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라는 이름의 폭력
여자친구 없어?
해외 생활을 할 때였다.
나는 영국인 친구에게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여자친구 없어?"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나? 여자친구 아니고 남자친구 있는데."
그 순간 나는 정확히 알았다. 내가 방금 무엇을 저질렀는지. 그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가 여자를 사랑할 거라고 이미 정해놓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물론 악의는 없었다. 그런데 악의가 없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섬뜩했다.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진보적이고 깨어 있는 사람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내가 한국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곳은 '소수자' '비정상'으로 분류된 사람들로 가득한 '인디 씬'이었다. 한국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나이가 어떻게 되냐, 학교는 어디를 나왔냐,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유난히 싫어했던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런 내가 다른 나라에 나가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새장을 씌우고 있었다.
이 순간에는 이미 이름이 붙어 있다. '이성애규범성'이라는 개념이다. 1991년 미국의 문화이론가 마이클 워너가 만든 말인데, 게일 루빈의 성과 젠더 체계 논의와 에이드리언 리치가 1980년에 제시한 강제적 이성애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성애를 정상이나 보편의 자리에 놓고 거기서 벗어난 모든 성적 지향을 특수하거나 예외적인 경우로 취급하면서, 슬롯 구성원 모두에게 은연중 이성애자일 것을 전제하고 요구하는 작동 방식을 가리킨다.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라는 흔한 질문도 같은 구조로 읽힌다. 이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긴장을 전제하는 발상 자체가, 모두를 이성애자로 상정한 위에서만 성립하는 질문이니까.
아버지 뭐 하시니?
한국에서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곧잘 "아버지 뭐 하시냐"라고 묻는다. 이 질문은 세 가지를 동시에 전제한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것,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정보가 상대를 평가할 근거가 된다는 것. 조손가정과 한부모가정, 사별가정의 사람에게 이 질문은 매번 자신의 결핍을 설명하거나 감추는 숙제를 던진다.
명절이 되면 이 질문은 떼를 지어 몰려온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명절에 가장 듣기 싫은 말로 "연봉"과 "모아둔 돈"을 캐묻는 질문이 꼽혔는데, 응답자의 44.2퍼센트가 이 항목을 골랐다. "요즘 뭐 하고 지내냐"는 물음도 만만치 않다. 구직자를 대상으로 한 다른 조사에서는 이 말이 가장 듣기 싫은 잔소리 1위였다.
사귀는 사람 있어, 결혼은 언제 해, 애는 언제 낳을 거야. 어느 대학 나왔어, 몇 학번이야. 살 좀 빠졌네, 키가 몇이야. 교회는 다니지, 제사에는 오지. 어디서 왔어요, 한국말 잘하시네요.
서류의 성별란이 남과 여, 둘로만 되어 있는 것도 다르지 않다. 이 질문들과 칸들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특정한 경로로 살아가는 삶을 기본값으로 세워두고, 그 경로 밖에 있는 사람에게 매번 해명과 증명의 부담을 지우는 방향.
'보호자'라는 단어 하나
며칠 전, 경상남도교육청이 학교에 공문 하나를 보냈다. '학부모'라는 말 대신 '보호자'를, '부모'라는 말 대신 '보호자1'과 '보호자2'를 쓰자는 내용이었다. 다양한 가족 형태를 존중하자는 취지였다. 사실 이런 시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서울 도봉구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몇 년 전 이미 교사들의 제안으로 가정통신문에 '학부모' 대신 '보호자'를 쓰기 시작했다. 학급당 학생 수를 스무 명으로 잡으면 그중 두어 명은 한부모나 조손 가족일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셈에서 나온 배려였다.
그런데 경남교육청의 공문이 알려지자 온라인은 며칠 동안 들끓었다. 논란에 불을 지핀 건 공문에 함께 배포된 예시 자료가 전교조 성평등위원회가 만든 것이었고, 그 안에 엄마가 둘이거나 아빠가 둘인 가족 같은 사례가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일부 교사와 기독교 성향의 교육 단체는 '보호자'라는 표현이 가족 해체를 부추기고 '정상 가족'을 부정한다며 성명을 냈고, 경남교육청이 헌법이 아니라 이념 단체의 지침을 따른다는 비난까지 나왔다. 결국 교육청은 엿새 만에 공문을 철회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게 있다. 공문 어디에도 아이들에게 부모를 집에서 보호자1, 보호자2라 부르라고 가르친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건 공식 서류에 쓰일 용어에 대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실제로 발송한 것은 전교조가 아니라 경남교육청이라는 행정기관이었지만, 참고 자료의 출처가 전교조였다는 사실 하나가 전교조가 직접 지시했다는 프레임으로 확대되는 빌미가 됐다.
'정상 가족'은 무엇일까. '정상'이 대체 뭘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먼저 인정해야 할 게 있다. '정상 가족'이라는 말은 원래 비판을 위해 태어난 개념이었다는 사실이다. 슬롯학과 페미니즘 논의에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란 아빠와 엄마, 그리고 그들의 생물학적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을 이상으로 세워두고 그 밖의 모든 형태, 그러니까 한부모가족과 조손가족과 무자녀가족과 입양가족과 동거가족과 동성가족을 은연중에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을 가리킨다.
작가 김희경은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한국의 저출산과 아동학대, 해외입양 문제가 결국 이 하나의 뿌리 깊은 가족주의와 맞닿아 있다고 짚었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은 정반대로 쓰이고 있다. 비판의 대상이었던 그 모델을 오히려 지켜야 할 것으로 떠받들면서, 보호자라는 중립적인 낱말 하나가 그 모델을 흔든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같은 단어를 두고 한쪽은 부수려 하고 다른 쪽은 지키려 한다. 대화가 어긋나는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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