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 심었지만 나 좋을 대로 크지 않는다.
시작은 잔디였다. 아니 그 보다 더 시작은 내 땅에 포함된 경사지였다. 하긴 더 거슬러 올라가면 집을 지으려고 산 땅이 경사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심각성을 몰랐던 무지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 모든 것은 자신의 무지함에서 시작한다. 어찌 되었던 경사지가 존재하고 있던 나의 집터는 이곳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이냐는 여러 논의를 만들었고 여러 가지 대안이 나왔지만 그중 가장 아름답고, 쉽고, 저렴한 방법이 선택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잔디였다. 경사지에 잔디를 깔면 옹벽을 높이고, 흙을 더 하면서까지 지면을 높이는 작업을 할 필요도 없고, 우리 집은 유일한 경사지를 낀 집으로 다른 집들과는 차별화된 초록 언덕을 가진 개성 있는 집이 될 것이니 보기 좋은 외관을 갖게 된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토목 공사를 하는 것보다 잔디를 까는 것이 비용적으로도 훨씬 저렴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적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예상했던 것과 같이 촘촘하게 잔디를 입은 경사지는 다른 집들이 보여주는 답답한 옹벽과는 다르게 눈을 시원하게 했고, 살아가면서 경사지를 이용한 정원 디자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게다가 경사지는 외부의 시야를 차단해 주는 기능도 해주었다. 천덕꾸러기였던 경사지는 푸른 잔디를 입고 갑자기 히어로가 되어버렸다.
딱 몇 달만 그랬다.
문제는 잔디었다. 잔디가 그렇게 빠르게 자라는지, 그리고 그 속에 굉장히 많은 벌레들이 살 수 있는지를 미처 몰랐던 것이다. 잔디를 주기적으로 바짝 자르면 괜찮겠지만 문제는 그곳이 경사지라는 것이 또 문제가 됐다. 잔디 깎기 기계를 쓸 수가 없다. 경사지니까. 영화에서 보듯이 평지를 쓱 밀고 지나가면 되는 게 아니었다. 경사지니까. 몇 번의 시도 끝에 잔디 깎기 기계는 포기하고 제초기를 써 보기도 했다. 깎여진 잔디의 단면이 예쁘지 않다. 그리고 깎여나간 잔디를 모아 버리는 일도 엄청났다. 잔디도 종류가 있는지 우리 집 잔디는 다른 집 잔디보다 더 튼튼하고, 굵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정말 성장이 너무 빠르고, 어찌나 빽빽한지 축구장이나 골프장을 연상시켰다. 결국 잔디를 관리하는 일은 1년 만에 포기했다. 그리고 잔디 대신 나무를 심기로 했다.
어차피 잔디는 흙이 쓸려 나가고, 잡초를 막기 위한 역할이었으니 그 역할을 할 나무를 심고, 경사지에서 나무가 자라면 외부 시선을 차단하는 효과는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은 적중했다. 우리는 꾸준히 잔디를 들어냈고, 나무를 심었다. 잔디가 사라진 자리는 다른 풀씨들이 날아와 자라긴 했지만 잔디보다는 제거가 쉬웠다. 나무가 떨군 낙엽들이 자연스럽게 땅을 덮어주기도 하고 잔디와 잡초가 뒹굴어 자라난 곳을 핸디형 잔디깎이로 어느 정도 관리도 가능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잔디가 퍼져나갔다.
잔디는 딱 경사지를 덮어주는 용도로만 쓰여야 했고 이마저도 관리가 불편해서 잔디 면적을 줄이고 있었는데 이 무지막지한 잔디들은 경사지를 넘어 평지까지 촉수를 뻗으면서 땅으로 진격하기 시작했고 애지중지 키우는 초화들을 공격했다. 친절한 이웃인 듯 슬쩍 나타나더니 엄청난 성장 속도를 뽐내며 자라나 성장이 느린 초화들이 먹고 자랄 햇빛을 독식해 버리고는 그들의 자리까지 점령해 버렸다. 사계절을 모두 즐기기 위해 야심 차게 심은 사초들 사이로 파고들기도 했다. 중소형 사초들 사이에 파고들면 마치 신경 쓰이는 새치마냥 계속 거슬리고 줄기로 뻗어나가 새로운 뿌리를 내리를 잔디의 특성상 사초 사이에 파고든 잔디를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이렇게 잔디는 2년 만에 히어로에서 웬수가 됐다. 잔디는 내 정원에서는 퇴출시키고 싶은, 뽑아도 없어지지 않는 쇠뜨기, 갈퀴나물과 동급의 웬수가 됐다.
