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국가주의가 말살한 인간 존엄의 회복 선언은 결국 예수를 지향한다
독일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독일 기본법, 곧 독일 헌법의 첫 문장을 보고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인간의 존엄은 침해할 수 없다.”
독일 기본법 제1조 제1항이다.
그다음 문장은 더욱 중요하다.
“Sie zu achten und zu schützen ist Verpflichtung aller staatlichen Gewalt.”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라는 뜻이다.
그리고 제1조 제2항은 인간의 존엄으로부터 인권을 연결한다. 독일 국민은 “침해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모든 인간 공동체의 기초로” 인정한다고 선언한다. 제1조 제3항에서는 이 기본권이 입법·행정·사법을 구속한다고 못 박는다. 독일 연방의회도 기본법의 기본권이 첫머리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며, 그 배경에는 나치의 지도자 이념과 전체주의적 권력, 대규모의 비인간성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왜 하필 헌법의 첫 문장이 인간 존엄이어야 했을까?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1949년의 독일을 1933년 이후의 독일과 겹쳐 보아야 한다.
나치즘이 저지른 가장 근본적인 범죄는 단순히 전쟁을 일으켰다는 데 있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가 인간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다고 믿었다는 데 있었다.
누가 독일인인가.
누가 아리아인인가.
누가 유대인인가.
누가 건강한 인간이고 누가 ‘열등한’ 인간인가.
누가 국가에 유용한가.
누가 국가에 불필요한가.
그리고 누가 살아 있을 가치가 있고 누가 죽어도 되는가.
나치 국가는 인간을 먼저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국가가 정한 인종적·생물학적·정치적 기준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분류했다.
그 결과 인간은 존엄한 존재가 아니라 국가가 평가하고 관리하는 객체가 되었다.
장애인은 ‘생존할 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분류되었고, 유대인과 우리가 집시족이라고 부르는 로마인 등은 인종적 범주에 따라 박해와 절멸의 대상으로 규정되었다. 국가가 인간의 생명에 등급을 매기기 시작하자, 인간을 죽이는 일조차 국가의 행위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될 수 있었다.
바로 이 역사적 경험에 대한 반작용으로 전후 독일 헌법은 국가보다 인간을 먼저 놓았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할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인권 선언이 아니다.
나는 이것을 나치의 국가주의에 대한 독일의 가장 짧고 강력한 반론이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인간의 존엄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도 아니다.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인간의 존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독일 기본법은 “국가가 인간에게 존엄을 부여한다”라고 쓰지 않았다.
“Die Würde des Menschen ist unantastbar.”
인간의 존엄은 침해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여기에는 엄청난 역사적 전환이 들어 있다.
과거에는 국가가 인간보다 위에 있었다.
이제는 국가가 인간의 존엄 아래에 놓인다.
국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헌법도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독일 연방의회가 기본권을 기본법의 “처음”에 배치한 이유를 설명하면서 “Vor dem Staat soll der Mensch kommen”, 즉 “국가보다 인간이 먼저 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도대체 인간에게 왜 그런 존엄이 있는가?
국가가 부여하지 않았다면 누가 부여했는가?
헌법은 인간의 존엄을 선언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이 선언한다고 해서 인간에게 갑자기 존엄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간 존엄의 궁극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 현대의 세속적 헌법은 반드시 하나의 신학적 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의 이성, 자유, 자율성, 보편적 인권 등의 개념으로도 인간 존엄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서양 문명의 역사 속에서 인간이 왜 본질적으로 존엄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강력하고 일관된 답을 제공한 전통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 정점이 예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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