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잡초란?

그것이 없으면 나는 더 행복할까?

by백경화

슬롯성이 정말 드럽게 없다. 당연히 조직 생활도 어렵고, 운동도 동료와 합을 맞춰야 하는 종목은 시작할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입사한 회사를 다니면서 20kg 이상이 빠지기도 했고, 이후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면서도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무 성과는 항상 우수했다. 동료들은 퇴사의 이유를 언제나 과도한 업무 강도로 생각했다. 학교를 다닐 때는 체육 시간에 피구라도 할 때면 일단 공을 맞고 나가 있기도 했다. 그런 체육 시간은 재미 없었지만 체력장은 항상 특등급이었다. 소풍, 수학 여행은 야간 자율학습 보다 더 싫었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면서 즐겁고 화목하고 두루 어울려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인지 사람을 대하는 것은 기가 빨린다고 해야 하나? 내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충실하게 나에게만 쓸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살아보니 알겠다.

혼자 공부하는 것, 바카라을 읽는 것,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운동도 수영과 승마를 좋아한다. 이제 어느 정도 수영을 할 수 있으니 단체로 수업을 받기 보다는 자유 수영을 좋아하는데 느린 레인에서 초보자들과 운동하는 게 좋다. 이유는 내가 내 운동의 흐름을 컨트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위기에 떠밀려서 내 호흡보다는 타인에 호흡에 맞추는 건 노동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도 하고, 내 컨디션에 따라 움직일 수 없으니 체력적으로도 힘들다. 승마도 역시 마찬가지다. 마장 내에 말이 여러 마리 나와 있으면 온 에너지가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것 같아서 내 운동에 집중이 안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정원을 가꾸면서 가장 귀찮은 일은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의 계획들을 다 망쳐 놓을 기세로 자라나는 잡초들이다. 그래서 이것들을 잡으려고 1화에서 이미 소개했든 백리향을 심기도 했고, 이것의 습격을 받기도 했고. 이어 기타 지피 식물들을 찾아서 이래저래 실험 중이기도 하다. 잡초는 무자비하다. 함께 살지 않는다. 오로지 제 살길만 꿋꿋하게 살려하기 때문에 정원에서 자리를 잡아 곱게 크고 있는 애들의 밥까지도 몰염치하게 빼앗아 먹고,주인 있는 자리까지도 우격다짐으로 빼앗아 버린다. 뿐만 아니라 잘 크고 있는 녀석들을 올라타 온몸을 조여 자기 살 길만 찾는 놈들이 이 놈들이다. 게다가 번식은 또 얼마나 해대는지. 지들 입장에서는 원래부터 내가 살던 곳에 낯선 놈들이 이민을 해 와서 우리의 터전을 빼앗았다고 할 지도 모르겠으나. 사실 그들이 이런 논리로 공격해 온다면 나는 할 말이 없기도 하다만. 어쨌든 정원의 관리자로 내가 있는 이상 봐 줄 수 있는 이상으로 선을 넘어 버리면 가차없이 절단이 나는 것이 그들의 삶인 것이다.

잡초 제거는 거의 내가 한다. 남편이 도울 때도 있지만 일부라고 할 수 있고 매일 돌보고 챙기는 내가 전체적인 정원을 디자인 하고 있으니 편집과 관리도 내가 하는 게 맞다. 정원을 관리의 최선은 최대한 잡초의 공격을 덜 받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고 나 역시 이런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손이 덜 가는 정원. 그런데 잡초가 없으면 나의 정원 생활은 행복할까?

나는 어떤 자세로 잡초를 대할까? 나는 잡초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잡초는 일단 귀찮다. 그런데 드문드문 나 있다면 정원에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한 방울 주기도 한다. 완벽하게 스타일링 된 시상식의 스타의 모습이 아니라 동네에서 멋 좀 아는 스타일리시한 언니로 보이게 하는 게 드문드문 난 잡초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필요한 불청객 정도. 죽지도 않고 또 와서 주접 한 사발 풀고 가는 각설이 정도. 그런데 문제는 얘가 눌러 앉아서 야금야금 제 동료들을 불러 모으고 자식까지 순풍순풍 낳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박멸 작전이 시작된다.

