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을 가장한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의 슬픈 반사신경

by고금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교묘하게 저지르는 무례는 대개 큰소리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웃는 얼굴로, 장난스러운 말투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툭 던져진다.


“살 좀 빼야겠다. 얼굴이 아주 달덩이네.”

“그 상태로 시집은 가겠니?”

“이마가 왜 이렇게 넓어? 완전 얼굴의 반이네”


실제로 농담이랍시고 내가 들은 말들이다. 이런 말들은 놀랍도록 자주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오간다. 공교롭게도 그 과녁은 대부분 외모, 결혼, 나이, 연애처럼 개인의 자존감과 맞닿아 있는 영역이다. 상대가 쉽게 반박하기 어렵고 상처받기 쉬운 곳일수록 농담은 더 강한 무기가 된다. 정작 듣는 사람은 하나도 웃지 못하는데 말이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이상하리만큼 쉽게 화를 내지 못한다.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이 되기 싫어 “살이 좀 쪘죠” 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맞장구로 억지웃음을 지어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기막힌 노릇이다. 상처를 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그 어색한 공기를 수습하고 불편함을 감추는 역할은 늘 상처받은 사람의 몫일까.


여기서 우리는 방향을 틀어 이 무례를 던진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왜 굳이 하고 싶은 말을 농담처럼 돌려서 할까.


물론 아무 생각 없이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농담은 처음부터 공격할 의도를 품고 있다. 대놓고 말하면 자신이 무례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농담’이라는 포장지를 씌우는 것이다.


“너 뚱뚱해.”라고 말하는 것과 “얼굴이 아주 달덩이네.”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 전자는 노골적인 공격이지만 후자는 웃으면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다.


상대를 깎아내리거나 조롱하는 방식의 이런 유머를 ‘공격적 유머(Aggressive Humor)’라고 부른다. 이 공격적 유머가 교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다 해놓고 농담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더 글로리>의 ‘추 선생’이 완벽한 예다. 사람 신경을 긁는 헛소리를 툭 던지고는 특유의 얄미운 억양으로 “넝~담~”이라며 상황을 덮어버리는 그 태도. 현실의 가해자들도 똑같다.


내가 억지로 웃어주면 그들은 ‘내 유머 감각이 통했다’며 상대를 깎아내린 우월감을 만끽한다. 반대로 내가 정색하고 화를 내면 “장난인데 왜 그래?”, “농담도 못 받아주네. 왜 그렇게 예민해?”라며 이 마법의 방패를 꺼내 들고 식간에 바카라임을 내게 떠넘긴다.


공격을 한 건 상대인데 졸지에 나는 농담 하나 못 받아들이는 예민하고 속 좁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어느 쪽이든 가해자는 손해 볼 일이 없다. 농담은 무례한 사람들에게 가장 가성비 좋은 공격 무기인 셈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 방패를 너무 쉽게 인정해 준다는 데 있다. 내가 억지로 웃어주는 순간 상대가 던진 말은 ‘농담’으로 깔끔하게 세탁된다. 갈등을 피하려 지었던 나의 가짜 미소가 상대에게 ‘앞으로 나에게는 이런 말을 해도 괜찮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다. 한 번 허용된 말은 다음번에 조금 더 거칠어지고, 어느 순간 그 무리 안에서 가볍게 후려쳐도 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나도 오랫동안 그랬다. 상대가 농담이라고 하면 웃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웃지 않으면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았고, 정색하면 내가 너무 예민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해도 먼저 웃었다.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도 내가 더 초라해졌다.


왜 나는 상처받은 뒤에도 웃고 있어야 했을까.


이 잔인한 굴레를 겪으며 나는 하나의 뼈아픈 사실을 알게 됐다. 상대가 농담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웃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농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서 그 말의 무례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누군가 농담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선을 넘으려 한다면 예전처럼 입꼬리를 끌어올려 비겁함을 완성시켜주지 않으려고 한다.


굳이 언성을 높이며 싸울 필요도 없다. 그저 웃음기를 싹 거둔 얼굴로 담담하게 말하면 된다.


“재미없어요.”

“그런 말은 듣기 불편합니다.”


어쩌면 그게 전부일지도 모른다. 농담인지 아닌지를 내가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 웃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분위기를 망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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