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삶의 방식이 이제 고요미학이라는 공간으로
공간과 브랜드를 기획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답해야 하는 물음도 달라졌다. 그저 어떤 곳을 좋아하는지 말하던 사람이 이제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이곳을 만들 것인지 설명해야 했다. 취향을 표현하는 일에서 다른 사람의 시간을 맡는 일로, 생각의 중심이 조금씩 옮겨갔다.
제주에서 좋아하게 된 머무름이 그 바탕에 있었다. 서두르지 않고 차를 마시며 내 감각과 마음을 살필 수 있었던 시간. 그 시간을 서울의 일상 안에서도 이어가고 싶었다. 개인적인 바람에 이름을 붙이고 실제 공간으로 옮기려 하자,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떠올린 분위기에 어울리는 것들을 고르는 데 집중했다. 계획이 구체화될수록 그 선택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살피게 되었다.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빛이 그 사람에게도 편안할지, 마음에 드는 기물이 손에 쥐고 쓰기에도 좋을지, 차를 내는 흐름이 방문한 사람의 시간을 존중할 수 있을지. 한 사람의 감상이 여러 사람의 경험이 되려면 더 세밀한 질문이 필요했다.
그 물음들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 보았다. 고요미학은 차와 공간, 오브제를 통해 도심 속 나를 위한 머무름을 제안한다. 이름을 붙인 뒤에는 그 문장에 맞는 경험을 실제로 마련해야 했다. 차를 고르고, 자리를 만들고, 나를 위해 쓰일 물건들을 놓는 공간까지 같은 뜻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준을 세워 갔다.
그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된 단어는 ‘나를 위한’이었다. 일과 약속, 누군가의 필요나 기대에 맞추어 하루를 보내다 보면 자신의 기분이나 몸의 감각을 살피는 일은 뒤로 밀리곤 한다. 잠시 앉아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 자리가 생활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는 그 사람의 취향을 묻고, 편안한 자리를 마련하고, 좋은 것을 내어주려 한다. 그 정성을 자신에게도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랐다. 마음에 드는 잔을 꺼내고 좋아하는 차를 준비하는 작은 수고에도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담긴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마음으로 기꺼이 머무를 수 있도록 말이다.
이를 공간의 경험으로 옮기는 데에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했다. 마음에 들어 고른 그릇은 차를 담아 마실 때에도 편해야 하고, 차분하게 정돈한 자리에서는 오래 앉아 있어도 편안해야 한다. 준비하는 사람의 움직임과 머무는 사람의 편안함이 잘 어우러지는지도 살펴야 한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아름다움은 그렇게 쓰이는 동안 드러나는 것이었다.
차를 내어드리는 방식에서도 같은 기준을 두었다. 차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자신의 감각으로 한 잔을 즐길 수 있고, 오래 차를 즐겨온 사람은 그 안의 섬세한 차이를 충분히 살필 수 있기를 바랐다. 같은 차를 마셔도 떠올리는 기억이 다르고, 같은 자리에 앉아도 마음이 머무는 곳은 다를 수 있다.
한정된 공간과 시간 안에서 무엇을 먼저 지킬지도 정해야 했다. 하고 싶은 것들이 늘어날수록 우선순위는 더 분명해야 했다. 차의 맛과 머무는 동안의 편안함, 매일 준비하며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지점이다. 그동안 해왔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만큼 초심자의 태도로 지금의 의욕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오래 바카라임질 수 있는 일을 함께 헤아리는 것도 기획의 일부였다.
브랜드에 관한 바카라을 읽으며 메모해 둔 생각들도 이 일을 다시 보게 했다. 한 사람의 관점이 쓰임 있는 물건과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오래 이어지기까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살폈다. 처음 떠올린 생각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실제로 쓰이면서 다듬어진다. 내게도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감각과 함께, 사람들의 경험을 듣고 선택한 것을 꾸준히 돌보는 능력이 필요했다.
모든 판단에 확신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살폈다고 생각한 뒤에도 다른 방법이 더 나을지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는 지금의 선택에 어떤 이유가 있는지, 놓친 것은 없는지 다시 확인했다. 모르는 것을 묻고, 조언을 듣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다음 일을 정했다.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처음 하는 일 앞에서 배우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를 잘 지키고 싶다. 아마도 실제로 부딪히며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 안에서 또 성장해 나갈 것이다. 의도한 만큼 편안하게 쓰이는지, 어떤 순간에 도움이 필요한지. 이곳에서 생겨날 경험을 통해 공간을 돌보는 내 감각도 깊어져야 한다.
문을 여는 날을 생각하면 두려움과 설렘이 동시에 찾아온다. 과연 일반 카페나 티하우스 같은 곳이 아닌 이곳에 발걸음을 해 주실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오랫동안 고민한 것들이 한 사람의 실제 하루에 닿으면 어떻게 느껴질지 궁금하다. 그와 함께 문을 연 뒤의 날들도 생각하게 된다. 매일의 준비를 이어가고, 작은 불편을 알아차리고, 필요한 것을 고쳐 가는 시간이다.
준비하는 동안 눈에 띄게 진전되는 날도 있었고, 원점에서 맴도는 날들이 이어질 때도 있었다. 조급한 마음은 평정심을 흔들리게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고, 일단 눈앞에 마주한 일을 부단히 해 나가다 보면 이 일을 조금씩 배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미학을 오래 이어갈 힘도 그런 날들 속에서 얻고 싶다.
이 일을 하는 나의 생활도 함께 잘 돌봐야 한다. 잘하기 위해 배우고 애쓰는 시간과, 힘을 풀고 다시 살필 수 있는 시간이 모두 필요하다. 내가 바라는 공간을 오래 지켜 가려면 내 일에도 지속할 수 있는 리듬이 있어야 한다. 머무름을 권하는 이 일을 하며 나 역시 내 하루를 성실하게 살피려 한다.
〈제주에서 온 고요〉를 연재한 이유도 이 과정과 닿아 있다. 공간이 모습을 갖추기까지 한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어떤 기준을 세우고, 무엇 앞에서 망설였는지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 내 선택의 이유를 확인했고, 설명이 부족한 부분과 더 살펴야 할 것을 알아차렸다.
그 기록을 읽는 분들에게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떠올릴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좋아하는 시간을 생활 안에 어떻게 둘 수 있을지, 오래 마음에 품은 생각을 어떤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볼 수 있을지. 내게도 답을 찾는 과정이었기에 그 망설임과 선택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고요미학에서 보낸 시간이 생활로 돌아간 뒤에도 작은 감각으로 남았으면 한다. 하루 어디쯤에 자신을 위한 시간을 둘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되는 것, 좋아하는 것을 고를 때 자신의 마음을 조금 더 믿게 되는 것. 누군가를 위해 정성을 들이듯 자신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마음이 일상의 어느 순간에 떠오르기를 바란다.
연재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제 나는 다시 고요미학의 자리로 돌아가 준비해 온 공간을 살필 것이다. 저마다 어떤 하루를 보내고 이곳에 오시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 오신 분들을 귀하게 맞이하고 싶다. 그리고 그 한 잔을 내어드리는 정성을, 이곳의 평범한 하루로 만들어 가고 싶다. -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