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너무 잘됐다고 하는데
3부. 그런데 개발자가 됐다고?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에 믿을 만한 사람이 더 필요하다며 함께 일하자고 했다. 지인과 일하다 혹시 관계가 불편해질까 걱정돼 그의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지 못했는지, 그는 1년 사이 세 번째 제안을 해왔다. 마침 실업급여도 끝나가던 참이라, 이번엔 진지하게 커피챗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다섯 명이 꾸려가는 작은 스타트업의 여섯 번째 멤버가 되었다.
첫 출근한 날, 회사의 서비스를 설명해 주던 대표가 이런 말을 흘렸다.
"우리 지금 OO, OO 같은 대기업이랑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투자를 받거나 그쪽에서 인수하거나 할 가능성이 높아요."
별생각은 없었다. 나는 내 능력을 펼치고 더 성장할 곳을 원했을 뿐, 딱히 대기업을 바라진 않았다.
새 사수는 나보다 열 살이 많았다. 아래로 띠동갑이던 전 회사 사수와는 정반대였다. 첫인상은 꽤 셌는데, 막상 얘기해 보면 엄청 친절했다.
화면 뒤에서 데이터를 처리하는 백엔드 개발자 출신인 사수는 코드 이해도가 누구보다 높았지만, 미적 감각은 없었다. 실용적인 코드는 잘 짰지만, 화면 구도는 엉망이었다. 디자이너가 없는 회사에서 그 빈틈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인지 사수는 늘 나를 존중해 줬다. 프론트는 우리 둘뿐이라 유난히 더 나를 챙겼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해도 늘 성심성의껏 답해 줬다.
'이것도 몰라요?'는 없었다.
출근한 지 일주일쯤 된 어느 날, 대표가 말했다.
"우리, ○○의 계열사가 될 거예요."
누구나 이름을 아는, 그 유니콘 기업이었다.
에…? 이렇게 갑자기?
얼떨떨했다.
아직 동료라 부르기도 어색한 동료들은 한껏 들떴다. 주위에 딸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엄마는 동료들만큼이나 신이 났다. 같이 개발자 취업을 준비했던 친구들도 부러워했다. 다들 너무 잘됐다고 하는데, 정작 나만 무덤덤했다.
오히려 걱정이 앞섰다. 대표는 이제 바빠질 거라고 달뜬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아직 이 서비스가 다루는 분야에 대한 지식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고, 코드도 다 파악하지 못했다. 동료들과도 아직 어색했고, 이 회사에 적응하기도 전이었다.
입사 3주 만에, 나는 두 번째 사무실로 출근했다.
아직 인수 계약이 끝나지 않아, 본사에 상주하는 협력업체 같은 형태였다. 본사는 여러 빌딩을 나눠 쓰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가장 많은 층을 쓰는 건물로 갔다. 본사가 7개 층을 쓰는 건물이었고, 우리는 그 바로 아래층 공유오피스에 자리를 잡았다. 그마저도 여유 공간이 없어, 다닥다닥 붙은 작은 사무실 세 개를 나눠 썼다.
그래도 본사의 무료 간식은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은 점점 늦어졌다.
본사 서비스로 통합하면서 기존 코드를 다 갈아엎어야 했다. 처음엔 이 프로젝트를 위해 꾸려진 본사 TF팀이 뼈대가 되는 코드를 묶어 내려줬다. 버전이 바뀔 때마다 새 파일이 날아왔고, 우린 그때마다 거기에 맞춰 코드를 고쳤다. 하지만 프론트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쪽은 계속 달리는데, 우린 이제 걸음마를 배우는 것 같았다.
빠른 소통을 위해 본사 안의 커다란 회의실로 또 이사를 했다. 세 번째 사무실이었다. 사무실이 아닌 ㄷ자 형태의 회의실이라 상당히 어색했다.
어느새 주객이 전도되었다.
본사가 흐름을 잡았고, 우린 서포트를 했다. 출시 일정에 맞추려면 그들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서비스를 출시했다.
몸도 마음도 바싹 타들어 가는 나와 달리, 반응은 불타올랐다. 출시 직후부터 매출이 급상승했다. 본사 TF팀과 우리 임원들은 매일 매출을 확인하며 기뻐했지만, 나와 사수는 매출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미 이 서비스에 대한 애정이 사라진 뒤였다. 본사가 흐름을 쥐는 동안, 프론트 파트도, 사수와 나의 자리도 점점 무색해졌다.
이제 회의실을 탈출할 차례였다. 본사 직원 몇 명이 파견 형태로 우리 회사 소속이 되었다. 네 번째 사무실은 전에 쓰던 작은 사무실과 같은 층이었지만, 훨씬 넓었고 커다란 유리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대표는 강남대로 한복판에 이렇게 큰 사무실을 내는 게 꿈이었다고 했다.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수와 다른 초기 멤버 한 명은 회사를 떠났다.
승승장구하는 매출에 회사의 모든 관심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본사는 여전히 우리를 외부인 취급했지만, 결국 우리는 계열사가 되었다.
눈 떠보니, 나는 유니콘의 개발자가 되어 있었다.
계열사가 된 뒤로는 본사의 모든 층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미용실, 카페, 샤워실, 편의점만 한 간식 코너, 응급의약품까지 전부 공짜였다. 개인 법인카드도 받았다. 임금체불에 도시락을 싸 다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회사에 있는 동안엔 밥도, 커피도, 간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조금은 들떴다.
하지만 떠난 사수가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