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진우, 보지도 않은 영화의 의도를 통찰한 궁예인가?

정치의 금도를 넘어선 자들에게는 심판이 내린다

byFrancis Lee

영화를 보지 않았단다.

그런데 영화의 내용을 안다고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규정하고,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하고, 심지어 출연 배우까지 정치적 언어로 공격했다.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주진우의 최근 발언을 보면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삼국시대의 궁예다.

궁예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며 관심법을 내세웠다.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증거도 필요 없었다. 자신이 안다고 선언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후삼국 시대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서 그런 모습이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의 의도를 꿰뚫어 보는 정치인이라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비평인가.

아니면 관심법인가.

주진우는 영화에 대해 강한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정작 영화 자체를 보았느냐는 질문에는 보지 않았다는 취지로 답했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국회의원이 국민 앞에서 특정 작품을 역사 왜곡이라고 규정하려면 적어도 그 작품을 직접 확인하는 것이 상식이다. 영화가 어떤 장면을 담았는지, 어떤 인물이 등장하는지, 무엇을 사실로 제시하고 무엇을 허구로 구성했는지 살펴본 뒤 비판해야 한다.

그것이 최소한의 절차다.

그런데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를 비판한다.

작품을 확인하지 않고 작품의 의도를 단정한다.

그리고 그 작품에 출연한 배우에게까지 정치적 낙인을 찍는다.

이쯤 되면 국민이 질문해야 한다.

도대체 무엇을 보고 판단한 것인가.

정말 영화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들어준 정치적 프레임인가.

역사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1974년 육영수 피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실제 사건이다. 따라서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충분히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영화가 제기한 의문을 비판하려면 영화가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영화를 보지도 않고 ‘역사를 뒤집는다’고 규정한다면 역사에 대한 태도부터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역사를 지키겠다는 사람이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는 기본 절차를 생략해서야 되겠는가.

더 심각한 것은 정치적 낙인이다.

자신과 다른 역사 해석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친북으로 몰아붙이고, 배우의 외모까지 정치적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문화와 정치의 경계는 어디까지 무너져야 하는가.

정치인은 모든 영화를 좋아할 필요가 없다.

특정 영화가 불쾌할 수도 있다.

박정희에 대한 영화적 해석에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대하려면 보고 반대해야 한다.

읽고 반대해야 한다.

확인하고 반대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지 않은 것까지 보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태도가 아니다.

특히 국회의원은 일반 시민과 다르다.

국회의원의 말에는 공적 권위가 따라붙는다. 국회에서 나온 한마디는 언론을 타고 국민에게 전달되고, 지지자들의 인식을 만들며, 때로는 한 사람이나 한 작품에 대한 슬롯적 평가까지 좌우한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말에는 바카라임이 따라야 한다.

말할 자유가 있다면 확인할 의무도 있다.

비판할 권리가 있다면 근거를 제시할 바카라임도 있다.

역사를 말할 권리가 있다면 역사 앞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정치인이 국민에게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명령하는 나라가 아니다.

영화를 보지 않고도 영화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을 국민이 믿어야 할 이유도 없다.

궁예의 관심법은 천 년 전에 끝났다.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마음대로 읽을 수 없다.

영화의 의도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보지 않고 작품의 의도를 단정할 수 없다.

증거 없이 역사를 규정할 수도 없다.

그리고 정치적 프레임만으로 국민의 판단을 대신할 수도 없다.

정치의 금도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사실을 확인하는 것.

상대의 말을 왜곡하지 않는 것.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대는 것.

그리고 틀렸다면 인정하는 것.

그것이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금도다.

그 선을 넘는 순간 정치인은 국민 위에 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민의 검증대 위에 올라선다.

민주주의에서 최종적인 판단은 정치인의 몫이 아니다.

국민의 몫이다.

국민은 정치인의 말보다 그 말의 근거를 보아야 한다.

분노보다 사실을 보아야 한다.

진영보다 기록을 보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인이 국민을 대신해 판단하려 할 때 더욱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당신은 그것을 정말 확인했는가.

정말 읽었는가.

정말 보았는가.

아니면 보지도 않은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가.

궁예의 관심법이 다시 필요한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국민의 검증이다.

정치인이 역사를 말한다면 기록으로 답하게 하라.

정치인이 영화를 비판한다면 작품으로 답하게 하라.

정치인이 국민의 판단을 대신하려 한다면 국민은 더 꼼꼼하게 그 정치인의 말을 검증해야 한다.

정치의 금도를 넘어서는 순간 심판의 권한은 정치인에게 있지 않다.

민주주의의 심판은 국민의 판단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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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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