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산 성지

최양업 신부님의 아버지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어머니 이성례마리아

by지드

1.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마지막 발자국

안양시 만안구 병목안로에 위치한 수리산 성지는 울창한 숲과 계곡을 품은 아늑한 곳입니다. ‘병목안’이라는 지리적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마치 병의 목처럼 수리산으로 오르는 아주 좁은 외길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좁은 입구를 지나면 이내 넓고 울창한 숲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조선시대 관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기에 이보다 최적의 지형은 없었을 것입니다. 성지는 이처럼 깊은 오지에 들어온 듯한 고요함과 평화로움으로 오늘날 이곳을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수리산 성지는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열린 성지’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처음 순례자를 맞이하는 성지 성당 앞뜰에는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한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의 아내 이성례 마리아의 동상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신앙으로 삶을 지탱했던 부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들의 숭고한 신앙을 먼저 묵상하게 합니다. 이곳에서 터전을 잡고 교우촌을 일군 두 분은 조선의 두 번째 사제이자 12년간 초기 조선의 사목을 온전히 짊어졌던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부모입니다. 아마도 이들의 신앙적 영향과 눈물의 기도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최양업 신부님의 탄생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천주교 박해를 피해 오지로 온 교우촌 신자들은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신분을 초월하여 서로를 돕고 위하는 희생적 삶을 살았습니다. 그 중심에는 늘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이 있었습니다. 성인은 본래 유복한 명문가 출신이었으나 신앙을 위해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리고 박해를 피해 고난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을 겪다가 마지막으로 수리산 성지 일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마지막 정주터인 수리산 성지 일대에서 친척과 교우들을 모아 산을 개간하고 담배를 심고 옹기를 구워 팔아가며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특히 이곳의 담뱃잎은 질이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 최고의 상품이었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이곳은 담배촌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습니다. 자신을 돌보지 않는 희생과 봉사로 교우들은 수리산 공소를 세우고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을 공소 회장으로 추대하여 끈끈한 신앙 공동체를 유지해 나갔습니다.

좁고 험한 병목안 골짜기를 지나 마주하는 수리산 성지의 평화로움처럼, 고단한 삶의 좁은 문을 통과할 때마다 이곳에 서린 선조들의 숭고한 숨결을 기억합니다. 그들이 뿌린 피와 땀의 씨앗이 우리에게 사랑의 결실로 맺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눈물의 기도자리, 고택 성당

성지 내 성당을 지나 산길 위쪽으로 오르면 도심의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과 달리 낮고 소박한 지붕을 얹은 고택 성당이 순례자를 포근하게 맞이합니다. 이곳은 과거 박해시대의 신자들이 살았던 전통 초가집과 한옥의 형태를 갖췄습니다. 관군의 눈을 피해 숨어 살던 눈물겨운 옛 공소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관리의 어려움과 산불의 위험 때문에 현재는 초가 대신 기와를 얹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의 형태로 보이도록 설계되어 영성적 상징을 더했습니다. 성당문을 열고 들어가면 짙은 나무 냄새와 함께 은은하고 따뜻한 조명이 감돌아 마치 오랜 여행을 마치고 고향집을 찾아온 듯한 깊은 평안함과 위로를 선사합니다.

이 고택 성당은 단순한 기념건축물의 의미를 넘어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의 순교신앙과 그의 거룩한 발자취를 깊이 묵상할 수 있는 거룩한 공간입니다. 제대 바로 앞에는 모진 매질과 고문 끝에 신앙을 증거하며 숨을 거둔 성인의 유해(팔뼈 일부)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순례자들은 그의 숨결을 느낄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성인의 삶을 조용히 묵상할 수 있습니다. 성인은 생전 ‘칠극’(17세기 초에 중국에서 발간된 바카라. 인간이 범하기 쉬운 일곱 가지 죄의 근원을 분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일곱가지 덕행을 가르침)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신앙을 닦고 정진하였다고 합니다.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은 늘 이 바카라을 곁에 두고 삶에서 실천했으며 교우들에게 살아있는 영성의 모범을 보이며 살았습니다.

또한, 이 고택 성당은 15세의 어린 장남 최양업을 멀고 먼 이국땅으로 보낸 부모의 결단이 이루어진 눈물의 자리이기도 합니다. 부모가 밤마다 무릎을 꿇고 아들과 조선의 교회를 위해 바쳤던 기도의 숨결이 고택 성당의 벽과 기둥마다 고스란히 스며있는 듯합니다. 따스한 조명 밑에서 감실의 성체와 성인의 유해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순례자는 그 고요한 머무름만으로도 지친 일상의 삶을 위로받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살았던 신앙 선조들처럼 고단한 삶을 하느님께 기꺼이 봉헌할 수 있는 새로운 영적 용기를 얻게 됩니다.


3.십자가의 길과 성인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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