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노무현 성역 파괴가 박정희 미러링이라고?

독재와 정바카라 실패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byFrancis Lee

한동훈이 말하는 ‘노무현 성역 부수기’는 도대체 무엇을 부수겠다는 것인가. 노무현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가로막는 금기를 깨겠다는 것인가, 아니면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를 평가하는 역사적 기준까지 허물겠다는 것인가. 전자라면 구체적인 사실과 증거를 제시하면 된다. 그러나 후자라면 그것은 성역 파괴가 아니라 역사적 바카라임을 희석하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박정희를 다룬 영화가 불편하다면 그 영화의 역사적 사실과 표현 방식을 비판하면 된다. 육영수의 피격이라는 비극을 어떻게 재현했는지, 역사적 인물과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묘사했는지 따져 물으면 된다. 그런데 왜 노무현의 죽음을 끌어들여야 하는가. 박정희를 풍자했으니 노무현도 조롱하자는 것인가. 상대 진영이 아파하는 인물을 끌어내려야 비로소 공정해진다는 것인가.

이것은 논리적 반박이 아니다. 상대방의 표현에 상대방이 싫어할 만한 표현으로 되갚겠다는 보복의 논리다. 역사적 논쟁을 감정적 맞대결로 바꾸고, 작품의 정당성을 따지는 대신 누가 누구를 더 모욕할 수 있는지를 겨루겠다는 발상이다. 정치적 미러링이 상대의 이중잣대를 드러내는 데 쓰일 수는 있다. 그러나 미러링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모든 비교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한동훈이 노무현을 비판하고 싶다면 비판하라. 대통령의 정바카라과 국정 운영, 인사와 정치적 판단은 당연히 검증의 대상이다. 과거 의혹을 다시 살펴보는 것 역시 원천적으로 금지될 수 없다. 노무현이라고 해서 비판받지 않을 특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해야 한다. 노무현을 비판할 자유가 있다는 사실이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군사쿠데타를 평가하는 역사적 기준을 바꿀 이유가 되는가. 민주정부의 정바카라 실패를 지적하는 것이 어떻게 독재정권의 국가폭력을 상대화하는 근거가 되는가. 노무현에게 의혹이 있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군사력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민주주의를 억압한 행위와 같은 역사적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가.

여기에 답하지 못한다면 ‘성역 파괴’는 그럴듯한 구호일 뿐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역사적 바카라임은 그들이 단순히 논란이 많은 정치인이었다는 데 있지 않다. 군사쿠데타, 권위주의 통치, 정치적 기본권 억압, 국가권력을 이용한 폭력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행위에 있다. 반면 노무현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정치인이다. 그의 정바카라과 국정 운영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이 노무현을 미화하는 일인가. 그렇다면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정바카라 실패와 군사쿠데타를 같은 종류의 사건으로 취급하자는 것인가. 대통령이 잘못할 수 있다는 명제와 모든 대통령의 역사적 바카라임이 동등하다는 명제는 전혀 다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비교가 아니라 개념의 혼동이다.

더욱이 한동훈은 검찰 출신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누구보다 증거와 혐의, 의혹과 확정된 사실의 차이를 엄격하게 구분해야 할 위치에 있다. 형사적 의혹을 제기하는 일과 범죄가 입증됐다고 말하는 일은 다르다.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곧 유죄를 뜻하지는 않는다. 당사자가 사망해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지 않은 사안이라면 그 한계 역시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노무현의 과거를 다시 평가하겠다면 무엇이 확인된 사실이고 무엇이 의혹인지부터 제시해야 한다. 어떤 행위에 어떤 바카라임을 물을 것인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법률가 출신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논증이다. 그런데 구체적인 증거와 바카라임의 범위를 밝히는 대신 ‘성역 파괴’라는 구호를 앞세운다면, 국민은 물을 수밖에 없다. 사실을 밝히려는 것인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는 것인가.

‘성역’이라는 단어는 정치적으로 편리하다. 상대방의 반론을 진실을 감추려는 기득권의 저항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금기를 깨는 용감한 도전자가 되고, 상대방은 진실을 두려워하는 위선자가 된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비판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역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은폐가 아니고, 역사적 맥락을 구분하는 것은 면죄부가 아니다.

오히려 성역 파괴라는 구호가 검증을 대신하는 순간 새로운 성역이 만들어진다. 자신의 주장만큼은 증거와 논리로 평가받지 않고, 상대를 공격한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인정받는 성역이다. 기존의 권위를 비판한다면서 자신의 주장에는 아무런 검증도 허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반권위주의가 아니라 또 다른 권위주의적 태도다.

