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경채 김치

재료 준비

by그리고

“배추가 왜 이렇게 비싸?”

마트에서 시들시들한 배추 한 포기를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이 가격이면 한국에서는 싱싱한 배추로 다섯 포기 정도는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쉽게 장바구니에 담을 수 없었다. 싱가포르에 살게 된 뒤로는 높은 물가에 외식부터 줄였다. 웬만한 끼니는 집에서 해결하고자 기꺼이 삼시 세끼 앞치마를 둘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한국 식재료들은 이곳에서는 구하기 어려울뿐더러 하나같이 비쌌다.


한참을 고민하다 문득 배추 옆에 가지런히 쌓여 있는 청경채가 눈에 띄었다. 배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가격이 매력적이었다.

‘이걸로 김치를 담그면 어떨까?’

말도 안 되는 생각 같았다. 청경채로 김치를 담그다니. 하지만 배추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 저렴하고 싱싱한 청경채에 자꾸만 눈이 갔다.


집에 돌아와 청경채를 손질하며 제발 아까운 액젓과 고춧가루를 낭비하지 않게 되기를 빌었다. 겉절이 양념을 만들고, 양념이 잘 배어들도록 살짝 힘주어 꼭꼭 눌러 버무리고 나서 한 줄기를 집어 먹어 보았다. 아삭하고 시원한 청경채 특유의 싱그러운 향이 무더운 싱가포르 날씨 와도 잘 어울렸다. 마치 열무김치와 비슷하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는 맛이다. 그날 이후부터 우리 집 식탁에는 청경채 김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은 한국에 방문했을 때였다. 한국에서 유명한 맛집에서 차려진 반찬들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청경채 김치는 없어?”

나는 피식 웃었다.

한국에 와서도 아이가 찾은 건 싱가포르 집에서 즐겨 먹던 청경채 김치였다. 배추김치를 대신해서 만들어본 청경채 김치는 어느새 우리 가족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음식이 되어 있었다. 청경채 김치에 성공한 이후 요리 재료가 없을 때마다 아쉬워하기보다,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게 되었다.


어느 날은 미역을 불려 놓았는데 국거리용 소고기가 없었다. 찬장 구석에 놓여 있던 참치 캔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미역국에 참치도 어울리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다 캔을 따서 냄비에 털어 넣었다.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자 한 숟가락 떠먹어 보니 구수하고 진한 바다 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엄마, 고기 들어간 것보다 이게 훨씬 맛있어!”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평소보다 숟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날 이후 참치 미역국은 소고기 미역국을 대신하는 음식이 아니라 가족 누군가의 생일이면 등장하는 우리 집 시그니처 메뉴가 되었다.


남편이 감자탕이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날엔 구하기 어려운 돼지 등뼈 대신 차돌박이를 넣었다.

“뼈 안 발라내고 밥에 바로 쓱쓱 비벼 먹으니까 진짜 편하고 좋은데?”

남편은 이마에 송골송골 땀까지 맺혀 가며 순식간에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필요한 재료가 없다고 해서 못할 것도 없었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고민하다 보면, 상상조차 못 했던 새로운 맛을 만날 때가 있으니까. 완벽한 재료가 아닌 부족함 속에서 새로운 레시피가 탄생하곤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면, 아마 평생 청경채 김치의 아삭함도, 참치 미역국의 깊은 맛도, 차돌박이 감자탕의 새로운 맛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나 둘 만들어진 음식들은 어느새 우리 집 식탁에 자리 잡았다. 정석에서 벗어난 변칙 요리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타지에서 살아가며 만들어낸 우리 가족만의 맛이자 추억이다.

점심은 간단히 짜장 라면을 끓였다. 어김없이 청경채 김치를 함께 올렸다.

“김치 더 주세요.”

젓가락이 바쁘게 오간다. 짜장 라면 한 젓가락, 청경채 김치 한 줄기. 방금 담아낸 김치가 어느새 접시 바닥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다음 장을 볼 때는 청경채를 조금 더 사 와야겠다.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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