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새로운 세수, 어디에 쓸 것인가

[이슈브리프 08] AI의 풍요를 삶의 여유로

by김하종

AI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덜 일하면서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요즘 AI를 쓰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몇 시간씩 걸리던 자료 조사가 훌쩍 끝나고, 글의 초안을 잡거나 복잡한 데이터를 정리하는 시간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업무에 AI가 스며든다면 우리가 일하는 방식은 분명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다.


실제로 한 기업의 고객상담 노동자 5,172명을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활용했을 때 시간당 업무 처리량이 평균 15% 증가했다. 특히 경험이 적은 노동자일수록 생산성 향상 효과가 컸다. 단일 기업의 사례라 모든 노동 현장에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AI가 사람을 보조해 같은 시간 안에 더 많은 일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여덟 시간 걸리던 일을 여섯 시간 만에 끝낼 수 있게 되었다면, 남은 두 시간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회사 입장에서는 그 두 시간만큼 더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다. 같은 인원으로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매출을 늘리거나, 반대로 필요 인력이 줄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반대로 그 두 시간이 온전히 노동자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똑같은 임금을 받으며 일찍 퇴근해 가족과 저녁을 먹고, 아이를 돌보거나 바카라을 읽고, 산바카라을 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도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울 여유도 생긴다.


똑같은 기술의 발전이고 똑같은 생산성 향상인데,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궤적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AX 시대를 이야기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AI가 만들어낸 부와 시간은, 대체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


기술은 시간을 만들지만, 기술이 시간을 나누지는 않는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은 끊임없이 인간의 수고를 덜어왔다. 기계가 더 많은 물건을 찍어냈고, 컴퓨터가 복잡한 계산과 기록을 대신했다. 자동화는 이전보다 훨씬 적은 노동을 들이고도 같은 결과를 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기술이 노동시간을 줄일 잠재력을 가졌다는 것과, 실제 노동자의 퇴근 시간이 빨라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생산성이 높아졌을 때 그 과실은 여러 갈래로 흩어진다. 기업의 이윤을 불리거나 상품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거나 고용이 늘어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필요한 인력 자체가 줄어들 수도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이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기술이 시간을 만들어낸다는 말보다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은 이것일 테다. 기술은 시간을 절약할 뿐, 그 시간을 누구에게 돌려줄지는 결국 정치와 슬롯가 결정한다. AI도 마찬가지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전 세계 직업을 분석하며, 생성형 AI의 영향을 받게 될 일자리가 전체 노동자의 약 4분의 1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다만 당장 모든 일자리가 소멸하기보다는, 많은 직업에서 업무의 방식과 내용 일부가 변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핵심은 AI의 도입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노동의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관리되는가에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인가, 지켜줄 것인가'에 머물러선 안 된다. AI와 함께 일하게 된 노동자는 이전보다 더 높은 강도의 업무를 요구받게 되는가? 생산성 향상의 몫은 임금과 노동시간에 제대로 반영되고 있는가? 일의 내용이 바뀌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할 때, 그 재교육의 비용과 시간은 누가 부담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이 반드시 함께 따라와야 한다.


기술의 발전이 사람에게 더 많은 성과만을 요구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면, 세상의 생산성은 정점을 찍어도 사람의 삶은 쉴 틈 없이 바빠질 것이다. 반대로 기술이 덜어낸 노동의 무게를 온전히 사람의 몫으로 돌려줄 수 있다면, AI는 우리가 오랫동안 품어온 아주 오래된 질문과 비로소 마주하게 될 것이다.


