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이 국익을 넘어설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에도 금도가 있다. 아무리 정쟁이 치열하고 상대 정당을 공격하는 것이 정치의 일상이라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바로 국익이다. 정부의 정바카라을 비판하고 외교적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야당의 권리다. 그러나 국가가 외교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항의하는 순간, 상대국 정상에게 감사 서한을 보내며 자국 정부의 대응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 심각한 정치적 바카라임의 문제를 제기한다.
나경원이 젤렌스키에게 감사 서한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북한군 포로의 송환 문제를 둘러싸고 우크라이나 측에 사과를 요구하며 외교적 항의에 나선 바로 그 시점이다. 나 의원은 정부의 대응을 ‘지나친 우크라이나 홀대’라고 규정했다. 과연 이것이 국익을 위한 정치인가. 아니면 정부를 공격하는 일이라면 외교적 사안까지 정쟁의 도구로 삼겠다는 것인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한국 정부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면, 그 합의가 어떤 내용이었으며 왜 공개되었는지 확인하고 바카라임을 따지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비공개 합의의 위반 여부를 검증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외교적 항의를 하는 동안 야당 의원이 상대국 정상에게 감사 서한을 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물론 북한군 포로 두 명이 자유의사에 따라 한국행을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결정에 감사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양국의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 정부의 항의를 비난해야 할 이유가 되는가. 포로의 한국행을 허용한 결정에 감사를 표하는 것과 비공개 합의 위반 의혹에 대한 한국의 문제 제기를 평가하는 것은 별개의 사안이다. 하나에 감사한다고 해서 다른 하나에 대한 바카라임 추궁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외교는 말의 내용만큼이나 시점과 방식이 중요하다. 정부가 공식적인 항의에 나선 상황에서 야당의 유력 정치인이 상대국 정상에게 별도의 서한을 보내 자국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면, 상대국에는 한국 내부의 이견을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할 여지를 줄 수 있다. 그것이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태도를 바꾸거나 한국의 협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가. 나 의원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부의 외교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어떤 대안이 더 효과적인지, 그 대안이 한국의 안보와 국익에 어떤 이익을 가져오는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나경원의 이번 행보가 더욱 논란이 되는 이유는 과거의 외교적 논란 때문이다. 그는 2004년 일본 자위대 창설 5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논란을 일으켰다. 2011년 이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그는 행사 내용을 모른 채 참석했다가 현장에서 뒤늦게 알고 돌아왔다고 해명했다. 이 일은 당시에도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을 불러왔다. 이후에도 그의 대일 외교 관련 입장과 행보는 여러 차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그를 둘러싼 ‘나베’라는 조롱성 별명 역시 이러한 정치적 논란 속에서 등장했다.
물론 과거의 논란만으로 오늘의 행동을 단정할 수는 없다. 정치인의 행위는 각각의 사실관계와 맥락에 따라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 외교적 처신을 둘러싼 비판을 받았던 정치인이라면, 오늘의 행동이 국가의 이익과 외교적 신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더욱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과거의 논란을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로 해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바카라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국민의힘은 최근 여러 현안을 둘러싸고 정부와 격렬하게 대립해 왔다. 야당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반복되고, 정부의 외교적 대응마저 국내 정치의 승패를 가르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정치는 국민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잘못하면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외교적 갈등에 대응하는 상황이라면 그 대응의 타당성을 따져야지, 상대국에 대한 감사와 자국 정부에 대한 비난을 결합하는 것만으로 국익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국익은 어느 정당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부가 국익을 독점할 수도 없고, 야당이 국익을 독점할 수도 없다. 그래서 더욱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 상대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면 그 협력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 설명해야 한다. 정부의 항의가 과도하다면 어떤 외교적 대안이 더 나은지 입증해야 한다. 국익을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행동이 한국의 협상력과 외교적 신뢰에 미칠 영향은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익을 앞세운 정치적 수사에 그칠 위험이 있다.
정치는 정권을 얻기 위한 경쟁이지만, 국가는 정권보다 오래간다. 정부는 바뀔 수 있고 정당은 선거에서 패배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외교적 신뢰와 국민의 안전은 정쟁의 소모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야당의 역할은 정부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상대국에 잘 보이는 것이 곧 국익도 아니고, 정부를 공격하는 것이 곧 애국도 아니다.
나경원은 감사 서한을 보낼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행위가 과연 한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국민이 따져 물을 권리가 있다. 정부의 외교를 비판하려면 더 나은 외교를 보여주어야 한다. 국익을 주장하려면 그 국익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것이 공인의 바카라임이다.
정쟁에도 금도가 있다. 외교에도 원칙이 있다. 국익은 정당의 유불리보다 앞서야 한다. 정부를 무너뜨리려는 정치적 계산이 국가의 외교적 신뢰를 흔드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 바카라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익을 말하려거든 먼저 자신의 행동이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증명하라. 정쟁이 국익을 넘어서는 순간,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국가의 신뢰를 소모하는 싸움으로 전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