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몰라요?"
3부. 그런데 개발자가 됐다고?
입사한 지 이틀 차, 바카라상 아래에서 키보드 키캡을 발견했다. 알파벳 'R'과 한글 'ㄱ'이 쓰여 있는 키캡이었다.
'이게 왜 여기 있지?'
개발자들이 키보드를 좋아한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누군가 사무실에서 커스텀 조립이라도 한 모양이다. 주인을 찾아줄 겸 사람들 키보드를 하나씩 구경했다.
이상하다. 맞는 키보드가 없다.
그나마 몇 번 얘기해 본 총무팀 대리님께 자리에서 키캡을 주웠는데 누구 건지 아냐고 물었다. 대리님은 어색하게 웃더니 대표님 거라며 말했다.
"자주 보실 거예요."
그 의미를 알게 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디자인을 웹 화면으로 옮기는 퍼블리셔로 일한 지 2년, 작은 외주 개발 회사로 이직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열댓 명 규모의 회사였지만, 대표는 개발자 지망생들 사이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동안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되기 위해 퇴근 후 독학으로 화면을 만드는 도구인 리액트를 공부한 끝에, 드디어 '개발자'라는 타이틀을 명함에 새겼다.
입사 후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신규 프로젝트가 생겼다. 인력이 부족해 대표와 나, 그리고 열 살 어린 입사 동기인 남자 직원이 투입됐다.
동기는 이곳이 첫 슬롯생활이라, 사바나 한가운데 놓인 토끼처럼 늘 귀를 쫑긋 세우고 긴장한 상태였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하고 나약한 토끼는 곧장 대표의 먹잇감이 되었다.
물론 동기의 실력이 조금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신입이라고 해서 자비란 없었다. 대표는 신입 둘에게 벅찬 퀘스트를 주고 우리가 그걸 해결하길 바랐다. 봇물처럼 터지는 오류를 보면 으르렁댔다. 대충 설명해 주고 이해하지 못하면 '머리는 장식이냐'고 했고, 나름대로 혼자 해보겠다고 코드를 짜 오면 '생각이란 걸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나 하라'고 했다.
같은 신입이었지만, 대표에게 나는 한 살 차이 나는 여자 직원이라 막 대하기 불편했던 모양이다. 모든 화살은 한참 어리고 남자인 동기에게 쏟아졌다.
어리바리한 신입 둘을 데리고 하는 프로젝트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고객사의 요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때마다 대표가 화를 푸는 대상은 두 가지였다.
동기, 아니면 키보드.
쌍욕을 하며 키보드를 미친 듯이 내리치는 대표를 보며, 키캡이 굴러다니던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되었다.
시시각각 벌어지는 하이에나의 토끼 사냥 끝에, 동기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3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다. 나 역시 현타가 많이 왔지만, 그럼에도 퇴사를 결정하지 않았던 건 띠동갑 사수 때문이었다.
아, 위로 띠동갑이 아닌 아래로 띠동갑.
이제 겨우 스물 초반, 지금껏 대화는커녕 거의 접해본 적 없는 나이였다. 그런 그가 팀장을 단 이유는 분명했다. 마이스터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디자인 인턴 경력이 있는 그는, 디자인부터 개발까지 빈틈없이 해냈다. 이 회사는 그가 있어 굴러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도 완벽할 수는 없었다. 아직 슬롯생활을 많이 겪어보지 못한 슬롯초년생이 본 리더십이 대표뿐이라, 사수의 리더십도 대표를 닮아 있었다.
같이 점심을 먹을 때면 한참 동생 같아 보이는데, 사무실에만 들어오면 쉽게 말도 걸기 어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에게는 늘 '이것도 몰라?' 하는 뉘앙스가 묻어 있었고, 그래서 질문 하나를 앞에 두고도 한참을 망설였다. 큰마음 먹고 물으면, 대답은 어김없이 '이것도 몰라요?'로 시작했다. 때로는 '개발하고 싶은 거 맞아요?' 하며 나의 열의를 묵살하기도 했다. 대표의 쌍욕보다도, 사수의 그 악의 없는 의아함이 나는 더 힘들었다.
그래도 그는, 모르는 게 뭔지도 모르는 내가 개떡같이 물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리고 설명만큼은 늘 끝까지 해줬다. 내가 이해할 때까지.
그의 머릿속은 개발 백과사전인가 싶었다. 몇 날 며칠 고민하던 것을 사수가 5초 만에 해결해 준 날, 나도 그런 코드를 짜는 개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수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와 나의 실력 차이가 너무나도 커서, 오히려 스스로가 무능해 보였다.
어린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가진 그가 존경스럽고 부러웠다. 그 실력만큼은 정말 본받고 싶었다. 하지만 열두 살이나 어린 사람에게 '이것도 몰라요?'를 들을 때마다, 나의 알량한 자존심은 무너지기만 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울 때마다, 나는 자꾸 작아졌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아침 다시 출근했다.
입사한 지 6개월쯤 지났을까. 급여가 늦게 입금되니 양해해 달라는 문자가 자꾸 오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지나자 모아둔 비상금도 바닥이 났다.
늘 밖에서 사 먹던 점심도 어느새 도시락을 싸 오는 분위기가 되었다. 사무실을 오가며 마주칠 때면 다들 머쓱한 미소로 서로 괜찮냐는 안부를 물었다.
매일 치열하게 버티던 나도, 결국 회사를 나왔다.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도록 권고사직으로 처리했다.
동료들과 서로 카톡으로 주고받은 프로세스 족보를 수능 공부하듯 외우며 노동청 건물에 들어섰다. 창구 안쪽에 앉은 직원들은 다들 무표정하게 타이핑을 하고 있었다. 경찰서의 은행 창구 버전 같은 느낌이었다.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대기표를 뽑고 기다리면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려 했지만, 뇌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누구라도 같이 올걸.
별생각 없이 혼자 온 걸 후회하던 순간, 내 번호가 불렸다.
담당자는 기계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읊었고, 나는 떨리는 손을 티 내지 않으려 힘주어 서류를 아크릴판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건 내가 대표를 임금 체불로 '신고'하는 과정이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도 모른 채, 이제 가도 된다는 말에 그대로 건물을 나왔다.
이게 끝인가? 이제 나 밀린 급여 다 받을 수 있는 건가?
얼떨떨했다.
입사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하늘이 유난히 맑고 높은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