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배재고를 두둔하는 어리석은 어른들이여

특권층은 평등을 억압으로 느낀다

by조하나





사과 가게에서 오렌지를 찾는 사람들



사과 가게에 한 남자가 들어와 소리를 지른다. 왜 여기 오렌지가 없냐고, 왜 배도 안 파냐고, 포도는 어디 갔냐고. 주인은 당황한다. 여기는 사과를 파는 가게다. 처음부터 그랬고, 간판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하지만 남자는 오렌지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결국 사과의 품질도, 가격도, 진열대의 상태도 아무것도 문제 삼지 못한 채 가게만 한바탕 뒤집어 놓고 나간다. 이상한 일이다. 남자는 사과를 사러 온 것도 아니고 오렌지를 사러 온 것도 아니다. 그는 그저 이 가게에 시비를 걸고 싶었을 뿐이다.



지난달 2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배재고 야구부가 광주제일고를 상대로 "가야지, 가야지, 스타벅스 가야지"라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는 "탱크데이"라고 소리쳤다. 8회초, 참다 참다 터진 광주일고 코치의 울분이 경기장에 울렸다. 문구는 우발적으로 튀어나온 게 아니었다. 미리 준비되었고, 경기 내내 반복되었고, 상대가 광주일고라는 사실이 이미 계산에 들어 있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6개월 출전 정지를 의결했다. 그러자 정치권이 움직였다. 국민의힘의 한 원내대표는 "배재고 선수 전체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징계가 과도하다고 했다. 다른 최고위원은 "아이들이 어른들 욕을 따라 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의원은 대통령의 옛 발언을 끌어와 형평성을 물었다. 잘못은 인정한다면서도, 그 인정 뒤에 항상 붙는 말은 하나였다. 그런데 왜 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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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층에게 평등은 억압으로 느껴진다



미국의 학자 캐롤 앤더슨의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문장이 있다. 항상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에게는 평등이 억압처럼 보이기 시작한다는 말이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 곱씹었다. 특권은 결핍이 아니라 충족이라서 매일 체감되지 않는다.



특정 언어로 세상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접근성을 특권이라 느끼지 못한다. 나는 이걸 오랜 해외 생활을 하며 경험했다. 모든 정보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이들에게 가장 우선적으로 닿는다. 한국어를 비롯한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순서는 국가의 힘에 따라 정해진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 자체가 특권이라는 걸 대부분은 인지하지 못한다.



밤길을 걱정 없이 걷는 남성은 그 안전을 당연한 일상으로만 여긴다. 통계청의 2024년 슬롯조사에서 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야간 보행 시 불안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반면 남성은 같은 조사에서 훨씬 높은 비율로 안전하다고 답한다. 같은 골목, 같은 시각, 같은 가로등 아래를 걷는데도 한쪽은 그 길을 그냥 길로 보고, 다른 한쪽은 그 길을 매번 계산하고 대비해야 하는 공간으로 본다. 이 격차를 만든 건 개인의 용기나 소심함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인 범죄 통계와 몸으로 익힌 경험이다. 그런데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었던 쪽은 그 안전이 자신의 성별이 준 특권이라는 걸 자각할 일이 거의 없다.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위협이 무엇인지 상상할 필요조차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하철 계단 앞에서 아무 생각 없이 성큼 내려가는 사람은, 그 순간 자신이 이동이라는 기본권을 아무 장애물 없이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에서 이동권을 요구할 때마다 늦어지는 출근길에 짜증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짜증의 밑바닥에는, 자신이 매일 누리는 이동의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오랜 투쟁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무심함이 있다.



그래서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면, 특권층은 뭔가를 빼앗기는 감각을 느낀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빼앗기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원래부터 누려온 초과분이 이제야 남들에게도 나눠지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 나눔이 시작되는 순간, 특권층의 눈에는 그것이 평등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억압으로 읽힌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특권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젠더 문제에서는 나 역시 평등을 요구하는 쪽에 서 있지만, 이동권 앞에서는 나도 계단을 아무 생각 없이 성큼 내려가는 사람이다. 지하철 시위로 늦어지는 출근길에 짜증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언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이 가진 접근성에 나도 가까워지려고 시간과 돈을 들여 영어를 공부할 수 있다. 그런데 그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다른 층위의 특권이다. 같은 시간에 다른 일을 해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에게는 영어 공부에 쓸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 격차는 노력과 자원을 들이면 조금씩 줄일 수 있는 격차다. 장애는 그렇지 않다. 비장애인이 노력한다고 장애인이 될 수 없고, 장애인이 노력한다고 비장애인이 될 수 없다. 애초에 넘어갈 수 있는 경계가 있어야 노력이라는 말도 성립한다. 그 경계 자체가 없는 곳에서는 노력이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부터가 무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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