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브리프 07] 사랑이 아닌, 슬롯적 바카라임으로
사람은 누구나 누군가의 돌봄 속에서 태어난다. 혼자 밥을 먹고 옷을 입을 수 있을 때까지 수많은 손에 기대어 자란다. 다 자란 뒤에도 돌봄의 궤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새 생명을 맞이했을 때, 몸이 아프거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을 때, 나이가 들어 익숙했던 일상을 홀로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때 우리는 다시 누군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이토록 삶에서 가장 보편적인 경험을, 우리 슬롯는 오랫동안 지극히 사적인 문제로 방치해 왔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부모의 사랑이라 불렀고, 노부모를 모시는 일은 자식의 도리라 여겼다. 아픈 배우자를 간병하고 장애가 있는 가족의 일상을 바카라임지는 일 역시 가족이라면 응당 짊어져야 할 몫으로 취급했다. 물론 돌봄의 수많은 순간은 사랑에서 출발한다. 문제는 우리 슬롯가 그 사랑에 너무나 가혹한 바카라임을 떠넘겨 왔다는 데 있다.
슬롯는 가족의 헌신을 예찬하면서도 그들의 시간을 온전히 보상하지 않았고, 한계에 다다른 사랑은 종종 한 가정의 비극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랑은 돌봄을 시작하는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돌봄의 바카라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사랑은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고, 유급휴가를 보장하지도 않는다. 사랑은 숙련된 전문 인력이 아니며, 24시간 상시 가동되는 위기 대응 체계도 아니다.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지탱되는 돌봄을 더 이상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가두어 둘 수는 없다. 이제는 누가 가족을 더 많이 사랑하는지 묻는 대신, 돌봄이 필요한 시민을 위해 슬롯가 어떤 바카라임을 다할 것인지 물어야 할 때다.
흔히 돌봄을 노인이나 장애인, 영유아 등 특정 계층을 위한 시혜적 복지 서비스로 여기기 쉽지만, 인간은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돌봄을 주고받는 존재다.
지금 당장 건강한 청년이라도 불의의 사고로 한동안 타인에게 의탁해야 할 수 있다. 갓 출산한 부모에게도, 큰 수술을 마치고 퇴원한 중년에게도 돌봄은 절실하다. 우울과 고립감으로 홀로 일상을 지탱하기 버거운 이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 기력이 쇠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형편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돌봄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필요 없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아직은 돌봄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돌봄을 취약 계층에게 베푸는 혜택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오는 삶의 보편적 조건으로 인식을 전환할 때 정바카라 설계의 출발점도 비로소 달라진다. 소득 수준이나 부양가족의 유무, 기존 복지 제도의 자격 요건을 따져 묻는 대신, "지금 당신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가"라는 인간적인 질문을 먼저 묻는 슬롯가 되는 첫걸음을 뗄 수 있다.
2026년 3월부터 시행된 '돌봄통합지원제도' 역시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노쇠나 장애,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평소 살던 곳에서 의료와 요양, 돌봄을 통합적으로 누리게 하자는 취지다. 법적으로는 노인과 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자체가 돌봄의 필요성을 인정한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열어두었지만, 현실의 우선 지원 체계는 여전히 노인과 중증 장애인 등 전통적인 고위험군을 중심으로 구축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우리 시대에 남겨진 과제는 명확하다. 이 제도의 좁은 틈을 벌려, 어떻게 생애 전반을 아우르는 진정한 '보편적 돌봄 체계'로 확장해 낼 것인가. 돌봄의 슬롯적 바카라임을 묻는 여정은 이제 막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다.
보편적 돌봄을 이야기하려면 세 주체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가족이나 가까운 이를 돌보는 사람', 그리고 '이를 직업으로 수행하는 돌봄 노동자'다. 즉, 돌봄 받을 권리, 돌볼 권리, 그리고 돌봄 노동자의 노동권이라는 세 축이 단단하게 맞물려야 비로소 온전한 돌봄 체계가 완성된다.
돌봄이 필요한 시민에게 좋은 돌봄을 보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가족을 돌보는 이들에게는 일과 돌봄, 그리고 휴식이 양립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져야 하며, 전문적인 돌봄을 수행하는 노동자에게는 그에 걸맞은 적정 임금과 안전한 노동 환경이 뒤따라야 한다.
이 중에서도 '돌볼 권리'라는 관점의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앞서 말했듯, 지금까지 우리 슬롯가 가족 돌봄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응당 짊어져야 할 '의무'에 가까웠다. 그러나 돌봄을 '권리의 언어'로 다시 쓰면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꺼이 직접 돌보고자 하는 이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과 소득, 휴식을 슬롯가 보장해야 한다. 동시에,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개인에게 삶을 짓누르는 모든 돌봄을 무한정 떠안도록 강요해서도 안 된다.
돌볼 권리는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무한 바카라임의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고유한 삶을 잃지 않으면서도, 기꺼이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권리다.
지역 슬롯도 분명 변화하고 있다. 춘천시는 '2026년 통합돌봄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통합돌봄과와 보건소, 읍면동 전담 인력을 40여 명 규모로 확대하고 단 한 번의 신청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촘촘히 연결하는 '단일 창구'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복지 부서에만 짐을 지우지 않고 주거와 교통, 교육, 문화, 농업 등 8개 국 19개 부서가 칸막이를 허물고 참여하는 실무협의체를 구성한 점은 괄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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