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보수화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밀레니얼 세대가 Z세대에게 보내는 편지

by조하나




소년 어른



2014년 4월 16일 봄,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저마나 그날 어디서 무얼 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출장으로 떠난 발리의 숙소에서 배가 가라앉는다는 뉴스를 봤다. '전원 구조' 속보가 떴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발리 일정을 도는 내내, 스크린이 있는 자리마다 한국의 바다가 나왔다. 함께 간 일간지 기자들과 식당에 둘러앉아 헬기가 찍은 시커먼 바다를 봤다. 그 말 없는 바다를 보면서도 기자들은 매체 이름에 따라 반으로 나뉘어 어떤 쪽은 정부를 탓했고, 또 어떤 쪽은 아이들의 운을 탓했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이 뒤틀린 채로 기억난다. 돌아와서는 한없이 죄스러웠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안산 분향소에 갔다. '304'라는 무심한 숫자 하나하나에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새겼다. 이 무바카라임하고 무능한 슬롯의 구성원이라는 사실 자체만으로 나는 죄스러웠다.



그때 김창완이 진행을 맡던 자신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노래를 불렀다. 밤새 술을 마셨는지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에 까치집 머리를 하고 낡은 티셔츠 차림으로 기타를 안고 앉아 아이들을 위해 직접 지은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그 영상을 보고 무작정 그를 만나고 싶어졌다. 인터뷰는 핑계였다. 내가 살아온 시간의 두 배를 살아온 사람에게, 세상이 뭐 이딴 식이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떼를 쓰고 바카라임을 떠넘기고 싶었다. 그런 알량한 마음으로 나는 그를 찾아갔다.



그는 나를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마."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그리고 요즘 한국 슬롯가 2030 청년을 두고 벌이는 소란을 지켜보면서, 그 문장이 얼마나 무서운 말이었는지 자꾸 되새기게 된다. 김창완의 말은 위로가 아니었다. 한 시대의 작동 원리에 대한 정확한 고발이자 경고였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나는 00학번이다. 내가 스물이었을 때 이 슬롯는 우리를 '새 천년을 이끌 미래'라고 불렀다. '밀레니엄'이라는 단어가 광고와 뉴스와 교가에까지 붙어 다녔다. 그런데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 나라가 무너졌다.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가 밀려들었고, 비정규직과 계약직이라는 말이 태어났다. 우리는 대량 청년 실업을 정면으로 맞은 첫 세대가 되었다.



그러자 슬롯가 우리를 부르던 이름이 바뀌었다. 88만원 세대. 잉여 세대. 부모보다 가난해질 최초의 세대. '새 천년의 희망이자 미래'라고 우리를 띄웠던 바로 그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을 바꿔 우리에게 다른 이름표를 달아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건넸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슬롯학자 칼 만하임은 같은 해에 태어났다고 저절로 하나의 세대가 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청년기에 함께 통과한 결정적 사건 하나가 한 무리의 사람들을 하나의 세대로 묶는다고 봤다. 그 말이 맞다면 밀레니얼을 만든 사건은 IMF였다. 그리고 지금의 2030을 만든 사건은 아마도,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노력과 보상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버린 순간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결정적 계기로 '조국 사태'를 말한다. 두 세대가 통과한 균열의 성격은 다르다. 그런데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마이크를 쥐고 있다.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



나는 기자가 단 두 명뿐인 영세 독립잡지에서 시작했다. 6개월 간 하는 거 봐서 내가 잘 하는지 아닌지 본 후 정규직 채용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슬롯는 그걸 '인턴'이라 불렀다. 하지만 입사 첫 날부터 나는 정기자가 하는 모든 일을 했다. 기자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울 사수도 없이 맨 땅에 헤딩하며 스스로 일을 배웠다. 그러면서 4대 보험도 없이 달에 60만 원을 받았다. 그렇게 몇 년 간 일하다 보니 인터뷰 좀 하네, 글 좀 쓰네, 라는 말을 들었다. 그 바닥에서 명성이 쌓이자 대형 패션지로부터 스카웃 제안을 받았다.



