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어떻게 사느냐가 전부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죽음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겨울, 집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얼어 죽어 있었다. 나는 그 고양이를 잘 싸서 묻어 주었다. 그대로 두면 추운 곳에서 계속 추위를 느끼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는 꿩 박제가 있었다. 정말 살아 있는 꿩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그것이 신기해 보였다. 나중에는 불쌍해 보였다.
어른이 되어서는 몇 번의 장례식을 치르면서 알게 되었다.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같은 모습이다. 다만 하나는 불이 켜져 온기가 있고, 하나는 불이 꺼져 온기가 없다. 그 차이일 뿐, 같은 모습이다.
죽음은 모두에게 같은 얼굴로 온다. 돈이 많든 적든, 유명하든 이름 없이 살았든, 마지막에는 같은 자세로 눕는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촛불로 말하자면, 초가 다 녹든 갑자기 꺼지든 불이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장례식장에 가면 사람들은 먼저 초의 길이를 묻는다. 얼마나 사셨느냐고. 그리고 초가 꺼질 때 아프게 꺼졌는지, 편안하게 꺼졌는지를 묻는다. 꺼질 때 초가 아직 길게 남아 있었으면 아쉽다고, 좀 더 사셨어야 하는데 하고 말한다. 초가 짧게 남아 있었으면 장수하셨다고 말한다. 같은 초라도 남은 길이와 꺼진 모습에 따라 하는 말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초들에게 위로를 건넨다.
그런데 다르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분이 자신의 할머니 장례식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웃었다. 할머니가 가족들이 모이기 좋은 날에 맞춰 돌아가셔서, 가족들이 다 모여 잘 보내드렸다고 했다.
초는 꺼졌지만 온기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온기는 남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내 초는 어디에서 어떻게 꺼질지 모른다. 다만 오늘 내가 어떤 불로 타고 있는지는 오늘 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