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다정함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다.
나는 별것 아닌 것들을 오래 기억하는 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행동인데
나는 이상하게 그런 것들이 오래 남는다.
초겨울쯤이었던 것 같다.
달랑 쭈리 맨투맨만 입고 나온 나에게
어깨 위로 뭔가 툭 하고 걸쳐졌다.
“너 춥잖아. 입술이 보라색이야.”
하며 본인의 외투를 빌려주었다.
평소에는 내가 외투를 빌려주는 쪽이었는데
막상 내가 빌림을 당해보니까(?) 생각보다 꽤 감동이었다.
나보다도 키도 체구도 작은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내가 추운 걸 발견하고 기꺼이 자신의 외투를 빌려주었다.
나는 그게 참 고마웠다.
중학교 때 처음 지하철을 타야 했을 때도 생각난다.
어디서 표를 사야 하는지도,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도 잘 몰랐던 나를
친구들이 만나서 같이 데리고 다녀줬다.
친구들이 내리면 나도 내리고
갈아타면 나도 따라가고.
그때는 마냥 고맙고 좋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조금 귀찮았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 밖에도 우산이 없던 날 자기 외투를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같이 뛰어준 친구,
신발끈이 풀리자 내 가방을 메주거나 신발끈을 묶어준 친구,
내가 못 먹는 음식을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피해준 친구가 있었다.
대학생 때는 내가 취할까 봐 술잔에 몰래 물을 따라주던 친구도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막대사탕 맛을 기억해뒀다가 사다준 친구도 있었다.
결혼할 때 네일이 답답해서 못 하겠다고 하니
내 손에 맞게 네일팁을 만들어준 친구도 있었다.
이런 걸 생각하다 보면
나는 참 사소한 것에 감동하는 사람인 것 같다.
캔 하나를 따주는 것도 좋고
내가 지나가듯 한 말을 기억해주는 것도 좋다.
정말 별것 아닐수도 있는데 그게 좋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많이 건넸던 것 같다.
친구가 지나가듯 말했던 것을 기억했다가 생일에 선물해주기도 하고,
사람이 많은 자리에서 혼자 겉도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한 번 더 말을 걸기도 했다.
나도 낯을 많이 가리면서 말이다. ㅋㅋ
예전에 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너는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더 먼저 보는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생각해봤다.
어쩌면 나는 사람에게 받은 작은 마음을 오래 기억해서
그 사람의 좋은 모습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물론 서운한 일도 있고
상처를 주고받다가 멀어진 관계도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나에게 잘해줬던 순간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었다.
좋았던 건 좋았던 대로 남았다.
나는 이제 이런 것들이 나를 알아가는 데에도 꽤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걸 안다.
나는 어떤 것에 마음이 움직이는 사람인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어떤 마음을 받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보면 나를 알아가는 일은
꼭 거창한 질문에서 시작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왜 이게 좋았지?”
그 질문 하나면 충분할 때도 있다.
나는 작은 마음을 오래 기억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작은 마음들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꽤 많이 행복했던 사람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