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군부인>과 자본의 기만, 문화적 자기 부정

'가짜'가 '진짜'의 자리를 탐할 때

by조하나



'픽션'이라는 방패 뒤에 숨은 문화적 자해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전 세계 44개국에서 톱 10에 오르며 글로벌 K드라마 팬들을 열광시킨 <21세기 대군부인>. 그러나 정작 이 화려한 스펙터클을 지켜보는 한국 시청자들의 분노는 맹렬하게 들끓고 있다.



핵심 논란은 11회 즉위식 장면에서 직관적으로 드러난다. 동아시아 전통에서 왕실의 복식과 호칭은 국가의 주권을 증명하는 가장 엄격한 법도다. 극 중 황제가 써야 할 '십이류관(12줄의 구슬이 달린 관)' 대신 제후국 왕의 상징인 '구류면류관(9줄의 구슬이 달린 관)'을 씌우고, 황제에게만 바치는 '만세' 대신 제후국 군주에게나 쓰이는 '천세'를 외치게 한 것은, 한국을 스스로 중국 중심 질서의 하부 구조로 전락시킨 치욕적인 연출이다. 이를 모르는 해외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한국은 예부터 중국의 질서 아래 존재하던 나라'라는 왜곡된 인식을 주입하는 매개체가 된다.


202605171001548163_l.png



특히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사실은 위험의 수위를 높인다. 대중이 접하는 '가짜'가 '진짜'의 역사를 잠식하는 시뮬라크르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팬덤은 드라마 속 거짓 세계관을 한국의 실재 역사로 오인하고, 이는 전 지구적 집단 기억으로 고착화된다. 이 드라마는 일차원적 오락물을 벗어나, 우리 역사를 지우고 그 자리에 '친숙한 가짜'를 이식하려는 문화적 공학의 결과물이다. 픽션이라는 이름으로 덮인 것은 창작의 자유가 아니라, 타국의 자본에 의해 오염된 역사 인식이다.



해외 팬들은 "드라마는 창작된 픽션일 뿐"이라며 한국 시청자들의 정당한 비판을 옹졸한 과민 반응으로 매도한다.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가벼운 팬덤 간의 다툼과 궤를 달리한다. 막대한 자본으로 매끈하게 가공된 가짜가 한 공동체의 아픈 진짜 역사를 지워버리려는 거대한 문화적 폭력에 맞선 치열한 방어전의 시작점이다.






고증의 실패가 아닌, 치밀하게 기획된 '의도'



11회 즉위식 장면의 '구류면류관'과 '천세' 대사는 피상적인 실수나 가벼운 오타로 치부될 수 없다. 이 작품은 2022년 MBC 드라마 공모전 우수상을 받고 3년간 기획된 결과물이다. 이는 일반적인 제작 기간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과 복식, 호칭을 규정하는 시나리오가 수많은 전문가와 제작진의 검토를 거쳐 '공인'되는 시간이다.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의 촘촘한 역사 감수 시스템을 고려할 때, 왕실의 가장 기초적인 예법이 어긋난 채 방송을 탔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왜곡이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아니라, 치밀하게 작위적으로 연출된 '의도'의 결과물임을 증명한다.



드라마가 픽션이라 주장하면서도 한국의 군주제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세계관을 고집하는 것은 드라마 스스로 맞닥뜨린 서사적 모순을 드러낸다. 스스로를 제후국이라 칭하며 '천세'를 외치는 나라가, 어떻게 주국의 승인 없이 근대적 군주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체제로 나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이는 서사적 구멍이 아니라, 한국사를 '주체적인 역사가 아닌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인 종속된 역사'로 프레임하려는 자본의 교활한 세계관이 충돌하며 발생한 파열음이다.



드라마의 연출과 극본, 그리고 각 장면에서 발견되는 오류라는 무수한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뚜렷한 '선'으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주권 국가의 역사를 지우고 세탁하려는 거대 자본의 폭력적인 '의도'가 명백히 드러난다. 김치, 한복, 한글까지 자국 문화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지속적인 선전 속에서, 거대 중국 자본과 얽힌 카지노엔터가 제작한 콘텐츠가 한국을 자발적인 제후국으로 격하시킨 의도를 우리는 날카롭게 파헤쳐야 한다. 이는 단순한 문화적 실수가 아니라, 대중의 무의식 속에 '한국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거짓 역사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려는 '인지 전쟁'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와 기호로 세계를 사유하기에, 매체 속에 교묘하게 이식된 왜곡된 기호들은 시청자의 뇌리에 쌓여 결국 사고와 판단을 지배하는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다. 문화가 가장 위협적인 세뇌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드라마의 오류를 찾아내는 작업을 매개로, 화면 속에 흩어진 파편화된 무수한 '점'들을 연결하여 자본이 은밀하게 설계해 둔 '선(의도와 맥락)'을 예리하게 해독해 내는 주체적인 비판 의식을 벼리는 일이다. 우리가 그 '선'을 읽어내지 못하는 순간, 드라마 속의 허구는 현실의 역사를 집어삼킬 것이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조하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

3,088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5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34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