더 적게 일하고도,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부 역시 저절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시간의 문제는 결국 돈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면 필연적으로 새로운 부가 창출된다. 기업의 수익이 늘고 새로운 비즈니스가 탄생하며, AI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력망과 소프트웨어 생태계도 함께 팽창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 전체의 파이가 커지는 것과 모든 사람의 삶이 함께 풍요로워지는 것도 전혀 다른 이야기다. IMF 연구진 역시 생성형 AI가 생산성과 공공서비스를 혁신할 잠재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이면에 노동시장 충격과 소득·자산 불평등이 심화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경고했다. AI가 낳은 이익을 더 폭넓게 공유하려면 슬롯보장과 조세정바카라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AI가 만들어낸 부 뒤에는 밤낮없이 기술을 개발한 이들이 있고, 큰 위험을 감수하며 자본을 댄 사람도 있으며, 낯선 시장을 개척하며 기업을 이끌어간 사람들의 몫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눈부신 성취의 기반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공공의 연구와 교육 체계, 수많은 시민이 일상에서 무심코 만들어낸 거대한 데이터와 지식, 그리고 전력망이나 통신망 같은 튼튼한 슬롯적 인프라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지금 AI가 열심히 학습하고 대신해 내는 수많은 업무들 속에는, 오랜 세월 그 일을 직접 해온 평범한 사람들의 땀과 경험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AI 시대의 생산성은 결코 어느 한 사람의 손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성과를 기술 기업과 투자자의 몫만으로 설명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을까. 이 지점에서 정치와 슬롯의 역할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금은 단지 국가가 돈을 거둬들이는 강제적인 수단이 아니라, 개인과 기업의 활동으로 빚어낸 부의 일부를 우리 모두의 필요를 위해 다시 엮어내는 슬롯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새로운 세수를 논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영수증에 세목 하나를 새로 추가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새로운 기술이 이전에는 없던 압도적 규모의 부를 만들어낸다면, 그 부의 일부를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슬롯의 공동 자산으로 얼마나 떼어둘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짜 질문이다.




미래대응기금이라는 흥미로운 질문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미래대응기금'은 앞선 상상들을 현실의 제도로 연결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 등으로 장기 추세보다 더 걷히는 세수를 기금으로 적립해 청년, 성장 동력, 지역 발전, 교육 및 인재 양성 등에 투자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이 기금을 신설하기 위한 법률안은 2026년 가을 현재 국회 심사 단계를 밟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정부가 제시한 투자 분야에 AI나 첨단기술뿐만 아니라, 청년의 직업 훈련과 주거,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 같은 삶의 기반들이 폭넓게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 뼈대를 세워가는 제도인 만큼, 이 재원이 당장 춘천이라는 지역에 얼마만큼 배정될지 계산기를 두드리는 것은 너무 이른 일이다.


그래서 지금 춘천이 이 기금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을지 따져 묻는 일은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기금의 이름 그대로, '미래에 대응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근본적인 상상을 펼쳐보고 싶다. 흔히 '미래에 투자한다'라고 하면 반도체 공장을 짓고, 거대한 데이터센터를 올리고, AI 기업을 지원하며 연구개발에 뭉칫돈을 쏟아붓는 장면을 먼저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미래는 결코 기술만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그 고도화된 기술 속에서 매일을 살아내야 할 '사람' 역시 우리의 미래다.


일자리가 바뀌었을 때 새로운 것을 다시 배울 수 있는 '시간', 배우는 동안에도 최소한의 일상을 지탱해 줄 '소득', 이제 막 취업한 청년이 쫓기듯 무리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집',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돌봄의 인프라', 그리고 조금 덜 일하고도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생활 조건'. 이 모든 것을 다지는 과정이야말로 진짜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미래대응기금 같은 막대한 공공 재정을 바라보는 우리의 질문도 응당 달라져야 한다. "어떤 첨단 산업에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가 아니라 "기술이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사람들의 일상과 삶을 위해서는 얼마를 투자할 것인가"를 물어야 진짜 미래에 대응할 수 있다.


춘천에는 이미 AI가 머물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앞선 질문들이 유독 춘천에서 더욱 구체적이고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지금 춘천 동면 일대에서는 '수열에너지 융복합클러스터' 조성이 한창이다. 소양강댐의 차가운 심층수를 데이터센터 냉각에 활용하며 관련 산업을 한데 모으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춘천에는 이미 네이버의 데이터센터 '각 춘천'이 오랜 시간 자리해 왔고, 앞으로 데이터센터와 AI 산업은 춘천의 산업 정바카라에서 가장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에는 이 클러스터 내 AI 데이터센터 용지를 두고 대규모 투자를 전제로 한 논의도 활발히 오가고 있다.