그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지피 식물이 있었으니 바로 백리향이었다. 땅의 보습과 잡초를 방지하기 위해서 지피 식물은 필요한데 잔디처럼 무자비하지도 않고, 향기도 좋고, 예쁜 꽃도 피는 백리향은 아주 좋은 대안바카라이었다. 어차피 경사지의 잔디는 서서히 정리될 것이니 우선은 평지로 뻗어나간 잔디들을 정리하고 그 자리에 백리향을 심어서 잘 가꾸면 월동 후 다음 해는 잔디 대신 허브향이 가득하고, 동글한 잎과 꽃을 모두 볼 수 있는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차올랐다. 잔디 대신 백리향으로 지피 식물을 대치한 경험자들의 후기도 마음에 들었다. 원하지 않는 곳으로 번졌을 때는 잔디보다 제거도 수월하다고. 땅의 컨디션도 지켜주고, 예쁘고, 향도 좋고, 제거도 쉽다면 단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지피 식물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식재도 쉽다. 한 포트만 원하는 곳에 심어두면 줄기가 뻗어나간다. 가느다란 줄기가 흙만 있으면 뻗어나간다. 진출하려는 곳이 원하는 곳이 아니다 싶으면 손가락으로 쓰윽 들어 올려서 방향을 잡아주거나 가위로 똑 잘라서 퍼졌으면 하는 곳에 두면 또 자기 혼자 스스슥 퍼져 자란다. 마음대로 밟아도 된다. 밟을 때마다 상쾌한 향이 난다. 내 정원을 초록초록하게 덮어 줄 통통하고, 동글한 백리향이 많이 많이 퍼져 나가길 매일매일 기도했다.
정원에 이곳저곳에 백리향 줄기를 뿌려두고 뿌리를 잘 내릴 수 있게 흙도 잘 덮어줬다. 오늘의 나는 무자비한 잔디를 뽑아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이 자리를 백리향이 차지하리라. 발 밑에서 느껴지는 푹신한 백리향의 몸체를 느끼며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달고, 상쾌한 향이 나겠지. 낮게 심어 놓은 초화들과 싸우지 않고 어울려 자라면서 연보라색의 동그란 꽃이 필 때면 얼마나 서정적인 풍경이 될지를 상상했다.
그리고 다음 해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내 정원에서 가장 먼저 봄을 알린 것은 백리향이었다. 군데군데 뿌려 둔 줄기들이 겨울잠을 깨기 시작하자 왕성한 속도로 새 잎을 내기 시작했고 반짝거리고, 통통하고, 동그란 새 잎들은 하루하루 다르게 빈 땅을 채워나갔고, 자리를 잡은 백리향은 동그란 연보라색 꽃다발을 뭉게뭉게 만들어냈다. 그리고 조금 후에는 아주가 꽃이 피었는데 길게 수직으로 속아 오른 아주가 꽃은 진한 보라색이었다. 둘 다 잎은 낮게 깔리며 땅을 덮는데 그들이 만들어 낸 꽃은 하나는 둥글게, 하나는 수직으로 길게 다른 모양을 만들어 냈고, 이어 가볍게 푸르르 올라온 괭이밥 풀의 노란 꽃이 더해지면서 내 정원의 입구는 다양하지만 요란하지 않은 단정한 카펫을 만들었다. 현무암 디딤석 사이에 연분홍의 동그란 꽃들이 피었고, 그 사이사이를 곧게 뻗은 아주가 꽃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리고 거리를 둔 어느 곳에서는 노랗고 작은 괭이밥풀 꽃이 수줍게 비죽비죽 나왔다. 괭이밥풀 정도야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공간을 비울 수 있으니 분홍과 보라의 반복에 변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으니 이른 그 봄은 정말 아름다웠다. 게다가 그 길을 무심하게 걸어 다니는 마당 고양이들은 이 풍경이 실제일까 싶을 정도의 서정성을 더해 주었고 가벼운 고양이의 발걸음에도 백리향은 시원 달달한 향기를 풍겨냈으니 내게 백리향은 완벽에 완벽을 더한 지피 식물로서의 역할을 다 해주고 있었다. 부디 내 정원의 곳곳에 백리향이 빽빽하게 뻗어나가길......
