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by간서치

2026년 8월 2일 일요일 · 트롤스티겐에서 게이랑에르를 거쳐 리드 캠핑장까지, Fv63과 Rv60 170km에 피오르드 크루즈 1시간 10분


게이랑에르로 가는 길


트롤스티겐을 내려와 게이랑에르 쪽으로 향했다. 70킬로미터, 페리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치면 1시간 40분쯤 걸린다.


우리가 이날 달린 길은 노르웨이 시닉루트(Scenic Routes) 가운데 하나다. 시닉루트는 정부가 가장 아름다운 도로 18곳을 엄선해 조성한 국가 지정 관광 드라이브 코스다. 표지판을 세우는 데 그치지 않고 건축가와 예술가에게 맡겨 쉼터와 전망대까지 따로 짓게 했다.


이름은 양 끝의 지명을 따 '게이랑에르-트롤스티겐'이라고 부른다. 전체 길이가 104킬로미터, 해발 0미터에서 1,000미터까지 오르내린다. 아침의 트롤스티겐도 지금 내려가는 이 길도 같은 한 줄기다. 트롤스티겐 하나만 보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길을 하루 종일 달린 것이었다.


노르웨이의 도로는 바다에서 한 번씩 끊기고, 끊긴 자리를 잇는 것이 페리다. 마주 보는 기슭이 가까워서 처음에는 다리를 놓으면 될 텐데 싶었다. 그런데 수심이 수백 미터씩 되는 곳이 흔하니 다리를 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 페리는 다리를 대신하는 것이었다.


표를 사려고 물었더니 렌터카는 후불이라고 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한참 지나서야 AVIS에서 청구서가 왔는데, 고속도로 통행료며 이것저것이 한 줄로 묶여 있어 이 페리에 얼마를 냈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차에서 내리지 못한 전망대


게이랑에르로 내려가는 마지막 구간은 독수리굽이, 외르네스빙엔이라고 부른다. 여기도 열한 굽이다. 아침에 열한 굽이를 올라왔는데 오후에 열한 굽이를 내려가게 된 셈이었다.


그런데 아침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길이도 짧고 굽이도 그렇게 급하지 않았다. 손바닥에 땀이 차지도 않았다. 이미 트롤스티겐을 겪고 온 뒤라 더 그랬을 것이다.


내려가는 길 중간에 전망대가 있었다. 피오르드를 가장 잘 내려다볼 수 있다는 자리다. 그런데 주차할 곳이 없었다. 관광버스며 캠핑카며 승용차가 갓길까지 들어차 있었고, 우산을 쓴 사람들이 그 사이를 건너다녔다. 뒤차에 밀려 그대로 지나쳤다. 되돌아가려면 굽이길을 거꾸로 올라야 했다.


조수석 창을 내리고 셔터를 한 번 눌렀을 뿐이다. 골짜기 끝에 마을이 보이고 커다란 크루즈선 한 척이 선착장에 붙어 있었다. 차 안에서 찍은 것이라 전봇대와 전선이 화면을 가로질렀다. 내려서 제대로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게이랑에르 마을


아침에 빵과 커피로 때운 뒤로 아무것도 입에 대지 못했다. 굽이길을 오르내리느라 오전 내내 운전대를 잡았고, 비를 맞았고, 손등이 시릴 만큼 추웠다. 오후 3시 30분까지 페리 부두에 닿아야 해서 식사는 게이랑에르에 가서 해결하기로 미뤄 둔 참이었다. 그렇게 오후 2시 30분이 되어서야 겨우 늦은 점심을 먹었다.


게이랑에르는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식사비가 놀랄 만큼 비쌌다. 조카와 딸이 한참을 검색하더니 값도 괜찮고 맛도 좋다는 가게를 찾아냈다. 피스케카카(Fiskekaka)라는 곳인데, 노르웨이어로 생선완자, 그러니까 어묵이라는 뜻이다. 보행자 거리 안쪽의 작은 부스여서 앉을 자리가 없었다.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서서 먹었다.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빵에 갓 튀긴 어묵을 넣고 절인 붉은 양파와 상추를 올린 다음 초록빛 소스를 뿌린 것을 먹었다. 이름을 몰라 우리끼리는 그냥 어묵 샌드위치라고 불렀다.


