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준비
‘사건’이라고 까지 하기에는 별일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나름 큰 사건이 터져버린 속상한 아침이었다. 아버지가 직접 농사지으신 오이로 만든 장아찌가 상해 버렸다. 10여 년간 쉬지 않고 부려먹은 것에 복수라도 하듯, 요 며칠 김치 냉장고가 고장 난 탓이다.
싱가포르에 살기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의 채소가 사실 조금 성가셨다. 차마 버리지는 못하고 오늘 중에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숙제 같은 것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아버지가 보내주신 채소를 정리하고 있자면 제발 그만 보내라는 말이 절로 나왔으니까...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7년간의 타국 생활은 그동안 익숙함에 속은 소중한 것을 깨닫게 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아버지의 채소다. 언젠가 몸이 아팠던 날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바로 아버지가 농사지은 감자였다. 남편이 삶아준 말레이시아 산 감자는 한입 베어 먹고는 마음만 받았다.
아버지가 퇴직하시고는 주말 농장은 아버지의 본업이 되었다. 이른 아침 아버지는 내게 사진으로 밭의 근황을 알려주신다. 밭에서 갓 따낸 채소들을 펼쳐놓고 찍은 사진 아래에는 늘 설명이 붙었다. 사실 아버지의 채소는 못생겼다. 깻잎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감자는 울퉁불퉁하며, 오이는 작고 볼품없다. 하지만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럽다. 모양은 제각각이어도 아버지의 눈에는 모두 자랑할 만한 것들이었다. 반쯤 감긴 눈으로 채소들의 소식을 받는 것은 소소한 즐거움이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의 채소 사진이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농사일이 바쁜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자 마음이 쓰여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요즘은 왜 채소 사진을 안 보내세요?”
잠시 머뭇거리던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다리를 좀 다쳤어. 수술은 잘됐고 며칠 있으면 퇴원할 거야.”
“수술까지 했는데 왜 이제 말해요?”
“멀리 있는 네가 걱정할까 봐 그랬지.”
아버지가 수술을 받는 동안 아무것도 모르고 지낸 것이 미안했다. 아버지가 아픈 것을 설령 알았더라도 당장 한국으로 달려갈 수 없었을 나 자신에게 화도 났다. 미안함과 무력함을 들키기 싫어 오히려 화를 냈다. 가족이 걱정하는 게 왜 괜한 일이냐며 한참을 따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아버지가 나를 달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아버지 앞에서는 금세 어린애가 되고 만다.
“다음부터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요.”
“알았다. 나는 괜찮은데 밭이 걱정이지. 며칠 동안 손을 못 봤으니 다 망가졌을 거야.”
다친 다리보다 밭을 먼저 걱정하는 목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지금 농장이 중요해요? 아버지 몸부터 챙겨요..”
툴툴대며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매일 밭에 나가 흙을 만지고, 물을 주고, 날씨를 살피며 애정을 들인 아버지의 밭이 망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무거운 마음으로 마트에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가 진열된 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좋은 감자를 고르기 위해 감자를 하나씩 집어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단단하고 매끈한 것, 크기가 적당하고 모양이 예쁜 것부터 봉투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는 울퉁불퉁하거나 작고 볼품없는 감자들이 남았다. 단지 모양이 조금 못생겼다는 이유로 선택받지 못한 것들이었다.
못생긴 감자만 골라 봉투에 담았다. 몸이 아픈 날에도 밭을 걱정하고 정성껏 감자를 키워 냈을, 누군가의 아버지 일지도 모르는 농부의 수고를 봉투에 담았다. 감자가 든 봉투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째 오지 않던 아버지의 채소 사진 한 장을 뒤늦게 받아 든 기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