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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개인이 아프면 가톨릭 조직이 흔들리는 이유는?

교황 수위권이 결국 양날의 칼이 되고 있다.

byFrancis Lee

레오 14세 교황이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교황청 발표와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교황은 10월 13일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오른쪽 폐 하엽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은 약 90분 동안 진행됐고 합병증 없이 끝났다. 수술 중 폐선암이 확인됐으며, 암의 정확한 병기와 림프절 전이 여부, 추가 치료의 필요성은 후속 검사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공개 일정도 10월 20일까지 취소됐다.

교황이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라는 사실만으로 가톨릭교회에 권력 공백이 발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안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교황은 세계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다. 교회의 중요한 인사와 정바카라, 교황청의 행정과 재정에 관한 최종 권한이 교황직에 집중되어 있다. 그런데 그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이 질병으로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교황이 회복할 때까지 교회는 누가 통치하며, 중요한 결정은 누가 내릴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행정상의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일치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교회의 생존과 쇄신을 위협할 수 있다는 역설에 관한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문제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중세 교회는 교황권을 둘러싼 정치적 암투와 분열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14세기에는 교황들이 로마를 떠나 아비뇽에 머물렀고, 1378년부터 1417년까지 이어진 서방 교회 대분열 때는 로마와 아비뇽에서 서로 정통 교황이라고 주장하는 인물들이 대립했다. 1409년 피사 공의회에서 새 교황을 선출했지만 기존 교황들이 물러나지 않아 한때 세 명이 교황을 자처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교회의 최고 권위를 한 사람에게 집중시켰다고 해서 교회가 언제나 안정적으로 통치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권위를 누가 차지하느냐를 둘러싼 경쟁이 교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다.


현대에도 이 문제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2013년 베네딕토 16세는 고령과 기력 저하를 이유로 교황직에서 사임했다. 그가 스스로 물러났기 때문에 교황좌 공석이 발생했고, 추기경단은 새 교황을 선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교황이 살아 있으면서 직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경우와는 다르다. 사임은 교황직을 비우는 명확한 법적 행위지만, 질병으로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에는 이에 상응하는 보편 교회의 통치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AP통신은 이번 레오 14세의 수술을 계기로 바로 이 문제를 지적했다. 교황이 의식을 잃거나 장기간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더라도 권한이 자동으로 다른 추기경에게 넘어가지는 않는다. 국무원장 등 교황청 관리들은 이미 위임받은 권한의 범위에서 일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만, 교황의 고유 권한을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공식적인 권한대행 제도는 없다.


교황이 사망하거나 사임하면 후임자를 선출하는 절차가 작동한다. 하지만 교황이 살아 있으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권력의 공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하다. 교황 한 사람에게 최고 권한을 집중시킨 체제가 정작 그 사람이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톨릭교회의 첫 번째 구조적 모순이다.


교황 수위권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가톨릭교회에서 교황 수위권은 단순히 로마 주교가 다른 주교보다 높은 명예를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교황이 보편 교회의 최고 통치권을 가진다는 의미다. 이 권한은 오랜 역사적·신학적 논쟁을 거치면서 제도화됐다.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에 관한 교리를 정식화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주교들의 공동 바카라임이라는 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주교단의 공동 바카라임을 다시 강조했다. 그러나 주교단의 권한은 교황과 분리되어 행사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교회 헌장」 22항은 주교단이 그 수장인 교황과 함께할 때 보편 교회에 대한 최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교황 수위권과 주교단성의 오랜 긴장이 드러난다. 주교들은 각 지역 교회를 바카라임질 뿐 아니라 보편 교회 전체에 대해서도 공동 바카라임을 진다. 그러나 그 공동 바카라임이 실질적인 통치 권한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교황의 권한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교황 중심의 통치 구조는 분명한 장점이 있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교회가 공통된 교리와 규율을 유지하고, 지역 교회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며, 전 세계를 향해 일관된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다. 교황 한 사람의 결단으로 신속하게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장점은 그대로 약점이 된다. 교황이 개혁을 추진하면 세계 교회가 변화할 수 있지만, 교황이 변화를 원하지 않거나 결정을 미루면 그 변화는 지연된다. 개혁의 방향과 속도가 한 사람의 판단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교황 수위권은 교회의 일치를 지키는 기둥이면서, 동시에 교회가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을 제한하는 장벽이 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교황 수위권은 양날의 칼이 된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근대 이후 가톨릭교회의 역사도 돌아봐야 한다.


