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적으로 까이면서도 나는 웃었다

by고금

비슷한 일은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있었다. 출입처 간담회가 있던 날이었다. 행사 시작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탓에 나는 빈자리를 찾아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는 대충 목례만 나누고 곧바로 행사가 시작됐다.


나중에 자리가 한 번 바뀌었고 행사는 계속 진행되던 중이었다.

그때 다른 회사의 대선배가 갑자기 행사 중간에 끼어들며 진행자의 말을 끊었다. 그 선배는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자신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며 돌연 공개적으로 나를 지적했다.


“뭐 설명하시는건 잘 알겠고 (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저건 나한테 인사도 안 하더라.”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인사를 못 한 건 내 잘못이었다. 늦게 도착했고 정신없이 자리를 잡느라 제대로 모든 선배들에게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그렇다고 내가 평소 선배들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인사를 대충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자 생활을 하면서는 선배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꽤 신경을 썼고, 적어도 예의 없는 사람으로 찍힐 만한 행동은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더 당황스러웠다. 한 번의 실수가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내 평소 태도까지 의심받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부러 안 한 것도 아닌데…. 이걸 꼭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저렇게 말해야 하나?’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달랐다.


“죄송합니다. 제가 늦게 도착해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선배님.”


그러면서 나는 또 웃었다.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상대가 더 이상 기분 나빠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웃었다.


그때의 나는 내가 잘못한 것과 내가 공개적으로 당황한 것을 따로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잘못했으니까 그냥 웃고 넘어가자.’

‘대선배인데 내가 뭘 어쩌겠어.’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인사를 못 한 건 분명 내 실수였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지적받는 순간 느꼈던 당황스러움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잘못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불편할 수 있었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웃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의 나는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미안하다는 말과 미안한 표정을 넘어 상대가 불편하지 않도록 내 감정까지 정리해 보여주려고 했다.


그 웃음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때도 불편한 상황을 빨리 끝내기 위해 웃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웃는다고 해서 불편한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인사를 못 한 것은 내 잘못이니 그저 사과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사과하는 얼굴에 굳이 괜찮은 척하는 미소까지 덧붙였다. 잘못한 만큼만 미안해하면 되는데 행여나 상대가 더 불편해할까 봐 내 표정부터 서둘러 정리해 버린 것이다.


생각해 보면 늘 그런 식이었다.


상대가 선을 넘었을 때도, 내가 실수를 했을 때도, 심지어는 아무 일 없이 그저 공기가 어색해졌을 때조차 나는 습관처럼 웃고 봤다.


그렇게 매번 입꼬리를 올려가며 지키려 했던 건 대체 무엇이었을까. 결국 껍데기뿐인 관계나 분위기, 타인의 기분 같은 것들이었다. 정작 그 모든 순간 속에 가장 자주 빠져 있던 사람은 나 자신이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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