잡초 박멸 작전에 필요한 도구는 호미 한 자루와 두 겹 장갑 뿐이다. 복장은 절대적으로 튼튼한 진. 위, 아래를 진으로 중무장 한 후 작전에 돌입하는데 사실 내 생에 이때처럼 집중력이 발휘된 적이 없음을 고백한다. 잡초 작업은 물만 마시게 해 준다면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다. 이 일을 하는 동안에는 전혀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음 날이 되고 나서야 몸살이 나고, 골반이 아프고, 손가락이 쑤시고, 빡빡한 청바지의 여파로 장골에 멍이 들고, 통증이 동반된다. 그리고 이 일을 멈출 수 없는 시즌이 되면 결국에는 입술이 부르트고, 등짝이 아프고, 팔을 들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목 디스크로 인한 신경통이 심해져서 병원에서 수액과 침 치료등을 며칠 동안 받아야 한다는 거다. 날이 흐려서 뙤약볕의 공격이 없고, 약한 빗방울 정도가 흘뿌려주는 날이라면 잡초 작전을 수행하기에는 최적의 날이라 이런 기회를 버릴 수가 없다. 덩치는 크지만 뿌리를 얕게 내리는 애들은 첩년 머리채를 휘어잡 듯 야물게 잡아서 손목 스냅으로 시원하게 뿌리채 뽑아 낼 수 있다. 이때의 쾌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뿌리까지 드러난 잡초가 있던 땅의 흙이 포슬한 촉감이 나고 거기에서 지렁이 한 마리가 깜짝 놀란 듯 나와 준다면 그 희열은 그날 저녁 반주를 하면서 풀어내는 무용담이 되기 충분하닥.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일가를 이룬 초화들 사이사이에 얌체처럼 숨어들어 게릴라 전을 펼칠 틈을 보고 있는 놈을 만나게 된다면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 입주민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섬세하게 교통 정리를 한 다음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단단하게 잡아 빠르게 톡 뽑아 내야 한다. 적당한 길이와 긴장감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일은 좀 더 복잡해져서 주변 흙들을 가름하고 다시 손가락으로 살살 흙을 훑듯이 파내가며 끊어진 부위를 찾아내서 결국에는 손톱으로 긁어내듯 부리까지 제거한다. 주로 쇠뜨기들이 이렇다. 겉으로 드러나기는 여리여리 하지만 무시무시한 뿌리를 갖고 있는 민들레는 처음부터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다. 주변을 살펴서 금줄을 치듯 사방을 정리하고 밑둥을 중심으로 넓고, 깊게 호미로 흙을 파내려가야 한다. 눈으로 확인되는 뿌리의 굵기를 보면 이 놈이 어느 정도까지 깊이있게 파고 들어갔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데 절대 부러뜨릴 수 없다는 결연한 각오로 시작해서 두 손으로 뿌리를 잡아 파낼 수 있을 때까지 범위를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뿌리를 쥘 수 있을 정도로 현장에서 시야 확보가 된다면 물을 뿌려서 주변 상황을 내 편으로 만든 후 한 번에 힘을 줘서 온 힘을 다해 뽑아 내야 한다. 성공했다면 외친다. "심봤다!" 이리저리 뿌리를 퍼뜨려서 쥐도새도 모르게 자리를 잡은 두릅도 이렇게 잡아야 한다. 참, 대추나무도 생각 외로 잘 번진다.

타고나길 신경이 오만군데로 뻗치는 나 같은 인간은 이렇게 한 곳에 집중하는 순간들이 필요하다. 어떤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잡초와 나 둘 뿐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둘 만의 사투를 벌이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한 자리에서 오래 쭈구리고 앉아 있다가 무릎을 못 펴서 뒤로 자빠진 때도 있었고, 뙤약볕에서 정신 놓고 작업을 하다가 눈앞이 핑 돈 적도 있었고, 잡초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어 물 안 모금 못 마시다가 탈수 증세가 온 적도 있었으나 작업을 마치고 나면 머리가 가벼워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굳이 다른 사람에게 일을 나누어 하자고 할 수가 없다. 장미 줄기 사이로 난 잡초들을 손가락으로 야금야금 달래서 뽑으려다가 가시에 짤리거나 박히는 날이 있어도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할 뿐이다.

그래도 잡초는 덜 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른 구역보다 손이 덜 가는 구역은 층꽃 나무를 심었다. 고맙게도 올해 아주 풍성하게 잘 자라주어서 층꽃 나무들이 있는 주변으로는 잡초의 기세가 확실히 덜하다. 좀 더 추워지기 전에 양귀비 씨앗을 주변에 뿌려야지. 겨울이 지난 이른 봄 층꽃 나무가 전성기를 이루던 자리는 양귀비가 바통을 이을 것이다. 양귀비가 잔뜩이면 이른 봄 잡초가 올라와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양귀비가 슬슬 자리를 비켜나갈 때가 되면 네페타 스노우 플레이크가 잡초를 억제할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듯 몸집을 불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을 도와 주는 정도만 몸을 쓰면 될 거고. 아, 참! 러시안 세이지의 자리를 옮겨 주어야 한다. 볕이 좋은 곳으로 자리를 잡아줬더니 잡초와 자리 경쟁이 심했고 혼자 이기지 못할 것 같아 동료들을 이주 시켰더니 기가 빨렸는지 단독 생활을 하고 싶으시다고 온몸으로 표현을 하신다. 니예니예, 옮겨 드려야지요. 볕이 좋은 곳을 찾아서 내년 봄 경에 신도시로 이주시켜드리겠습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