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길이가 아니라 결이다

초를 볼 때 우리는 먼저 길이를 본다. 얼마나 탔는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가늠한다. 삶도 그렇다. 오래 사셨다고 하면 위로가 되고, 일찍 가셨다고 하면 안타까워한다. 사람의 삶을 셈할 때 가장 먼저 꺼내는 자는 나이다.


그러나 길이는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초는 많이 남았는데도 꺼지고, 어떤 초는 생각보다 오래 탄다. 손에 쥘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살다 보면 정작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놓치기도 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리느라 지금 타고 있는 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날도 있다.


나는 손에 쥘 수 있는 것을 '결'이라 부르고 싶다. 나뭇결, 물결, 숨결, 마음결. 결은 길이와 달리 눈금으로 재지 않는다. 어떻게 타는지, 어떤 빛을 내는지, 곁의 사람에게 어떤 온기가 닿는지가 결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길이의 초라도 어떤 불꽃은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 어떤 불꽃은 조용히 한 사람의 손만 비춘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는 가릴 수 없다. 다만 불꽃마다 무늬가 다르다.


나무를 잘라 보면 나이테가 보이고, 그것은 한 해에 한 줄씩 지나온 시간을 결로 알려 준다. 볕이 좋고 비가 넉넉했던 해에는 줄이 넓고, 가물고 추웠던 해에는 좁고 촘촘하다. 좁은 줄이라고 없던 해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촘촘한 줄이 나무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힘들게 지나온 해도 나무의 무늬가 된다.


아이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든 예뻐 보인다. 서툴게 넘어지고, 엉뚱한 말을 하고, 같은 이야기를 몇 번씩 되풀이해도 웃음이 난다. 그런데 나이 드신 분들이 비슷한 행동을 하면 마음이 다르게 움직일 때가 있다. 같은 말을 되풀이하시거나 느리게 움직이시는 것이 답답하고, 때로는 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그 마음을 부끄러워하기보다 한 번 들여다보고 싶었다. 어쩌면 초가 처음 타오를 때와 한참 탄 뒤가 다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갓 붙은 불꽃은 맑고 곧게 오르지만, 오래 탄 초에서는 그을음이 나고 연기가 오르기도 한다. 그 연기를 초의 잘못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오래 타 온 초가 지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그 자리에는 그분이 오래 타 온 시간이 있고, 우리의 초도 언젠가 그 자리를 지나간다. 그때 내가 어떤 눈으로 보아지기를 바라게 될지를 생각해 보면, 연기 너머의 불꽃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초가 어떻게 탔는지는 결로 나타나고, 그것은 남아 있다.


오늘 내 초가 어떤 결로 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거창한 불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다. 누군가의 곁이 조금 환해졌다면, 오늘의 불은 제 몫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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