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 준비
글을 쓰다가 단어 하나에 멈췄다. 이 문장에 어울리는 단어는 ‘마음’일까, ‘감정’일까. 두 단어 사이를 오가며 고민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감정’은 너무 무겁고, ‘마음’은 너무 가벼워서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단어 하나에 집착한 채 끝도 없는 미로를 맴돌았다. 글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본래의 의도는 흐려졌다. 결국 글은 미완성인 채 컴퓨터 바탕화면에 남겨졌다.
며칠이 지나, 단어 하나를 고르지 못해 밀쳐두었던 글을 우연히 다시 열었다. 그제야 처음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가 떠올랐다. 사소한 디테일에 마음을 빼앗겨 정작 중요한 것을 지나쳤던 것이다.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는 잊은 채, 무엇으로 말할 것인가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글을 쓰면서 쉼표 하나, 단어 하나에 갇혀 버릴 때면 처음 품었던 의도는 사라지고 글에는 그럴듯한 껍데기만 남는다.
요리 재료를 손질 할 때도 종종 이 같은 실수를 한다. 며칠 전 중요한 손님을 대접하기위해 필살기인 갈비찜을 했다. 갈비찜에 넣는 무는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야 한다. 오랫동안 끓이는 사이 뾰족한 모서리가 부서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무를 반듯하고 예쁘게 만들겠다는 생각에 거듭 깎다 보니 단단한 속살은 줄어들고 버려지는 무 조각이 수북 해졌다. 손질이 지나치다 보니 먹을 수 있는 것까지 잘려 나갔다. 보기 좋은 모양은 음식을 돋보이게 하지만, 모양이 맛보다 결코 앞설 수는 없다.
글을 다듬는 일도 마찬가지다. 잘 쓴 문장으로 보이려 수식어를 더하고, 더 근사한 단어를 찾느라 오래 망설이다 보면 정작 남겨야 할 것을 잃어버린다. 종종 작고 사소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 처음 품었던 진심을 쉽게 놓친다.
때로는 덜 중요한 것들에 무심해질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을 더 보탤 것인지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 헤아려야 한다. 잘 다듬어진 문장은 화려하게 치장한 문장이 아니라, 처음 품었던 마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문장일 것이다.
다시 미완성 글 앞에 앉았다. 고민하던 자리에 ‘마음’도 ‘감정’도 아닌 ‘진심’을 적어 넣었다. 오랜 고민이 무색하게도 그 단어는 처음부터 그곳에 있어야 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버려야 했던 것은 단어가 아니라 잘 써 보이고 싶은 욕심과 지나친 고민이었다. 남겨야 할 것은 처음 이 글을 쓰게 한 ‘진심’ 하나였다. 마음과 감정 사이를 맴돌던 문장은 진심에 닿고 나서야 비로소 마침표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