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에서 원어민 강사가 진행하는 영어회화 수업을 들어본 적 있는가?
모든 강사들의 첫 수업은 수강생들의 자기소개로 시작된다. 이름, 하는 일, 취미 등 간략히 자신을 소개한다(한국인들이 나이를 먼저 밝히지 않는 유일한 자기소개 상황이 아닐까). 처음엔 멋모르고 직업을 말했다가 그게 족쇄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반이 달라졌을 땐 자기소개에서 직업을 뺐다. 문화적인 특성상, 첫날 굳이 말하지 않은 개인 정보를 꼬치꼬치 캐묻진 않으므로 그 후론 수업 내내 내 이름으로만 불렸다.
로버트, 산드라, 존, 제니 등 다른 이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불러달라던 영어식 별칭이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국인도 아닌데 영어식 닉네임으로 불리는 게 영 어색해서 난 내 원래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땐 교사라는 명함을 뗀, 내 이름으로 불리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자유로웠다. 사람들이 교사라는 직업에 갖는 선입견(음... 바르고 성실하고 고지식하고...?)이 나라는 사람을 미리 규정하고 내 말과 행동의 한계를 결정짓는 시선이 부담스러웠다고나 할까.
그때 '교사'라는 호칭을 소개하지 않은 건 내 선택이었다. 젊었을 땐 그로 인해 상대가 내게 갖는 스테레오타입이 갑갑했는데, 교사로 27년째 살다 보니 그보다 나를 분명하게 말해주는 게 있을까 싶다. 무탈하게 퇴직까지 이른다면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리며 사는 세월만 40년에 가까워질 테다. 그렇게 불리지 않는 나를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익숙한 호칭이 사라진 뒤의 나는 누구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나란 사람을 명확히 해주던 직업이 사라지면 그땐 난 무엇으로 규정되는가?
내 주변에 퇴직한 선배 교사들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곤 한다. "예전에 00 학교에 있었어요." 혹은 "교직에 있다가 정년퇴직했어요." 이름 앞에 '전(前)'이라는 글자가 붙는 순간, 나를 설명하던 가장 단단한 문장이 과거형으로 바뀐다.
김현경 작가는 『사람, 장소, 환대』에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슬롯 안에서 사람이 되는데(여기서 '사람'은 '인간'과는 다른 의미다), 환대란 곧 상대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다가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다시 떠올렸다. 그건 27년 동안 슬롯가 내게 보여 준 '환대'였다. 교실에서도, 학부모 상담에서도,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제자 앞에서도, 그 호칭 덕분에 내 자리가 명확해졌다.
영어회화 수업 첫날엔 자기소개에서 직업을 뺄 수 있었지만, 퇴직 후에는 그럴 여지도 없어진다. 생각해 보면, 영어회화 수업 시간의 자유는 안전한 자유였다. 이름만으로도 충만할 수 있었던 건 수업이 끝나면 돌아갈 내 자리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언제든 다시 걸칠 수 있는 재킷은 벗어두고 가벼운 차림으로 돌아다닌 셈이다. 그 옷을 더는 입을 수 없을 때도 그렇게 가벼울 수 있을까.
어쩌면, 영어회화 수업에서 얻은 건 자유라기보다 연습이었는지도 모른다. 직함 없이 이름 석 자만으로 서는 연습. 그때는 한 시간짜리 연습이었지만, 퇴직 이후에는 매일 치러야 하는 실전이 된다. 직함이라는 자리를 내어 주고 거두어 가는 주체가 조직이었다면, 그 조직이 사라진 다음 자리는 누가 내어 주는가.
내 이름으로만 불리던 그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꼬리가 빙긋 올라간다. 퇴직 후의 나도 그 이름 하나로 충분히 가벼운 사람이면 좋겠다. 다만 그 가벼움이 텅 빈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름 뒤에 내 자리를 하나쯤 마련해 둔 데서 오길 바란다. 그건 미리 천천히, 내 손으로 마련해 가야 하는 자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