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하고 살 건데?"라는 질문에 답해 보셨나요

by정혜영


며칠 전, 고교 절친 넷이 모인 단톡방에 한 친구가 유튜브 노래 영상 하나를 올렸다. 서글픈 듯, 애잔한 목소리가 어른의 꿈에 대해 노래하고 있었다.


꿈꾸던 어른이 된 걸까요?
가끔은 무너지는 새벽 밤에도 / 겨우 겨우 버티는
작은 모난 나를 / 어른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노래 도입부부터 모두들 자기 이야기인 듯 감상에 젖어들었는데, AI로 만들어진 노래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AI가 이제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예술적 창작까지 해내고 있다니, AI기술의 발전 속도는 내 손, 발톱이 자라는 속도보다 빠른 듯하다.


노래를 듣고 난 친구들의 감상평은 약간씩 달랐다. 한 친구는 어릴 적 꿈꿨던 어른이 어떤 것이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했고, 다른 친구는 명곡엔 댓글 대신 사연이 달린다며 사연 댓글이 많은 걸 보니 AI가 만든 곡일 리 없다고 했다. 가사가 서글프다는 내 말에 다른 친구가 아직 꿈꿀 시간은 넉넉하다고 위로했다.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과연 우리에게 꿈꿀 시간은 정말 넉넉할까. 퇴직 이후에도 꿈을 꾸며 사는 어른으로 살아가려면 우린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퇴직 이후의 삶은 퇴직 10년 전부터 준비하라는 말을 종종 듣긴 했다. 그러나 삶에 쫓겨 살다 보면 여유 없이 시간을 흘려버리기 일쑤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10년 후를 미리 준비한다는 게 쉬울 리가.


그럼에도 그 노래 가사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꿈꾸던 어른이 된 걸까요"라는 물음. 돌이켜보니 나는 그 질문을 꽤 오래전부터 스스로에게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릴 적엔 어른이 되면 대단한 뭔가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어른이 되고 보니 '되는' 게 아니라 '버티는' 거였다. 눈앞의 하루를 치러내느라,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는 언제부턴가 질문 목록에서 빠져 있었다.


친구가 가볍게 던진 "아직 꿈꿀 시간은 넉넉하다"는 말이 그래서 오래 남았나 보다.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듣는 순간 속으로 뜨끔했다. 사느라 바빠 마음 깊숙한 곳에 제쳐두었지만, 언젠가 다시 꺼내어지길 기다려 온 내 꿈을 들킨 기분이었다.


"그래서 뭐 하고 살 건데?"

돌아보면 이 질문은 살면서 여러 번 받아왔다. 취업을 앞둔 대학 시절에도, 결혼을 고민하던 20대 후반에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땐 뒤에 분명한 다음 단계(취업, 결혼, 육아)가 있어서 질문이 질문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답이 이미 정해진 질문은 더 이상 질문이 아니다. 그런데 '퇴직'이라는 다음 단계 앞에서는 이 질문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이번엔 정말 내가 답을 내어 놓아야 한다.



완벽한 답은 아직 없다. 다만 요즘 들어 어렴풋이 알게 된 게 하나 있다. 그 답은 어느 날 갑자기 번쩍 떠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 주중에 짬을 내어 뭔가를 배우고, 주말에 붓을 들고, 굳이 시간을 잡아 몇 줄이라도 글을 쓰는 그 작고 사소한 반복들이 먼저 있고, 답은 그 뒤에 슬그머니 따라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꿈꾸는 어른'이라는 게 어쩌면 거창한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오늘 하나쯤 좋아서 하는 일을 놓지 않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나는 이미 그 답의 한 조각을 손에 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꿈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한 청년에게 먼 미래에서 다음과 같은 답장이 도착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의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끝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그걸 믿어야 한다는 당부가 뒤이어 적혀 있다.

소설 속 청년에게 그 말이 필요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에게도 비슷한 믿음이 필요한지 모른다. 반려 악기를 찾아 헤매고, 붓을 쥐고, 글을 쓰는 이 작은 몸짓들이 당장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쓸데없는 일은 아닐 거라는 믿음.


이 연재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래서다. 완성된 답을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조각들을 하나씩 늘어놓다 보면 언젠가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당신도 마음 깊숙이 넣어두고 아직 꺼내지 못한 것이 있나요? 그것은 무엇인가요?






이전 02화재테크 바카라이 알려주지 않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