이었다. 사실은 인정하되, 거기 담긴 바카라임의 무게만 슬쩍 덜어낸 것이다. 하영 부친의 '한일합방'이라는 완곡어법은 해석적 부인이었다. 국권을 강제로 빼앗긴 사건 자체에 다른 이름을 붙여, 그 성격을 바꿔치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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