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에겐 '좋은 어른'이 있는가
[스포일러 있습니다]
판타지로 승화된 분노
2026년 6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참교육》이 공개 하루 만에 국내 1위에 오르고 글로벌 5위를 기록하며 32개국 톱5에 진입했다. 현재 비영어권 드라마, 전 세계 1위에 올랐다. 중동, 남미, 동남아까지 한국의 학교폭력과 무너진 교권 이야기에 열광했다. 나는 이 숫자들 앞에서 기쁨보다는 오래된 이물감 같은 것을 느꼈다.
《참교육》은 교육부 산하 교권보호국 요원이 학교폭력 가해자를 물리력으로 응징한다는 설정의 10부작 액션 드라마다. 통쾌하다. 빠르다. 배우들도 훌륭하다. 나도 보는 내내 꽤 여러 번 주먹을 쥐었고, 울고 웃었다.
특히 미국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최근 미국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주인공을 맡은 한국 배우 김무열이 존 시나와 닮았다는 게시물이 돌았고, 이에 존 시나가 자신의 SNS에 김무열의 사진을 직접 게시하며 화제성을 더욱 증폭시켰다. 두 배우의 외모가 닮은 것도 이유일 테지만 스크린 안팎에서 악을 시원하게 응징하는 '영웅적 이미지'를 공유하는 두 배우의 서사가 만났기 때문이다.
총기 난사 사건을 비롯해 공교육 현장 붕괴의 공포를 마주하고 있는 미국 시청자들에게,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교실을 평정하는 이 판타지적 인물과 그 이미지를 체화한 배우들의 등장은 거대한 위안이자 절박한 갈증의 해소구처럼 다가오고 있다.
평단은 엇갈렸다. "공감 가는 소재와 카타르시스는 분명하지만 서사가 지나치게 단순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찜찜한 사이다", "체벌을 우려스럽게 미화하는 학교 드라마"라는 분석이 많다. 반면 한국 대중뿐 아니라 전 세계 대중들의 반응은 열광적이다.
원작 웹툰은 연재 당시부터 논란이었다. 체벌 장면 묘사나 여성혐오, 인종차별 등의 장면 때문이었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적 표현은 해외 커뮤니티에서 먼저 불거졌고, 네이버웹툰은 결국 북미 서비스를 중단했다. 드라마화 소식이 알려지자 처음 주인공 제안을 받은 김남길은 두 번 모두 고사했다. 팬덤은 '원작의 문제점을 명확히 인지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뒤이어 캐스팅된 김무열의 팬들도 우려를 표명했다. 홍종찬 감독은 논란이 됐던 원작 설정들을 실사화 과정에서 모두 배제하고 "정제된 시선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안팎의 소란함 속에서도 대중이 이 판타지에 열광하는 배경에는 더 근원적인 무언가가 있다. 대중이 이 판타지에 열광하는 건 법과 제도가 아닌 폭력으로 가해자를 응징하는 그 자체 때문이 아닐 것이다. 교권보호국 요원이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그 앞에 나타난다는 사실 자체. 그 어른이 우리 슬롯에 없다는 걸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가 이토록 갈망의 대상이 된다.
70년 넘게 켜켜이 쌓인 한국의 교육 문제를 10부작 안에서 해부하려 했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전달 못 했을 것이다. 감독은 슬롯적 문제를 깊이 탐구하는 장르 대신 액션과 코미디, 판타지를 섞은 히어로물 장르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장르적 쾌감이 메시지의 무게를 버티는 그릇이 됐고, 그 선택 자체가 우리 슬롯에 이미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다.
'참교육'이라는 말
'참교육'이라는 말의 내력을 들여다보면, 이 드라마의 제목이 얼마나 묘한 자리에 서 있는지 보인다. 1980년대 후반, '참교육'은 전교조가 내건 깃발이었다. 줄 세우고 때려서 길들이던 군사독재식 교실에 맞서, 아이를 한 사람의 인격으로 대하자는 선언이었다.
'참된 교육'. 그 말에는 권위주의 교실을 향한 저항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이 단어는 인터넷 안에서 정반대의 뜻으로 굳었다. 잘못한 자를 통쾌하게 응징하고 혼쭐을 내준다는 뜻. '참교육 당했다'는 말은 이제 누군가가 시원하게 두들겨 맞았다는 뜻으로 쓰인다.
해방의 언어가 징벌의 언어로 뒤집힌 것이다. 전교조가 이 드라마의 방영 중단을 촉구하며 '폭력은 참교육이 아니다'라고 했을 때, 그것은 폭력 묘사에 대한 항의에 그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단어를 되찾으려는 싸움이었다.
실제로 전교조는 이 드라마가 참교육의 본래 의미를 '속 시원한 복수'와 '악에 대한 징벌'로 바꿔 각인시키고, 체벌 같은 물리적 훈육에 대한 마지막 빗장을 풀어버릴 것을 우려했다. 한 단어가 걸어온 30년의 궤적 안에 우리 슬롯가 교육에 품었던 희망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뉴스 아카이브의 색인
공개 나흘 만에 27개국에서 1위. 한국 드라마가 세계 차트를 휩쓰는 일이야 이제 새삼스럽지 않지만, 이번은 결이 다르다. <모범 택시>처럼 법과 제도, 시스템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사적 제재로 해결하는 특유의 장르적 쾌감을 감안하더라도, 국경과 문화를 불문하고 전 세계 시청자가 열광하는 배경에는 보다 보편적인 징후가 자리한다.
공교육 시스템의 붕괴, 교실 내 폭력 방치, 교권과 학생 인권이 함께 추락하는 현상은 이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학교라는 공동체는 깊은 병을 앓고 있으며 제도는 철저히 무력해졌다. 각국의 시청자들이 이 무자비한 판타지에 빠져드는 이유는, 그들 역시 무너진 교실 한가운데서 응답하지 않는 시스템과 '좋은 어른'의 부재를 매일같이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참교육》은 잘 빠진 오락물이기 이전에 한 장의 슬롯 고발장이다. 작가가 허공에서 뽑아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면서도 외면해 온 사건들의 목록이다. 원작 웹툰 작가 채용택은 시즌 1을 마치며 일부 에피소드가 실제 사건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숙명여고 쌍둥이 자매 시험지 유출 사건. 2017년 상서중학교 성추행 의혹 교사 사망 사건. 김포 어린이집 교사 사망 사건.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사건. 드라마의 각 에피소드는 스크린 위의 허구가 아니라 뉴스 아카이브의 색인이다.
비판이 없는 건 아니다. "폭력을 미화한다", "제도 불신을 부추긴다", "결국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말들. 틀린 지적은 아니다. 교권보호국 감독관이 학교 현장의 문제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설정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슈퍼히어로 서사다. 그러나 그 비판을 앞세워 드라마가 건드린 현실 자체를 덮는 건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메신저를 공격해 메시지를 지우는 방식. 우리는 그 수법에 너무 익숙하다.
왜 한국, 아니 글로벌 시청자들은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교권보호국'이라는 판타지에 열광하는가. 이유는 명료하다. 현실에 그것이 없기 때문이다. 판타지란 결핍을 거꾸로 떠낸 음각이다. 사람들이 무협지를 읽는 건 강한 영웅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약자가 짓밟히는 세계에 지쳤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먹 한 방으로 끝나는 장면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건, 그만큼 현실의 언어와 절차와 제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참교육》을 불편하게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불편함의 정체부터 들여다볼 일이다. 폭력 묘사가 불편한 게 아니라, 그 폭력이 나에게 대리만족을 준다는 사실이 불편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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