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명절에 장사하기

by상모솔새

짧고 굵었던 추석명절이 끝난 뒤, 장은 아주 작게 섰다.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없어서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아니 저 오늘 국산 브로콜리 구해야 하는데요. 우리 매장 앞 채소 아저씨도 저어기 건너편 채소 사장님도 안 오신 데다가, 족발 사장님도 모자 사장님도 쉬시는 모양이었다. 불과 5일 전의 대목장 하고는 딴판이다.


이번 추석, 연휴 전날이 장날에 딱 맞아떨어져서 장은 여느 명절 때보다도 북적거렸다. 사람들은 전날부터 미리 와서 전동차로 자리를 맡아 두기도 했으며, 평소엔 비어 있었을 공간들은 살뜰히 물건들로 채워졌다. 원래 장에 찾아오는 상인들 말고도 지역 곳곳의 어르신들이 직접 기른 먹거리를 이고 지고 나오신 까닭이다. 알맞게 익은 사과대추, 마시고 남은 음료수병에 담긴 제피가루 등 얼핏 보아도 품목은 다양했지만 나도 명절 장사 준비로 바빠 제대로 둘러보질 못했다. 요리조리 사람들 사이를 피해 가게로 출근하는 길에는 요양보호사로 추정되는 중년 여성을 대동한,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들 조합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일 년에 단 두 번, 중대사가 아니겠는가.


우리 가게로 말할 것 같으면, 분명 명절은 대목이긴 하다. 다만 지나치게 노동집약적인 데다 나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인 탓에 획기적인 매출을 기대하진 못한다. 온전한 금융치료는 힘들겠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과자를 구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내가 직접 정성껏 구운 과자를 적은 양이나마 명절 선물로 전해드릴 수 있다는 건 마음에 위안이 된다.


평소 인력대로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일하는 우리 가게의 주변에는 떡집과 튀김집들이 있다. 생각해 볼 것도 없다, 명절에 얼마나 바쁘겠는가. 떡집은 송편이며 차례 지낼 때 쓰이는 시루떡을 층층이 쌓아서 식히고, 튀김 가게에서는 해가 떠 있는 동안 기름이 지글지글 끓는다. 친척, 형제자매, 아들, 며느리 할 것 없이 동원할 수 있는 인력들은 모두 모여 일한다. 어머님은 우리 가게에서 나랑 일하시면서, 옆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신상명세를 읊어 주시곤 한다. 이번 추석 때는 저 집 딸이 일찍 와서 일하네, 저 집에 원래 사장도 명절이라고 와서 도와주는갑네.


본래 우리 시장 안에는 튀김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 분식집 한 군데였는데, 몇 해를 거쳐 점점 늘다가 이제는 네 군데에서 명절에 전과 튀김을 판다. 평소에는 반찬집이거나 고깃집이거나 해물파전을 하는 곳들이다. 이쯤 되면 서로 간의 사이가 괜찮을지, 지나다가 인사들은 하시는지 괜스레 궁금해지지만, 속으로만 궁금해하기로 한다. 명절 장사 준비로 바쁜 내가 기름 냄새도 좀 맡고 새우튀김도 집어먹을 수 있는 건 아무튼 이 가게들 덕분이다. 우리 가게 바로 옆집에서는 냉동새우가 아닌 대하로 새우튀김을 만든다. 매장에서 일하다 말고 갓 튀긴 달큼한 새우를 맛볼 수 있는 건 명절의 소소한 기쁨이다.


해가 짧아져서 이제는 연장근무를 조금만 해도 깜깜해지는데, 명절을 앞두고서 어두운 시장에서 일하는 게 우리뿐만이 아니란 건 상당히 위안이 되었다. 사실 개중에서는 우리가 가장 일찍 퇴근했다. 떡집의 불빛은 깜깜한 시장 안을 밤새 밝혔을 것이다. 아니 그치만 떡집은 매출이 우리랑 단위가 다른데… 생각하다가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에도 생각이 닿는다. 그러다가 나의 체력적 한계를 인정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퇴근하기로 한다.


근처 떡집에는 젊고 힘이 센 두 아들이 있다. 평소엔 하나씩만 발견되는데, 명절에는 두 명 모두 나타나 쌀포대를 번쩍번쩍 들고 일하곤 한다. 사실 사장님 본인도 기골이 장대하신 분인데 두 아들은 그에 비하면 날씬하게 보일 정도다. 내 체력이 저 정도였다면 지금보다는 많은 매출을 올릴 텐데, 하고 덧없는 생각을 해 보았다. 손은 쉬지 않고 일했지만 창 너머로 바깥을 보니, 재미있는 상황도 관찰된다. 시장 안의 다른 떡집 사장님이, 집 앞 떡집의 창고에서 포대 두 개를 얻어다가 구루마로 끌고 나가시는 모습. 그리고 ‘ㄱ’ 튀김집의 지금 사장님과 옛날 사장님(두 분은 친척관계)이 떡집에 가서 포장박스를 빌려다 오시는 모습 등. 그래도 아직 정이란 게 살아있구나 하며 마음이 훈훈해진다. 튀김 하시는 사장님들끼리는 여전히 어떤지 모르겠지만…


추석 당일 오전, 읍내에서 가장 바쁜 업종은 단연코 카페. 일하기 위해 카페인을 채우러 간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받는 데에는 십오 분이 걸렸다. 다들 일찍이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나서기 전인지, 끊임없이 주문이 밀려들었다. 명절 당일이라 몇 곳이 휴무하는 바람에 더 그랬다. 면 단위에서는 커피를 구할 수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우리 지역에 평소 사는 사람보다 외지에 나가 있는 자손들의 수가 더 많은 건지. 당일 읍내 카페들은 커피를 마시고자 하는 사람들로 미어터졌고, SNS에는 순차적으로 얼음소진 조기마감 소식이 올라왔다.


준비한 추석 물량이 다 소진되고 나서는, 우리도 문을 닫고 남은 명절을 지냈다. 나는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예매해 둔 영화도 포기했지만… 순식간에 남은 주말도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월요일이지 뭔가.


한 주를 시작하는 커피를 사면서 동네 카페의 명절 장사 후일담을 들을 수 있었다. 듣고 보니 읍내에서 가장 큰 제빙기를 보유한 덕택인지 탓인지 조기마감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한다. 오직 일 년에 두 번, 명절을 위해 장만한 제빙기라고 하는데 그 역할은 톡톡히 한 듯하다. 아마 오는 설까지는 제 실력을 발휘할 일이 드물겠지.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평소처럼 손님이 적었기 때문이다. 명절은 끝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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