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에 또 다른 자격을 요구하는 사람들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해외 작은 외딴섬에서 다이빙 커리어를 시작하던 시기였다. 다이빙 훈련을 받으며 강사 자격에 도달하기 위해 한인샵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갓 강사시험에 합격한 초보 강사들이 교육생을 직접 가르치기는커녕 선배 강사들의 코스를 따라다니며 짐을 나르고, 탱크를 채우고, 학생들 마스크에 김서림 방지제를 발라주고 몇 달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은 정작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경력 많은 강사들은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경험할 기회를 줬으니 고마운 줄 알라"고도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물었다. 강사 자격증이라는 게 이러라고 있는 게 아닐 텐데.
결국 나는 한인샵을 나와 유러피안들이 있는 웨스턴샵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그제야 그게 세상의 이치가 아니라 한인샵만의 관행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쪽에서는 자격증을 딴 다음 날부터 바로 강사였다. 경력 20년 강사와 초보 강사가 똑같이 일하고 일하는 만큼 똑같이 돈을 받았다. 나이도 연차도 묻지 않았다. 강사자격증이 말 그대로 자격이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궁금해졌다. 한국은 왜 자격을 획득한 뒤에도 또 한 번의 자격을 요구하는 걸까. 그 두 번째 자격의 이름은 대체로 나이였다.
'어시'라는 이름의 계급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패션잡지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에도 같은 풍경을 봤다. 그때 잡지사마다 '어시'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있었다. 정식 기자로 공채를 하는 대신 어시나 인턴으로 데려다 몇 달, 몇 년을 무급, 혹은 그에 가까운 돈으로 부려먹고, 운이 좋아 자리가 나면 정기자로 올려주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시스템이 처음부터 이해가 안 갔다. 인디 잡지에서 맨몸으로 시작해 정기자가 된 다음 메이저 매체로 스카웃되어 간 사람이었으니까. 어시 노릇을 그렇게 오래 해야 배우는 게 뭔지, 나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다 2015년 무렵 잡지계의 열정페이가 언론에 터졌다. 온 잡지사가 화들짝 놀라 어시 제도를 없앴다. 마치 처음부터 그런 게 없었다는 듯이. 그리고 소란이 잦아들자 그 제도는 조용히 되돌아왔다. 그 몇 년을 견딘 사람들 중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은 대부분 집에 돈이 있는 애들이었다. 취미로 패션지 기자 일을 해도 되는 사람들. 열정페이라는 이름이 실은 신입을 걸러내는 계급의 필터다. 능력이 아니라 버틸 형편이 있는가로 사람을 골라내는 거름망.
당시엔 SNS도 지금 같지 않았고, 폭로할 통로도 좁았다. 기성세대의 억압은 지금보다 훨씬 노골적이었고, 청년들은 이력서에 경력 한 줄 얹으려고 울며 겨자 먹기로 인턴, 어시, 수습이라는 이름의 시절을 버텼다. 버티지 못한 사람들은 그냥 조용히 그 바닥을 떠났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가끔 그들이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생각한다.
네가 뭘 안다고
이 장면들을 오래 묵혀두고 있었는데, 최근 뉴스 하나가 그걸 다시 끄집어냈다. 박지성이 축구협회 혁신위원장을 맡자, 한 지방 협회장이 방송에 나와 이렇게 쏘아붙였다. 박지성과 이영표가 축구로는 국가대표였지 인생을 얼마나 살았고 법을 얼마나 알고 슬롯 경험을 얼마나 안다고 위원장을 하냐고. 박지성은 마흔다섯이다. 히딩크가 아니었다면 국가대표에도 오르지 못했을 거라는 말을 들을 만큼 오래 학연의 바깥에 서 있던 사람이었고, 유럽 프리미어 리그에서 오랫동안 커리어를 쌓고도 한국 축구 카르텔 안쪽에는 끝내 편입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협회의 부패에 손을 대려 하자, 돌아온 대답은 논리도 반박도 아니었다. 그저 "너는 말할 자격이 없다"는 한마디였다. 그리고 그 자격을 따지는 근거는 쌩뚱맞게 나이였다.
웃기지도 않는다. 국제축구연맹 자문위원을 지내고, 세계 최고 리그에서 20년을 뛴 사람에게 슬롯 경험 운운이라니. 이건 무지의 발언이 아니다. 정확히 계산된 발언이다. 논리로는 이길 수 없으니 자격을 부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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