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은 민주당의 혈통을 따진 적 없다

스스로 기득권임을 인정하는 용기를 내라.

by조하나


노무현에서 이재명까지, 반복된 배척의 계보



더불어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상한 싸움을 시작했다. 누가 노무현의 적통이냐는 싸움이었다. 정청래 전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놓으며 "저는 노사모", "노무현 키즈"라고 말했다. 경쟁자인 송영길 의원은 라디오에 나와, 정청래는 노무현과 등을 져서 장례식에 참석도 못 했다고 되받았다. 하루 만에 이 말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노무현재단의 사료관에는 2009년 봉하마을 조문객 명단에 적힌 정청래의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송영길은 사과했다. 그리고 곧바로 다른 각도에서 다시 공격을 시작했다. 노무현이 한미 FTA를 추진할 때 정청래가 반대의 선봉에 섰다는 것이었다. 17년 전 죽은 대통령의 장례식 참석 여부와 그의 정바카라에 대한 찬반을, 지금 살아 있는 정치인들이 당권을 놓고 팩트체크하고 있었다. 정청래는 지난 3월 검찰청 폐지 법안이 통과된 뒤에도 봉하마을을 찾아 묘역에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다.







괴물과 싸운 죄



노무현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독학으로 사법고시에 붙어 인권변호사가 됐고, 호남을 기반으로 삼은 당에서 경남 출신이라는 지역성까지 겹쳐 처음부터 비주류였다. 실제로 그는 명문대 출신 운동권 정치인들에게 외면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2년 경선에서 그가 이겼을 때도 당의 비주류, 반노 세력은 그를 흔들었고 다른 후보와의 단일화를 시도했다. 탄핵 국면에서는 그를 지지하던 한 인사가 방송에 나와, 그가 가는 곳마다 배척당하고 냉대받았다고 직접 토로하기도 했다. 학벌도 가문도 계보도 없이 오직 대중의 사랑만으로 정상에 오른 사람이, 정작 같은 당의 엘리트들에게 가장 하대받았다.



이재명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는 경북 안동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성남의 공단으로 옮겨 소년공으로 6년을 보냈다. 산업재해로 장애 판정을 받으면서도 검정고시로 중고등 과정을 마쳤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 덕분에 중앙대 법대에 등록금과 생활비를 지원받으며 들어갔다. 명문대 순혈도 아니고 운동권 이력으로 다져진 인맥도 없이, 오직 사법시험 합격증과 대중의 지지만으로 정치의 정상에 올랐다. 문재인 정부 내내 그는 당 안에서 비주류 취급을 받았다는 서사를 갖고 있다. 2021년 경선에서 전남지사와 국무총리를 지낸 정통 코스의 후보와 맞붙어야 했던 기억, 조국 사태 때 그를 향했던 시선들이 그 서사를 뒷받침한다. 노무현과 이재명 사이에는 20여 년의 시차가 있지만, 그 둘을 대하는 당의 문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슬롯학자 크리스토퍼 래시는 《나르시시즘의 문화》에서 현대 슬롯를 나르시시즘의 병리로 진단한 적이 있다. 과도한 자만과 열등감 사이를 오가며, 타인을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는 도구로 쓰는 성향. 이걸 개인의 성격 문제로만 읽으면 얘기가 좁아진다. 학벌과 계보로 자신의 값어치를 증명해야 했던 엘리트들에게, 그런 증명 없이 대중의 사랑만으로 정상에 선 사람은 질투의 대상이기 전에 존재론적 위협이다. 그 사람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이 평생 쌓아 올린 서열의 근거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건 우연히 반복된 두 개의 사건이 아니라, 학벌과 계보 중심의 정치 문화가 구조적으로 찍어내는 결과에 가깝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운동권 출신 학생과 노동자 대표들이 가장 대화하기 힘든 상대였다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믿고,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타락한 반동으로 단정해버렸다고. 독재와 싸우기 위해 뭉쳤던 방식 그대로 뭉치고, 내부의 잘못은 감싸는 관성이 그렇게 굳어졌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의 상당수는 이 경고를 흘려들었다. 그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상대 당의 선민의식과 엘리트주의, 혈통주의와 패거리 정치를 그대로 답습하며, 악한 자와 싸우려면 자신들도 강해져야 한다는 말로 그걸 정당화했다.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 그들만의 정치는 그렇게 조금씩 부패했고, 스스로 부패한 세력이 되어 개혁과 진보를 말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돌려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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