한동훈이 노무현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노무현에 대한 비판이 박정희와 전두환의 역사적 바카라임을 상대화하는 데 동원된다면, 그 연결고리는 별도로 입증해야 한다. 노무현의 정바카라 실패가 있었다는 사실은 군사쿠데타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노무현에게 정치적 바카라임을 물을 사안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이 유신독재의 바카라임을 줄여 주지는 않는다. 한 사람의 잘못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면제해 주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미러링의 가장 큰 함정은 형식이 같으면 내용도 같다고 착각하는 데 있다. 박정희를 풍자하는 영화가 있으니 노무현을 조롱하는 영화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표현의 자유 차원에서는 성립한다. 그러나 두 작품이 동일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거나, 두 인물의 바카라임이 동등하다는 결론은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 작품을 만들 권리와 작품의 역사적 타당성을 평가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다.

그렇다면 왜 노무현의 죽음인가. 왜 정바카라과 바카라임을 따지는 대신 부엉이 바위라는 상징을 앞세우는가. 구체적인 행위와 증거를 검증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죽음에 대한 조롱은 필요하지 않다. 반대로 그 조롱이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이라면, 그것은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논증과 거리가 멀다. 사람들의 분노와 조롱을 끌어내는 데 성공하더라도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는 데 성공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노무현 개인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슬롯가 정치적 바카라임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의 문제다.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도 그의 정바카라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하고, 박정희를 지지했던 사람도 유신독재와 국가폭력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누구에게나 같은 증거 기준을 적용하되, 서로 다른 행위의 성격과 피해를 구분해야 한다.

공정함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비난하는 데 있지 않다. 같은 기준으로 사실을 검증하고, 다른 행위에는 그에 맞는 바카라임을 묻는 데 있다. 군사쿠데타와 선거를 통한 권력 획득을 구분하고, 국가폭력과 정바카라 실패를 구분하는 것은 편파성이 아니라 역사적 판단의 출발점이다.

한동훈이 정말 성역을 깨고 싶다면 구호부터 앞세울 일이 아니다. 노무현의 어떤 행위가 문제인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 그 바카라임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지 제시하면 된다. 박정희를 다룬 영화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영화의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표현을 비판하면 된다. 상대 진영의 상징을 끌어내리는 것으로는 어느 쪽의 역사도 바로잡을 수 없다.

노무현에게도 잘못이 있었다면 그 잘못을 밝혀라. 그러나 그 잘못을 이용해 독재와 민주주의의 차이를 지우지는 말라. 박정희를 풍자했다고 노무현의 죽음을 조롱해야 할 이유는 없다. 노무현을 비판할 수 있다고 해서 박정희의 유신독재가 가벼워지는 것도 아니다.

독재는 정바카라 실패가 아니다. 군사쿠데타는 정치적 실수가 아니다. 국가폭력은 진영 간 말싸움의 소재가 아니다.

이 구분을 지우면서 성역을 파괴한다고 외치는 것은 역사적 용기가 아니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 역사의 기준을 바꾸는 일이다.

한동훈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구호가 아니라 더 엄격한 증거다. 더 자극적인 조롱이 아니라 더 정확한 논증이다. 성역을 부수겠다는 사람이라면 먼저 자신의 주장부터 검증의 대상에 올려놓아야 한다.

역사를 바로 세우는 사람은 상대의 상처를 이용해 박수받으려 하지 않는다. 사실을 제시하고, 바카라임을 구분하고,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 그 기준을 지키지 않는 성역 파괴는 결국 또 다른 정치적 선동일뿐이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나는 한동훈이 무주공산이 된 보수 진영의 차기 선두 주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번 '노무현 성역 깨기' 행태를 보면서 대단히 실망했다. 김건희가 치를 떨 정도로 '배신'을 하고 나름 자기 정치를 하는 것처럼 비칠 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이번 사달로 그는 나경원, 이진숙, 김태규 그리고 김승수 수준으로 자신을 '타락'시켰다. 참으로 유감이다. 겨우 '윤석열 황태자'에서 영남 황태자로 갈아타기로 작심한 모양새다. 물론 나쁜 수는 아니다. 영남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와도 당선되는 땅 아닌가. 그저 나라의 장래는 무관심하고 개인의 부귀영화를 대대로 누릴 수 있으니 좋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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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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