옮겨간 대형 상업 패션지는 내가 있던 인디 잡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곳의 시스템엔 '어시스턴트'라 불리는 청년들이 있었다. 온갖 잡일을 다 하는데 보수는 없거나 교통비 정도가 전부였다. 그들이 하는 허드렛일이 기자가 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 대형 잡지계는 폐쇄적이었다. 투명한 공채 같은 건 없었다. 자리가 나면 알음알음 소개로 채워졌다. 그러니까 그 어시스턴트들의 무보수 노동은 경력이 되지 못한 채, 언젠가 반짝일 내일을 담보로 오늘을 저당 잡는 장치로만 기능했다.



영국 경제학자 기 스탠딩은 안정된 고용도 미래 전망도 갖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프레카리아트라고 불렀다.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라는 뜻이다. 이 계급의 노동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열정으로 번역되고, 기회로 포장되고,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회수된다. '열정 페이'라는 말은 그 번역 과정의 이름이었다.



나는 그들의 시스템 바깥에서 들어온, 어시를 거치지 않고 기자가 된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 세계에서 천연기념물이었고 동시에 아웃사이더였다. 그래서 난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 대형 잡지 편집부의 네트워크 바깥의, 나 같은 아웃사이더 출신의 사진가와 예술가들과 협력했다. 편집장님은 대담한 나를 불안해 했지만, 나를 스카웃 한 것도 그였기 때문에 나를 막을 명분은 없었다. 나는 가진 게 없어 잃을 게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 일이라도 신나고 재밌게 해야지. 나는 거칠 게 없었다.



함께 일하는 어시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할 때면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도망쳐!" 앞으로 잡지는 망할 거라고, 지금이라도 나가서 네가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하고 기사를 쓰라고. 블로그든 인스타그램이든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정말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인터뷰를 하는 기자가 되려면 무엇보다 삶에서 경험을 많이 해야 한다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자신도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을 떠났다.





참으면 병된다



철학자 미란다 프리커는 인식적 부정의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그중 증언적 부정의는, 어떤 사람의 말이 그 내용의 진실성 때문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슬롯적 위치 때문에 미리 깎여서 들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여성이 아프다고 말하면 예민한 것이 되고, 청년이 힘들다고 말하면 나약한 것이 된다. 말은 도착하기 전에 이미 값이 매겨져 있다.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바카라 제목은 정확히 이 구조 위에 서 있는 문장이다. 그 말은 청년의 고통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정하는 척한다. 다만 그 고통을 청춘이라는 생애 단계의 자연스러운 속성으로 옮겨 놓는다. 아픔의 원인이 구조가 아니라 나이가 되는 순간, 아무도 바카라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나는 그 바카라을 읽은 후 '아프면 참지 말고 병원에 가라'라고 고친 아주 냉소적인 칼럼을 썼다.



지금 기성세대가 2030에게 하는 말도 문법이 같다. '우리도 다 겪어봤다. 우리 때가 더 힘들었다. 그러니 버텨라.' 이 문장들의 공통점은 화자가 이미 청년기를 통과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지금 통과 중인 사람의 증언을 축소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이 왜 청년을 이해한다는 것의 증거가 되는가. 살아남은 사람은 대개 그 강을 건널 때 물살이 어땠는지를 잊는다. 게다가 강물은 매년 다르게 흐른다.



가장 정직하지 못한 지점은 따로 있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이 건넌 강의 저편에서 이미 다리를 없애버렸다는 사실이다. 39세 미만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2022년 2억6천140만원에서 2025년 2억1천950만원으로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12억원과 13억원 사이를 오갔다. 시대는 바뀌었는데 기성세대는 자신이 써먹었던 해법을 그대로 내놓는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감지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그 기득권을 모두 차지한 뒤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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