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평케 하는 사람인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사용했던 짐들을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아이들에게 써 주었던 생일카드나 크리스마스 카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는 엄마가 아이들에게 어떤 편지를 써 줬는지 잊어버린 기억을 찾아가며 하나씩 읽다 보니, 카드 곳곳에서 '착한 사람이 돼라'는 말이 눈에 띄었다. 내가 자라면서 들어왔던 착한 어린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우리 아이들에게도 습관처럼 썼나 보다.
착한 사람이라. 너무나 많이 그리고 자주 하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한 말이다. 요즘 아이들의 인성교육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을 많이 하지만 무조건 착하게 살지 말라는 말라는 조언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왠지 착한 사람이라 하면 야무지지 못하거나 호구가 되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착한 사람은 항상 남을 배려하고, 하기 싫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이타적이고, 내 것을 포기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고, 그러면서 마음속은 언제나 평안한 물결로 잔잔한 바다 같아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절대 착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과 싸우기도 하고, 동료들과 문제가 있어 불편한 관계를 만들기도 하니까. 내 것이 우선일 때가 많고, 하기 싫은 일은 나 몰라라 하기 일쑤니까. 내 마음은 틈틈이 미움과 원망과 질투와 화로 세찬 파도를 일으키니까.
하지만, 살다 보니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상황에 따라 우리는 착한 사람이 될 수도 나쁜 사람도 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처음 발견하는 곳은 바로 가정에서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착한 아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남편과 소소한 일들을 가지고 싸우기 시작하면서 내가 그다지 착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기뚜껑하나, 치약사용법 하나도 양보하지 못하는 내가 무슨 착한 사람인가 싶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평상시에는 늘 친절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이었지만, 밖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들어오는 날에는 현관 앞 흩어진 신발 한 짝, 방바닥에 돌아다니는 머리카락 한 올도 대충 넘어가지 않는다.
더 나아가 친구나 온라인 게임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와 친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너그럽다가도, 나와 상관없는 사람에게는 얄미울 정도로 인색해지곤 한다. 내 편인 동료에게는 친절하고 배려심을 가지고 대하지만,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날카롭게 가시를 세울 때가 있다. 만일 내가 착한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해야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내게 유익한 사람인지, 나보다 나은 사람인지 무의식적으로 줄을 세우고 있었다.
심리학에 루시퍼효과(Lucifer Effect)라는 것이 있다.
“상황이 인간의 본성을 이긴다. 혹은 개인의 기질을 압도하는 것이 시스템이다.”는 말이다.
필립 짐바르도는 “선과 악의 경계는 침투성이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상황적인 힘에 압박을 받을 때 경계를 건너도록 유발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기질이 착함에도 불구하고 악한 마음을 품을 수 있고, 기질이 악하다 하더라도 착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는 한없이 착하고 너그러운 성도가 회사에 가면 엄격하고 인정머리 없는 상사가 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 교회와 온라인 게임이라는 슬롯적 상황이 사람의 기질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상황은 본성을 이긴다. 내가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인간의 본성은 늘 악했다. 다만 환경에 의해 선의 영역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착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우리를 극한 상황까지 밀어붙이고 결국은 선을 넘게 만드는 것이다. 선을 넘지 않으면 나의 선함을 지킬 수 있지만, 넘을 넘어가게 되면 우리는 악의 구역에 서게 된다.
결혼한 신혼부부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결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배우자가 너무 착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사이가 원만하지 않게 되면 ‘사람이 변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변한 것이 아니다. 연애할 때는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선한 마음을 이끌어낸다. 착한 사람은 더 착한 모습을 보이게 되고, 본성이 악한 사람조차도 선악의 경계를 넘어 선의 구역으로 침투하게 되어 착한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하지만 살다 보면 결국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상대방의 잘못에 집중하지 않고, 상황에 집중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생겼다. “원래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인데, 상황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거야”라고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나의 잘못이나 실수도 보이기 시작한다. “나도 잘한 건 없었네”라는 생각이 들어 금방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상황을 조장하지는 않았는지도 고민해 보게 된다.
영적어른은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의 본성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도록 훈련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선과 악의 경계를 넘지 않고 늘 선하게 그리고 화평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평케 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좋은 사람들과만 화평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느 상황에 처하든지 주변사람들을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롬 12:18).”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영적 어른이 되기 전에는 쉽게 선악의 경계를 넘나들었을 것이고, 그것이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연약함이라 스스로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살았을 것이다. 우리는 자기 합리화에서 벗어나 온전히 선의 영역에 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착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야 한다. 착한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의 주변은 늘 화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적인 어른은 성경 말씀대로 상황을 선하게 만들어 모두를 화평케 한다. 그래서 영적어른은 주님을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영적인 눈이 열리는 것이다.
나는 상황을 선하게 만드는 사람인가. 화평케 하는 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