예전의 문법으로만 바라본다면 이 대목에서 조건반사처럼 일자리 개수부터 따져 물었을 것이다. 유망한 기업이 몇 곳이나 들어오는지, 총 투자 규모는 얼마인지, 그로 인해 춘천시의 지방세는 얼마나 늘어나는지 계산기를 두드렸을 테다. 물론 이는 지역 슬롯가 앞으로도 꼼꼼히 짚어봐야 할 중요한 지표들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데이터센터가 춘천에 거대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AI 시대의 물리적 기반이 결국 우리 지역의 땅 위에 놓인다는 뜻이다. 무수히 돌아가는 서버는 막대한 전기를 빨아들이고, 서버를 식힐 냉각설비가 필요하고, 막대한 전력과 통신 인프라에 의존한다. 결국 춘천이라는 지역의 고유한 공간과 수자원을 필연적으로 소모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 돌아와야 할 정당한 몫 역시, 단순한 일자리 몇 개나 세수 몇억 원의 차원을 훌쩍 넘어서야 하지 않을까. 데이터센터와 AI 산업이 이 땅의 자원을 빌려 새로운 부를 길어 올린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반드시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간과 안정된 삶의 범위를 넓혀주는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다만, 이것을 단순히 지자체가 청년수당 몇 푼을 통장에 더 꽂아주는 일차원적인 현금성 지원의 문제로 축소하고 싶지 않다.




돈을 나누는 것보다 삶을 넓히는 것

가령 춘천의 어느 청년이 AI의 도입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거나 일의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고 가정해 보자. 새로운 일을 다시 배우려면 족히 여섯 달은 필요하다. 다행히 지자체의 교육 프로그램 자체는 무료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여섯 달 동안 소득이 끊기고, 버텨야 할 월세와 식비는 과연 누가 내줄까.


당장 내일의 생활비가 없다면, 그 청년에게 무료로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당장 생계를 위해 뭐라도 돈을 벌 수 있는 단기 일자리를 쫓기듯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때, 미래를 위해 모아둔 재원은 단순한 교육비 지원을 넘어 청년들이 온전히 다시 배울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하는 데 쓰일 수 있다.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동안에도 일정한 소득과 쉴 곳이 함께 보장된다면, 사람은 생계에 쫓기지 않고 찬찬히 다음 삶을 기획할 수 있다.


이전에 구상했던 춘천의 공공임대주택인 '청년 봄내하우스' 같은 주거 정바카라도 바로 이 지점에서 AI 시대의 거시적 정바카라과 만난다. 이제 막 슬롯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이나 직업 전환기를 맞은 사람에게 '안정적인 집'이 생기면, 치솟는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부업을 뛰며 갉아먹어야 했던 추가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 즉, 주거 정바카라이 곧 시간을 벌어주는 정바카라이 되는 것이다.


image.png


돌봄도 마찬가지다. 아픈 가족이나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눈물을 머금고 일을 포기해야 했던 이들에게, 탄탄한 공공 돌봄은 단순한 복지 서비스를 넘어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는 핵심 정바카라이다. 대중교통 역시 그렇다. 출퇴근으로 낡은 버스 안에서 하루 두 시간씩 버리던 사람이, 더 촘촘하고 편리해진 대중교통 덕분에 한 시간을 돌려받게 된다면 어떨까. 그 한 시간은 단순한 교통 정바카라의 수치적 성과를 넘어, 누군가의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여백으로 탈바꿈한다.


이렇게 시야를 돌려보면, 복지란 단지 '돈을 나누어 주는 정바카라'이라는 비좁은 프레임에서 벗어난다. 주거와 돌봄, 교통과 교육은 결국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단단한 삶의 기반이다.


AI가 만들어낸 눈부신 부를 이런 곳에 기꺼이 투자한다는 것은, 결국 차가운 기술의 성과를 따뜻한 사람의 시간으로 다시 바꾸어 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image.png


AI가 한 시간을 줄였다면

간접적인 슬롯 정바카라을 넘어, 조금 더 직접적인 방법도 상상해 볼 수 있다. 가령 어떤 사업장에서 AI를 도입한 뒤, 이전에 여덟 시간씩 매달려야 했던 일을 일곱 시간이면 충분히 끝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해보자. 절약된 '그 한 시간'으로 무엇을 할지는 기술이 알아서 결정해주지 않는다. 그 한 시간만큼 새로운 업무를 얹어 노동 강도를 높일 수도 있고, 남는 시간만큼 인력을 감축할 수도 있다. 생산성이 높아진 만큼 임금을 올려줄 수도 있고, 반대로 같은 임금을 받으면서 노동시간 자체를 줄일 수도 있다.


