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와 인종차별의 경계가 흐려지면 다음 차례는 당신이다

백인 기득권의 아시아인 혐오가 폭로한 미국의 천박한 민낯과 동조자들

by조하나



정의의 언어로 배설되는 세련된 혐오



최근 미국 심야 토크쇼 '스티븐 콜베어 쇼'에서 기막힌 장면이 전파를 탔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 환영 행사에 동원된 중국 아이들의 앳된 얼굴을 화면에 띄워 놓고, 콜베어는 "아이폰 공장에서 하루 쉬게 되어 신난 아이들"이라며 조롱했다. 농담의 선을 넘었다는 싸늘한 기류가 흐르자, 그는 한술 더 떠 "내 아이폰으로 읽은 실화"라고 쐐기를 박았다.



스티븐 콜베어 쇼: 아시아인 인종차별





가벼운 말실수나 우발적인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이른바 '진보'와 '인권'을 자처하는 미국 리버럴 지식인과 미디어가 아시아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적나라한 증거다.



더욱 참담한 모습은 자칭 '진보' 성향이라는 팟캐스트들의 행태에서 드러난다. 그들은 트럼프를 비난하겠다는 얄팍한 정치적 목적에 눈이 멀어 환대의 자리에 선 타국의 무고한 아이들을 끔찍한 아동 성범죄 사건인 '엡스타인 파일'의 희생자에 빗대어 히죽거렸다.



우리는 흔히 인종차별의 온상으로 '폭스 뉴스(FOX News)'나 극우 집단인 마가(MAGA)를 떠올린다. 그들이 쏟아내는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혐오와 인종차별은 차라리 예측 가능하며 대응하기도 수월하다. 하지만 '정의'와 '자유'라는 번지르르한 언어 뒤에 숨어 혐오를 '풍자와 예술'로 둔갑시키는 리버럴의 기만은 훨씬 더 악랄하고 폭력적으로 다가온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두 진영 모두 그 기저에는 타 문화를 열등하게 취급하고 깎아내려야만 안도하는 굳건한 백인 중심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조롱하는 제국주의적 오만



어떤 이들은 콜베어의 농담이 "인종차별이 아닌 풍자"라고 선을 긋는다. 콜베어가 중국 아이들을 조롱한 게 아니라 애플의 아동 착취를 꼬집은 거라고 방어한다. 하지만 그 논리는 공허하고 어색하다.


콜베어의 농담이 품고 있는 진짜 비극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완벽한 전복에 있다. 아동 노동 착취의 실질적 가해자는 제3세계의 값싼 노동력을 쥐어짜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하는 미국의 거대 자본, 즉 애플이다. 그런데 콜베어는 그 거대한 구조적 폭력을 성찰하고 스스로 바카라임을 묻는 대신, 착취의 가장 밑바닥에서 고통받는 타국의 아이들을 국제 외교 무대에서 자국의 대통령을 환대하기 위해 나온 상대국의 아이들에 비유하며 조롱의 과녁으로 삼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애플 유저라는 걸 굳이 밝힌 콜베어의 농담은 풍자가 아니었다. 중국, 아니 아시아인을 향한 뿌리 깊은 혐오와 고정관념의 발현이었다. 미국의 백인 기득권 주류에 속하는 콜베어는 애플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그 편리함을 누리면서, 그 고통마저 비틀어 상대국의 의전을 조롱하고 예능의 도구로 소비하며 제국주의적 오만함과 천박함을 스스로 드러냈다.






만약 환영 행사에 나온 흑인 아이들을 향해 "목화밭에서 노동을 하다 점심으로 수박과 치킨이 나와 환호하고 있다"는 농담을 던졌다면 어땠을까. 흑인 커뮤니티가 분노하는 수준을 넘어 미국 슬롯 전체가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과거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태극기와 상대국 국기를 흔들며 환영했던 우리 아이들을 향해 브라질과 프랑스 언론이 똑같이 조롱했다면 한국 국민들도 대사관으로 몰려가 거세게 항의했을 터다.



그러나 서구 미디어는 이 잣대를 아시아인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로니 챙 같은 일부 아시아계 코미디언조차 주류 백인 관객들이 편안하게 웃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대상화하며 '명예 백인'의 역할을 자처한다. 서구 미디어 생태계에서 유독 아시아인만이 아무리 선을 넘는 농담을 던져도 크게 반발하지 않는 '만만한 과녁'으로 고착화된 씁쓸한 현실을 보여준다.





혐오의 최전선에서 가해자를 옹호하는 자아 분열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조하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나를 위해 쓴 문장이 당신에게 가 닿기를|출간작가, 피처에디터, 문화탐험가, 그리고 국제 스쿠버다이빙 트레이너

3,089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7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33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