봄이 지나고 여름을 맞이하면서 봄꽃치고는 길게 피는 백리향의 꽃볼도 색을 잃었다. 그래도 동그란 모양은 무너지지 않고 귀엽게 오랫동안 버텨줬다. 여름이면 백리향도 성장을 시작한다. 잎은 더 진한 녹색이 되고, 더 통통해지고, 더 반짝거린다. 향기는 더더 좋아진다. 그리고 몸의 부피가 커진다. 볼륨이 생긴다고 표현하는 게 정확하다. 납작하게 땅에 붙어 있던 애들이 볼록하게 올라온다. 그 볼록한 부분을 밟으면 푹신한 느낌이 온다. 넓게 넓게 퍼져 나가는 모습도 보인다. 부디 내년에는 더 넓게 퍼져야 해. 지구 끝까지, 퍼질 기세로 힘들 내라고! 그렇게 응원을 하고, 기도를 했다.
그러나 그다음 해 알았다. 백리향은 나 좋을 대로 크지 않는다. 아니, 이것도 나의 무지를 기반으로 한 당연한 결과였다. 백리향은 목질화가 된 채로 겨울을 난다. 이 말은 덤불이 된다는 얘기다. 이듬해 봄에 사초들을 정리하면서 발견했다. 기세 좋게 번져 나간 백리향들은 한 계절을 마치고 지하에 뿌리만 남기고 새봄을 기다리는
초화들의 자리를 덤불로 다 막아버렸다. 매발톱이 날 자리를 막아버렸고, 할미꽃의 자리를 막아버렸다. 사이좋게 어울렸던 아주가의 자리도 몸을 부풀려 막아버렸다. 정원은 덩치 큰 덤불로 그득했고, 심지어는 나무들의 밑동과 사초의 밑동도 두터운 덤불로 감고 있었다. 제일 먼저 움직이는 백리향이 덤불로 몸집을 키우고 새잎을 내면 자리를 빼앗긴 봄꽃들은 언 땅을 힘겹게 비집고 나와도 햇빛 한 조각 먹지도 못하고 아사하게 될 광경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이런 비극이 있나.
잔디를 줄줄이 뽑아내듯 백리향도 줄줄이 뽑아냈다. 뻗어나간 줄기에서 새로 뻗은 뿌리가 다른 초화들의 뿌리를 감아 새봄을 준비하던 어린 뿌리들도 달려 나왔다. 잔디 대신 백리향을 쓴 후기를 남겼던 사람의 말대로 잔디보다 제거는 쉽다는 게 유일한 위로였다. 기대했고, 응원했던 녀석에 대한 배신감은 컸다. 최대한 다른 녀석들을 다치치 않게 하기 위해 오로지 손가락으로만 집어내고, 파내면서 백리향을 제거해 냈다. 당연히 빠르게 할 수 없었다. 조심조심, 다른 애들을 다치게 할 수는 없어. 길게 뻗은 줄기를 힘 있게 뽑아내다가 거기에 걸려 있는 할미꽃의 아기싹이 다칠 수도 있고, 봄 정원의 생기를 불어넣어 줄 양귀비의 아기싹이 다치는 건 볼 수가 없었다. 보기에도 여리여리한 니겔라의 어린 싹도, 우리 정원에서는 귀하디 귀한 수레국화의 여린 싹도 다쳐서는 안 됐다. 오로지 문제가 되는 놈만, 오로지 너만 잡는다는 생각으로 2주 동안 고생을 하고 몸살이 났다.
지금도 내 정원에는 백리향이 있다. 이제는 백리향에게 완벽한 기대를 바라지 않는다. 그를 알았으니 그가 있어야 할 공간에서 역할을 해내길 기대할 뿐이다. 내 정원에서 그는 센터로 나올 수 없다. 중앙의 자리는 때마다 각자의 시기에 맞게 자리를 차지해야 할 아이들이 섰다가 사라지는 흐름이 있어야 한다. 백리향의 자리는 그네들이 갈 수 없는 곳에 있다. 외부에서 날아오는 풀씨들의 공격에 땅을 막아주고 있고, 여전히 고양이들의 발걸음에 달고 청량한 향으로 대답을 한다. 가끔씩 길을 잘못 든 백리향은 눈향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둥근 꽃볼을 내서 모르는 사람이 볼 때는 눈향나무의 꽃인 줄 알게 장난도 친다. 지난 봄에 사이 좋았던 아주가 꽃과 잠깐 만났다가 이제는 집에 갈 시간이다 싶어 내가 친히 그가 갈 곳으로 옮겨주기도 했다. 그렇게 살짝살짝 중앙으로 반갑게 마실을 나오기도 하지만 그가 붙박이로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 녀석의 엄청난 장점을 알고 나서 그것으로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나의 욕심이 감당해야 했던 수고로움. 히어로였던 존재가 졸지에 빌런이 되어버린 비극의 현장.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