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나를 모르는 시골에서 조용히 살기

미션 임파서블

by상모솔새

앞서 소개한 바 있듯이 한때 나에게는 입신양명이라는 꿈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 마음도 공존했는데, 공공연히 사생활이 알려진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의 삶이 얼마나 피곤할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 로맨스 소설가가 필명으로 글을 써서 작품이 아주 유명해졌지만, 본업이 따로 있으며 주변사람들도 그의 정체를 모른다는 소문이 있었다. 고향 마을에 현수막을 내걸겠다는 원대한 꿈이 다소 좌절된 이후에는 그 작가처럼 되는 게 내 막연한 소망이었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는 알아도 나 자신은 익명의 존재로 남기를 바랐다.


물론 내가 나고 자란 이곳에서, 비록 잠시 나갔다 왔다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존재가 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엄마아빠의 딸로 시작해서 김주무관 아내, 누구네 며느리, 땡땡이 엄마, 무슨 가게 사장까지 나를 장식하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그중에 이름 석 자로 표시되는 나 개인에 대한 정보가 제일 적은 데다, 정작 사람들은 내 이름조차 모를 수 있다는 사실은 시골살이의 웃긴 부분들 중 하나다.


개인으로서의 내가 무얼 좋아하고 잘하는지는 사람들의 관심 밖이지만, 내 유래가 어디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아이는 있는지에 대해서 사람들은 항상 궁금해한다. 마땅한 유원지도 없고 먼바다에서 놀러 온 상어처럼 화젯거리가 넘쳐나지도 않는 이곳에서는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다.


이 지역 토박이이신 우리 어머님은 70대 여성으로, 시장 구경을 좋아하신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유심히 보시는 건 시장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이다. 어머님은 걸어 다니는 인명사전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숟가락 사정을 훤히 꿰고 계시기도 하다. 읍내의 어느 가게는 집주인이 누구인데 그 댁 아들은 두 명이며 그중 먼저 결혼한 것은 작은아들이고 그 집의 손자가 지금쯤 몇 살이 되었는지까지. 그런데 그 손자가 지금 지나가는 초등학생이다, 같은 이야기는 수차례 들어도 신기하고(이걸 어떻게 다 기억하지?) 들을 때마다 새롭다(한 번 듣고 나면 까먹는다는 뜻).


조금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시골에 온 이상 이러한 인명사전에 오르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호기심은 피할 수가 없다. “그래서 어디서 온 뭐 하는 사람이래?”


자주 가는 약국의 약사님은 여기서는 보기 드문 젊은이다. 이 지역 출신이 아닌 건지 알려진 정보도 전무하다. 여기 출신이라면 알려진 정보가 있을 거라는 전제부터가 좁은 사고방식이긴 하겠다. 어느 날 약사님이 우리 가게에 손님으로 오셨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서 눈을 마주친 순간, 동시에 멈칫. ‘아니 이 분이 왜 여기에 있지?’ 분명 그런 소리가 매장 내에 울려 퍼진 듯했다. 쉬는 날인데 밖에서 손님을 마주치다니 상당히 놀라셨으리라, 나도 약사님이 손님으로 오셔서 너무 놀랐지 뭔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볼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더군다나 익명성 보장, 개인정보보호 같은 단어는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사람들의 내밀한 속사정이 소문으로 도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주의를 깊게 기울이지 않아도 개인정보는 은근히 널려있다. 동네 의원 벽면에 붙은 관리바카라임자 서류를 보면 원장님의 나이도 알 수 있다. 내가 아침마다 커피를 사는 카페의 사업자등록증에도, 시장상인회의 명단에도 역시 이름과 생년월일 정보가 있다. 주소는 말할 것도 없고.


나는 내 이름이 흔하다는 사실이 항상 흡족했다. ‘아무도 나를 모르기’에 크게 도움이 되는 요건이기 때문이다. 공무원 재직시절 온나라 메신저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수십 페이지의 동명이인이 있었고, 같은 조직 내에도 성까지 같은 사람이 있었다. 성씨만 다르고 이름과 나이가 같은 동기와 나란히 앉아 근무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러니 웹에 내 이름을 검색한들 진짜 나에 대한 정보가 나올 리 만무하다. 하지만 키워드에 지역명만 살짝 추가한다면? 진짜 내 정보가 등장한다. 가게를 오픈한 내용과 당시 나이까지 등장하고, 놀랍게도 주무관 시절 보도자료를 낸 것까지 당시 담당부서와 함께 기재되어 있다.


여기서 뿌리내리고 살게 되니 나를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나를 모르고 내 작품을 알아야 하는데 내 신상만 점점 널리 알려져 가고… 뭐, 현수막 얘기도 그랬지만 삶이 항상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원하는 것도 바뀌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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