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습관에 나를 위한 마음을 더하며
제주에서는 아침마다 레몬을 짰다. 처음에는 물에 타 마시다가 당근 주스를 섞어 보았는데, 구좌 당근의 진한 단맛과 제주 레몬의 새콤함이 어우러져 입맛에 잘 맞았다. 구좌 당근이 유명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평소 사 먹던 당근즙과는 다른 맛과 향기에 반한 것은 이곳에 와서였다.
주스를 마신 뒤에는 그날 사용할 에센셜 오일을 골랐다. 알람이 여러 번 울려도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일어나기 싫었던 아침에는 베르가못에 손이 갔다. 상큼한 향기를 맡으며 천천히 숨을 쉬다 보면 기분이 조금 가벼워졌고, 이어 몸을 풀며 움직일 준비를 했다.
한때 나는 운동이라면 숨 쉬는 게 전부라고 말하곤 했다. 제주에서 생활이 단순해지자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었고, 요가와 필라테스, 러닝도 종종 하며 운동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 내 모습이 스스로도 신기했다. 운동을 하고 돌아오면 해야 할 일을 시작하기 전에 내 몸부터 챙겼다는 만족감이 컸다.
몸과 정신 중 어느 쪽이 먼저냐는 물음에 내 대답은 늘 몸이었다. 몸이 피곤하면 익숙한 일도 버거웠고, 마음과 태도 자체가 까칠해졌다. 사실 운동을 하기 위해 시간을 내고 채비를 갖춰야 하는 일이 귀찮은때도 많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하려면 그만한 수고는 들여야 했다.
다른 일정에 밀리거나 하루쯤 미루고 싶어 운동을 건너뛴 날에는 왠지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 또 하나의 부담이 되지 않도록, 그날 할 수 있는 정도를 살피는 연습도 필요했다. 오래 이어가고 싶었기에 생활이 달라지면 순서를 고치고, 하루 빠뜨렸더라도 다음 날 다시 해보려 했다.
아침의 루틴이 익숙해지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도 더 분명해졌다. 매일 마셔도 좋은 맛이 있었고, 유난히 손이 가는 향기가 있었으며, 운동 뒤의 개운함은 다음번에도 나를 움직이게 했다. 몸에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에 좋아하는 이유가 하나씩 붙었다.
제주에서 맞은 새해 날 아침에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단순히 바라보지 않고 마주했다. 다소 낯간지럽긴 했지만 내 이름을 부르고, 올해도 잘 지내보자고 말을 건넸다. ‘아이는’ 하고 소리 내어 입꼬리를 올려보기도 하고, 눈썹솔로 눈썹을 가지런히 빗기도 했다. 핸드크림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익숙한 손길에도 정성을 들였다.
거울 속 얼굴을 찬찬히 보며 피곤해 보이는지,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살폈다. 매일 하던 일에 나를 향한 관심을 보태는 이런 순간이 리추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렵에는 여러 힘든 과정을 겪은 만큼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이 많았으면 했다. 외출할 때는 좋은 기운을 머무르게 한다는 귀걸이를 조금 더 신경 써서 고르고,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고기 모양의 반지를 끼고 다녔다.
우리 가족을 품어주는 공간에도 예의를 다하고 정성으로 가꿔나가고 싶었다. 제주집에 살림을 들이던 때 현관에 행운을 부르는 풍경종을 매달았다. 문을 여닫을 때마다 은은하게 울리는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바카라을 읽기 좋은 자리를 마련하고, 행복과 행운을 뜻한다는 학이 그려진 그릇을 두는 일에도 같은 바람이 담겨 있었다. 매일 바라보고 쓰는 것들이라 그 안에 담긴 뜻도 자주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이런 마음을 ‘운을 모으는 마음’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며 몸과 차림을 챙기고, 집을 가꾸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도 마음을 쓰는 일. 손이 닿는 데부터 정성을 들여보고 싶었다.
바라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결과를 오래 기다려야 할 때는 평소의 생활을 챙기는 일이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끼니를 먹고 몸을 움직이며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에도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만의 루틴과 리추얼로 일상의 한 축을 세워두고 싶었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일이 많았으면 했다. 누군가의 배려 덕분에 일이 수월해지거나 다정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나아지는 날이면, 고맙다는 말을 미루지 않으려 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에는 손을 보태며,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고 싶은 마음을 함께 지니고 지내려 했다.
제주에서 보낸 평범한 아침들이 나를 돌보는 법을 익히는 시간이 되었다. 익숙한 순서 안에서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충분히 느끼는 동안, 나를 챙기는 일도 생활에 자연스럽게 배어들었다. 모든 순서를 빠짐없이 지키려 애쓰기보다, 그날의 나에게 필요한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