먹고 나서 주차장 옆 마트에 들렀다. 저녁에 구울 고기와 소시지를 사고 술도 담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맥주 냉장고는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에 팻말이 걸려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9시부터 20시까지, 토요일은 9시부터 18시까지, 일요일은 판매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다. 노르웨이 법이 그렇게 정해 두었다는 설명도 덧붙어 있었다. 하필 오늘이 일요일이었다.


어제는 와인을 사려고 토요일 오후에 주류 판매점까지 뛰어다녔고, 오늘은 요일에 막혔다. 동네 편의점에서 24시간 술을 살 수 있는 우리나라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오후 3시 30분에 페리 부두에 닿았다. 배를 기다리며 나는 운전석에 앉은 채로 깜빡 잠이 들었다. 10분인지 20분인지 모를 시간이었다. 딸과 조카는 오는 내내 뒷좌석에서 곯아떨어져 있었다.

한국 시각으로는 밤 10시 30분이었다. 집에 있었다면 잠자리에 들 시간이고, 시차 적응이 다 되지 않아 하루 중 가장 피곤한 무렵이었다.


여행은 비우러 오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하나라도 더 보려고 일정을 빡빡하게 세웠다. 다시 노르웨이에 올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비우자고 떠나와서 피곤만 채우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힘을 내 보기로 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게이랑에르 피오르드가 이제 시작된다.



게이랑에르 피오르드


여행을 준비하면서 노르웨이 3대 피오르드라는 말을 자주 보았다. 송네와 하르당에르와 게이랑에르를 묶어서 그렇게 부른다.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은 게이랑에르다.


찾아보다가 알게 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게이랑에르는 오월 중순이 지나야 열리고 구월 초면 닫힌다. 도로 사정이나 날씨가 나쁘면 여기 유람선이 송네 피오르드 쪽으로 대체되기도 한다. 가기로 정해 놓아도 못 갈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침에 오른 트롤스티겐이 낙석 때문에 한 해 내내 닫혀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다.


배는 게이랑에르에서 헬레쉴트까지 1시간 10분을 간다. 양쪽 벽은 1,000미터를 훌쩍 넘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는데도 절벽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 같았다. 맞은편에서 건너오는 배를 보고서야 크기가 가늠되었다. 우리가 탄 것과 같은 큰 배인데도 두 벽 사이에서는 흰 점 하나였다.



일곱 자매 폭포와 절벽 위의 집


배가 절반쯤 나아갔을 때 오른편 절벽에서 흰 줄기 여럿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일곱 자매 폭포다. 이름 그대로 일곱 가닥이 나란히 떨어진다. 여름이 깊어지면 가늘어진다는데 며칠째 비가 온 뒤라 물이 제법 많았다. 비 덕분에 얻은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이었다.


맞은편 절벽에는 굵은 물줄기 하나가 혼자 떨어진다. 구혼자 폭포다. 건너편에 살던 총각이 일곱 자매에게 차례로 청혼했다가 모두 거절당하고, 상사병으로 앓다가 그 자리에서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죽어서도 잊지 못해 지금까지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폭포보다 오래 눈이 머문 것은 절벽 위에 간신히 보이는 집들이었다. 어떻게 저기에 사람이 살았을까 하며 감탄하면서 봤는데, 찍은 사진 중에도 한 장에서 겨우 그 형태가 보인다. 좀 더 당겨서 찍어 둘걸 아쉽다.


궁금해서 한국에 돌아와 찾아보았다. 스카게플로와 크니브슬로라는 농장이다. 걸어 올라갈 만한 길이 없어 배를 대고 바위를 붙잡고 오르거나 밧줄사다리를 걸고 오르내렸다고 한다. 그 좁은 비탈에서 소를 기르고 염소를 쳤다. 한창때는 소가 열여덟 마리, 염소가 백 마리였다니 그 짐승들을 어떻게 저기까지 올렸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농장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차례로 비었다. 위쪽 바위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고 판단한 지방의회가 그곳에 사는 것을 더는 허락하지 않았다. 그 전에도 절벽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은 사람이 여럿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역 안에 들어 보존되고 있다.



