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거리는 지옥

감사를 흘려보내는 어른

by하빛선

"도대체 당신은 왜 좋다 싫다 표현을 안 해. 내가 그 어떤 걸 해 줘도 반응이 없으니까 신이 안 나."

남편은 가끔씩 나에게 이런 불평을 쏟아붓는다. 나도 인정한다.


나는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생각하고 혼자 삭이고, 기쁜 일이 있을 때조차도 크게 기뻐하지 않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동요하지 않고 해결바카라부터 찾는 무덤덤한 성격이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편안해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니 감정표현에 적극적인 남편은 내 성격을 너무 답답해했다. 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씩 내 속에 있는 말들을 꺼내서 억지로라도 표현해 보려고 시도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어찌 좋은 말들만 들어 있었겠는가. 입 밖으로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친근감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기분 좋은 미소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의도치 않게 상처가 되거나 가르치려는 쓸데없는 충고로 느껴졌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까지 많아지면 하고 싶은 말도 많아진다. 경력자가 되면서, 일하는 자리에 바카라임이 높아질수록 거름망의 두께는 점점 얇아진다. 좋은 의도라는 말과 너를 위해서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아직 여물지 못한 젊은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서라는 핑계로 말을 반복하고, 실패를 줄여주고 싶어서 라는 이유로 자주 입을 연다. 가끔은 아무도 관심 없는 자신의 삶을 6.25 전쟁만큼이나 드라마틱하게 그려내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자제력을 잃고 생각 없이 폭포수 같은 말들을 쏟아내게 된다.


사용하는 단어가 많아지면 격려의 말, 감사의 말도 많아지겠지만, 또한 속에 묻어두고 절대 꺼내지 말았어야 했던 부정적인 말들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할 것이다. 조율하지 못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투덜대는 단어들이 한음 한음 불협화음을 만들어 듣기 거북한 노래가 연주된다. 삼켜야 하는 단어들이 밥 먹다 침이 튀듯 불시에 툭 튀어나와 식탁을 더럽히고 유쾌한 식사가 불쾌함으로 바뀌는 일들이 생겨난다.

가끔은 겉보기에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음절들이 신음소리나 한숨소리의 형태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으음~~', ‘어휴~‘, '하아~~~’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그 소리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불평의 단어에는 독이 묻어있다. 그 독을 삼키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남도 모르게 죽어간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들이다.


C. S. 루이스는 ‘지옥은 투덜거리는, 그러니까 쉴 새 없이 불평하는, 늘 남을 탓하는 분위기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한다. 그냥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그냥 내 생각일 뿐이라고. 누구에게는 말해야 마음의 불편함이 풀릴 것만 같아서라고.


어쩌면 처음에는 지옥과는 상관없는, 그냥 말하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공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가끔은 스스로를 꾸짖으며 다시는 투덜거리지 말아야지 다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날들이 점점 오게 된다.

하나의 불평은 마음에 쉽게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불평을 영양분 삼아 점점 자라나게 된다. 내 마음에서만 뿌리를 내려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날아다니는 꽃씨가 되어 주변사람의 마음으로 날아가 안착하게 된다.


불평은 지옥으로 가는 작은 시작이고 마음의 지옥을 자라게 하는 영양분이다. 그렇게 되면, 불평을 뱉어냄으로 얻고 싶은 자기만족, 드러내고 싶은 자기 정당화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지옥으로 변해가는 치사해진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투덜거림을 싣고 지옥으로 가는 열차를 멈추고,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그 싹을 도려내는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온전한 평안을 누릴 수 없다. 진정한 평안은 우리 안에 불평하는 죄를 고백하고 온전히 깨끗해진 마음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가 매번 입을 다물고 살 수는 없다. 그렇다면 불평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불평을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은 감사이다.


영적 어른은 불평이 아닌 감사를 노래하는 사람이다. 감사가 저절로 밖으로 흘러나오는 사람이다. 내 삶에 주어진 모든 시간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감사를 하다가도 간혹 삐져나오는 부정적인 단어를 꿀꺽 삼킬 수 있는 사람이다. 한 음절의 씨앗도 뿌려지지 않도록, 한 마디의 양분도 주지 않도록 늘 조심하는 사람이다.

영적어른은 그냥 내뱉은 한마디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불평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감사로 살릴 수 있는 그런 마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그런 영적 어른이 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내 입에서 감사의 단어들을 흘려보내려 한다.

이전 08화상황을 선하게 만드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