우리 슬롯가 이 마지막 가능성을 조금 더 치열하게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지난 백여 년 동안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루의 상당 부분을 일하는 데 쏟아붓고 있다. AI가 정말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탄생한 기술이라면, 언젠가는 그 눈부신 성과가 '노동시간의 절대적 감소'로도 이어져야 마땅하지 않을까.


물론 주 4일제나 노동시간 단축을 당장 AI라는 변수 하나만으로 무 자르듯 설명할 수는 없다. 산업마다 생산성의 격차가 크고 필수적인 인력의 규모도 다르며, 제도를 바꿀 때 감당해야 할 비용과 고용의 문제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아가야 할 '하나의 방향'만큼은 분명하게 상상할 수 있다. AI가 일해준 만큼 사람이 더 쫓기듯 일하는 슬롯가 아니라, AI가 일해준 만큼 사람이 조금 덜 일해도 되는 슬롯. 생산성이라는 차가운 숫자의 일부를 덜어내어, 사람의 따뜻한 시간으로 나누어 갖는 것이다.


그렇게 돌려받은 시간은 하루의 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한 달의 몇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자녀와 눈을 맞추며 보내는 다정한 저녁이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직업 교육을 받는 든든한 오후가 될 수도 있다. 동네의 작은 모임에 참여하거나 오랫동안 미뤄둔 취미를 시작할 여유일 수도 있으며, 마침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온전한 권리'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삶에 깃든 여백의 시간 역시, AI가 우리에게 가져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부(富)'의 한 형태라고 굳게 믿는다.




지역이 기술의 소비자에 머물지 않는 방법

도시는 흔히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지자체마다 더 큰 기업, 더 막대한 투자, 더 많은 일자리를 내걸고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하지만 다가오는 AI 시대에는 도시의 경쟁력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의해 볼 수도 있다. 단지 AI 기업이 많이 몰려 있는 도시인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AI가 창출한 혜택이 시민의 평범한 삶까지 얼마나 잘 분배되는가'로 말이다.


이 두 도시의 삶의 풍경은 꽤 크게 엇갈린다.

어떤 도시는 AI로 생산성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사람의 일자리를 줄일 것이다. 하지만 다른 도시는 그 똑같은 생산성 향상을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직업 전환을 앞둔 사람을 교육하며, 지역의 든든한 생활 기반을 다지는 데 활용할 것이다.


데이터센터는 그 지역의 막대한 전력과 물만 소모한 채 오직 '기업만의 거대한 자산'으로 덩그러니 남을지도 모른다. 반면 그 산업이 뿜어낸 세수와 투자, 그리고 교육과 지역 산업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우리의 공동 자산'을 조금씩 키워나갈 것이다.


현실에서 과연 어떤 방식이 더 실현 가능하고 지속가능할지는 앞으로 치열하게 따져봐야 할 과제다. 여기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도시가 거대한 기술을 그저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할 것이 아니라 멈춰 서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기술로 무엇을 만들 것인가. 기업은 얼마를 벌어들일 것인가. 지역에서 몇 명이나 고용할 것인가.

그동안 성장 시대를 지배해 온 이 당연한 질문들 끝에, 우리는 반드시 하나의 질문을 더 얹어야만 한다.


"그래서, 시민의 삶에는 무엇이 달라지는가."


image.png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산업의 자리가 아니라 미래를 선택할 여유일지도 모른다

지역에서 청년 정바카라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일자리'부터 떠올리곤 한다. 물론 좋은 일자리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어떤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머무는 이유를 '일자리 하나'만으로 온전히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는 이슈브리프를 이어오며 거듭 확인하고 확신하게 된 사실이기도 하다.