피오르드의 감회


비는 배가 떠날 때부터 내렸다. 골짜기를 지나는 내내 그치지 않았다. 갑판에 서 있던 사람들은 진작 선실로 들어갔다. 유리창 안쪽은 자리가 넉넉하고 따뜻했다. 추위를 녹이려고 우리도 처음에는 거기 앉아 코코아를 시켰다.


그러다 나 혼자 밖으로 나왔다.


비를 피하려면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 한 겹이 생긴다. 그 한 겹이 생기는 순간 이 골짜기는 화면이 된다.


어깨가 젖고 소매가 젖고 나중에는 등까지 젖었다. 휴대폰 화면에 물이 맺혀 옷깃으로 닦았다. 닦고 나면 또 맺혔다. 그러면서도 계속 사진을 찍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잘 설명하지 못하겠다. 좋은 사진을 얻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비 오는 갑판에서 좋은 사진이 나올 리 없다는 것쯤은 나도 알았다. 간절히 보고 싶었던 피오르드를 유리 너머로 보고 온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헬레쉴트에 거의 다 왔을 즈음이었다. 노르웨이 국기 옆으로 물거품이 길게 여운처럼 남아 있었다. 딸도 밖으로 나와 난간 앞에서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피오르드야, 잘 있어라!"



헬레쉴트에서 리드 캠핑장까지


헬레쉴트에 내리니 마을 한복판의 폭포가 보였다. 집들 사이를 가르며 쏟아지는데, 조금 전까지 배 위에서 아득히 올려다보던 폭포들과 달리 이것은 코앞이었다. 물이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가까이서 보니 아름답다기보다 무서웠다.


배에서 내린 시간은 오후 5시 10분이었다. 여기서 하룻밤 자도 되는데 굳이 100킬로미터를 더 가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내일은 베르겐까지 가야 한다. 리드 캠핑장에서 출발하면 240킬로미터, 3시간 50분이다. 헬레쉴트에서 출발하면 5시간 20분이 걸린다. 오늘 1시간 30분을 더 달려 두면 내일 그만큼이 줄어든다.


젖은 옷을 입은 채로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찍고 이동하고 또 찍고 이동하는 일정이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힘을 내 본다.



리드 캠핑장


리드 캠핑장에 도착하니 풍경이 그림 같았다. 짐을 옮기기 전에 산바카라부터 했다.


물 건너편에 흰 교회가 서 있었다. 그 뒤로 초록 비탈과 집 몇 채가 이어졌다. 비에 젖어 색이 더 진했다.


물가에는 바이킹이라고 새겨진 나무 정자가 있었다. 딸과 조카가 마주 앉아 비를 피했다. 정자 뒤로는 빨간 캐빈이 줄지어 있고 잔디밭에 텐트가 하나 쳐져 있었다. 배 한 척이 물에 매여 있었는데, 안이 분홍색으로 칠해져 푸른 잔디밭 옆에서 유난히 도드라졌다.


캐빈 문을 열자마자 화장실과 샤워실이 보였다. 천국이었다. 전날 공용 샤워장을 쓴 뒤라 더 그랬다. 젖은 채로 하루를 보내고 나니, 문을 열고 들어가 곧장 더운물을 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젖은 옷을 히터 앞에 늘어놓으니 좁은 캐빈이 금세 빨래방이 되었다. 딸과 조카가 번갈아 씻는 동안 나는 저녁을 준비했다.


낮에 마트에서 맥주를 사지 못해 고기와 함께 먹을 술이 없었다. 아깝지만 한국에서 들고 온 소주를 꺼냈다. 몇 병 되지 않아 여행 마지막 밤쯤에 열려고 아껴 둔 것인데, 일요일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 계획이 무너졌다.


소주로 추위를 녹이고 하루의 피로를 풀며 셋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아침에 오른 트롤스티겐과 오후에 지나온 피오르드가 남긴 경외감, 그리고 다시 오기 쉽지 않은 곳이라는 아쉬움을 오래도록 주고받았다.


내일은 베르겐이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이자 옛 한자동맹의 도시, 그리고 일 년에 이백 일 넘게 비가 온다는 비의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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