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개딸 생활
나는 한국 정치에 오래 냉소적이었다. 대학생 때 트럭에 현금을 실어 나르던 '차떼기당'을 봤고, 자기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탄핵하는 가짜 진보를 봤다. 민주화를 혼자 이룬 양 으스대면서 자신들이 누리는 기득권을 끝내 인정하지 않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던 민주 세력을 스무 살 무렵부터 지켜봐야 했다. 정치를 믿는다는 건 나에게 오랫동안 순진함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냉소에 처음 금이 간 건 4년 전 대선 패배의 밤이었다.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에게 0.73퍼센트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역대 대선 사상 최소 격차였다. 그날 밤 민주당사 사람들의 얼굴은 잿빛이었고, 마무리 인사를 하러 이재명이 들른다는 소식에도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럼 그렇지.' 나는 늘 그랬듯 속으로 되뇌었다. 그런데 당사 앞에 모여 있던 젊은 여성들이 웃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다음에 이기면 돼!"
병풍처럼 둘러서서 이해득실을 계산하던 국회의원들은 다 사라지고, 남은 건 이 웃음뿐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이재명이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웃음에 기대어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그 웃음은 그저 웃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 지 이틀 만에 민주당 서울시당에 온라인 입당자가 1만 1천 명 넘게 몰렸다. 그중 80퍼센트가 여성이었고, 절반 이상이 2030세대였다. 패배한 후보가 당에서 밀려날까 봐, 그를 지키려고 사람들이 움직였다. 웃던 얼굴들이 그날 밤 이후로 실제로 당원증을 손에 쥐었다는 뜻이다.
스스로 버린 이름, 개딸
그들을 '개딸'이라 부른다. 그리고 한국 슬롯는 이 이름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오해했다.
문자폭탄, '수박' 색출, 국회에서 벌어진 흉기난동. 뉴스는 이 모든 걸 '개딸'의 이름으로 묶어 보도했다. 그런데 들여다보면 이름과 실제 사이에 틈이 있다. 2023년 9월 국회에서 경찰에게 쪽가위를 휘두른 이는 56세 여성이었고, 다음날 흉기를 꺼내 자해를 시도한 이는 73세 남성이었다. 개딸이 처음 가리키던 2030 여성과는 나이대가 다르다. 실제로 비이재명계 의원 사무실을 찾아와 항의한 강성 지지자 중 2030 여성의 비율은 높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스스로 개딸이라 밝혔던 이들은 억울해했다. 폭력적인 행동은 자신들이 아니라 양아들, 개삼촌이라 불리던 다른 연령대 지지자들의 몫인데, 언론이 전부 개딸이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2023년 12월, 그들 스스로 이 이름을 버렸다. 대표적인 이재명 지지층 커뮤니티가 '개딸' 명칭의 공식 파기를 선언했다. 개설자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파기된 개딸은 순수한 20대 여성들이었고, 과격한 행동은 나이 든 지지자들의 몫이었다고. 이름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스스로 그 이름을 내려놓았다. 그때부터 개딸은 대깨문, 대깨윤과 나란히 놓이는 멸칭에 더 가까워졌다. 지금 누군가 이 말을 쓴다면, 조롱하려는 마음이거나 오래된 애정을 놓지 못한 마음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낡은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건 시대에 뒤처진 일일지 모른다. 그래도 부른다. 죽은 이름 안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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