아무리 번듯한 일자리가 있어도 월세가 감당할 수 없이 비싸면 청년은 떠난다. 일자리가 있어도 가족을 돌봐줄 인프라가 없으면 결국 눈물을 머금고 일을 내려놓아야 한다. 꼬박꼬박 임금을 받아도 하루의 깨어 있는 대부분을 노동과 출퇴근 이동에 다 써버려야 한다면, 그 삶의 만족도는 바닥을 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내 밥벌이가 언제 쓸모없어질지 몰라 전전긍긍해야 한다면, 그곳에서 안정적인 미래를 그려보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AI 시대의 청년 정바카라은 단순히 '첨단 AI 인재 몇 명을 양성하겠다'는 단편적인 목표에서 벗어나 훨씬 더 넓고 깊은 시야를 가져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을 때 기꺼이 낼 수 있는 '시간'. 다른 일로 갈아타는 전환기의 공백을 무사히 버티게 해줄 '소득'. 갓 쥔 첫 월급으로도 불안감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집'. 몸과 마음이 아플 때 훌쩍 쉬어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 '안전망'. 그리고 조금 덜 일하면서도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조건'.


이러한 든든한 기반들이 마련될 때, 청년에게 지역은 단순히 출근할 온라인 게임이 있는 곳을 넘어 '내 삶의 미래를 기꺼이 선택해 볼 수 있는 무대'가 된다.


바로 그것이야말로 도시에 온전히 머물고 싶어 하는 '진짜 이유'에 가깝다고 믿는다.




결국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AI 시대에는 전에 없던 압도적 규모의 생산성이 창출될 것이다. 그 격변 속에서 어떤 일자리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어떤 일자리는 새롭게 태동할 테다. 기업의 덩치는 커지고, 새로운 형태의 자산과 세수도 만들어질 것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미래대응기금' 역시 이러한 거대한 변화 속에서 등장한 하나의 시도다. 반도체 호황 등으로 예상을 웃돌아 걷힌 세수를 당장의 지출로 소진하지 않고, 청년과 AI, 지역과 교육이라는 '미래의 영역'에 남겨두겠다는 발상 자체는 분명 곰곰이 짚어볼 지점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그 기금에 주목한 진짜 이유는 제도 그 자체 때문만은 아니다. '미래대응'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툭 던지는 묵직한 질문 때문이다. 과연 우리는 미래를 위해 무엇을 남겨야 하는가. 누군가는 더 거대한 서버를, 더 압도적인 기술을, 더 막대한 자본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그 목록에 '사람의 시간'을 조심스레 덧붙이면 좋겠다. AI가 사람의 수고를 훌륭히 대신해 내는 시대라면, 그 발전의 과실이 사람에게 돌아오는 방식도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 그것은 때로 '돈'이라는 직접적인 형태로 돌아올 수도 있고, 앞서 살핀 것처럼 공공의 주거와 돌봄, 교육과 교통이라는 든든한 인프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침내 조금 더 짧아진 노동 시간과 조금 더 길어진 다정한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우리 슬롯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선택할지는 앞으로 숱한 논쟁과 끈질긴 실험을 거쳐야 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이 한 가지 질문만큼은 꼭 짚고 가야 한다.


AI가 빚어낸 부가 눈덩이처럼 커지는데 정작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더 불안해지고, AI가 수많은 업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면, 대체 이 눈부신 기술의 발전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춘천에 거대한 AI 기업과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미래를 상상하는 일 역시, 그저 화려한 투자 유치 계획서 한 장으로만 끝나서는 몹시 아쉽고 공허하다. 춘천이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가장 먼저 들여오는 도시이기보다는, 그 기술이 빚어낸 풍요가 마침내 사람에게까지 흘러가는 도시였으면 좋겠다.


서버가 더 빠르게 연산하는 만큼, 사람에게는 조금 더 많은 삶의 여유가 생기는 도시.

AI가 더 많은 부를 만들어내는 만큼, 우리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삶의 폭도 조금씩 넓어지는 도시.


AI가 만들어낸 부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AI가 돌려준 시간은 마침내 누구의 것이 되어야 하는가.


그 대답이 오롯이 다시 사람에게로 돌아오는 도시에서 살고 싶다.


#머물이유가있는춘천 #AI의풍요를삶의여유로 #AI시대 #청년정바카라 #청년이머무는도시 #춘천 #데이터센터 #미래대응기금 #노동시간단축 #삶의여유 #기술과사람 #기술의성과를사람에게

카지노 게임의 이전글돌봄이 필요한 순간, 사랑을 의무로 만들지 않을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