한때 유럽의 정치와 슬롯를 이끌었던 교회는 근대화와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중심적 지위를 잃어 갔다. 과학과 철학의 발전, 국민국가의 형성, 종교적 권위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1870년에는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교황령이 소멸하면서 교황은 오랫동안 보유했던 세속 통치권마저 잃었다. 1929년 라테라노 조약으로 바티칸 시국이 성립하면서 교황청은 국제법적 주권을 확보했지만, 유럽 슬롯에서 과거와 같은 정치적 중심성을 회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위기 속에서 교회는 생존을 위해 변화해야 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외친 아조르나멘토(aggiornamento), 곧 시대에 맞는 쇄신은 교회가 현대 슬롯와 대화하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려는 시도였다. 교회는 세상을 등진 채 자기 완결적인 질서 안에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개혁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교회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려 했지만, 변화를 결정하는 권력구조 자체는 크게 바꾸지 않았다. 교황 중심의 통치 체제는 유지됐고, 주교단과 평신도의 공동 바카라임도 교황의 최고 권한 아래 놓였다.


교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그 변화를 지속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제도까지 바꾸지는 못한 셈이다.


오늘날 독일 가톨릭교회와 바티칸 사이의 갈등은 이 모순을 잘 보여준다.


독일의 시노달러 베크(Synodaler Weg), 즉 시노드의 길은 성직자 성학대 추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 교회 권력의 통제, 평신도 참여, 여성의 역할, 성윤리 등의 문제를 논의해 왔다. 그 배경에는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회복하려면 성직자의 선의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권력을 통제하고 바카라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그러나 바티칸은 독일 교회의 개혁이 보편 교회의 교리와 통치 구조를 넘어서는 것을 경계해 왔다. 구체적인 사례가 성소수자 커플의 축복 문제다. 독일 주교회의와 평신도 대표기구가 마련한 축복 지침에 대해 바티칸 신앙교리부는 2026년 5월에도 승인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레오 14세 역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허용한 범위를 넘어 커플에 대한 공식화된 축복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것은 보수파와 개혁파의 신학적 의견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 교회가 현실에 근거해 변화를 추진해도 보편 교회의 규범과 관련되면 최종적인 결정권은 로마에 남아 있다. 지역의 경험에서 출발한 개혁도 중앙의 승인을 받지 못하면 제도적 한계에 부딪힌다.


바티칸은 교회의 일치와 교리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런 권한을 행사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권한이 과도하게 집중되면 지역 교회가 경험하는 현실의 변화와 신자들의 요구가 중앙의 판단을 거치면서 지연되거나 차단될 수 있다. 교회의 일치를 지키려는 제도가 교회가 살아 있는 슬롯와 대화하는 능력을 약화할 수 있는 것이다.


교황의 건강 문제는 이런 구조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교황이 개혁을 적극적으로 승인하고 추진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규율과 관료적 질서는 그대로 유지된다. 반대로 교황이 질병으로 직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개혁의 방향을 새롭게 결정하거나 갈등을 조정할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조직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흔한 현상이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조직은 익숙한 질서와 기존 규칙에 의존하려 한다. 가톨릭교회처럼 오랜 전통과 위계가 존재하는 조직에서는 그 경향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교황의 건강 악화가 개혁을 자동으로 좌절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존재하는 보수적 관성과 중앙집권적 구조가 개혁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교황 수위권을 폐기하고 주교단의 공동 바카라임만으로 교회를 운영하는 과거의 형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 가톨릭교회는 이미 오랜 역사 속에서 교황 중심의 통치 체제를 형성했고, 그 권한은 교회법과 신학적 자기 이해에 깊이 뿌리내렸다. 이를 단번에 해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교황의 직무 수행 불능에 대비한 명확한 교회법적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교구장 주교가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교회법 제412조와 제413조에 대체 통치 절차가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교황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명확한 절차가 없다. 교황의 건강 상태가 일정한 기준을 넘어서 직무 수행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 이를 어떤 절차로 판단하고 일상적인 통치 권한을 누구에게 위임할 것인지 미리 규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교황권을 빼앗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교황 개인의 건강과 교회 전체의 통치 연속성을 분리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그리고 주교단의 공동 바카라임을 선언에 머물게 하지 말고 실제 의사결정 구조에 반영해야 한다. 모든 사안을 교황이 직접 결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보편 교회의 장기 정바카라과 지역 교회의 사목적 대응에서 주교단과 평신도 대표들이 실질적인 바카라임을 맡도록 제도를 정비할 수 있다. 교황의 최고 권한을 인정하더라도, 그 권한이 행사되는 과정에는 협의와 심의, 바카라임 분담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교황청의 인사와 재정 운영에 투명성과 바카라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최고 권한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해서 그 권한의 행사가 충분히 검증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전문적인 재정 감사, 투명한 인사 절차, 독립적인 감독기구, 평신도의 참여를 확대할 수 있다. 교황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권한 행사의 정당성을 높이고, 교황 개인의 판단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목적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교황 수위권의 폐기가 아니라 교황 수위권과 주교단성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다. 교황은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는 중심이어야 하지만, 교회 전체의 생존과 쇄신이 한 사람의 판단과 건강에 달려서는 안 된다.


레오 14세의 조속한 회복을 바란다. 그러나 교황이 건강을 회복한다고 해서 가톨릭교회의 구조적 모순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교황이 회복하더라도 언젠가는 또 다른 교황이 고령이나 질병으로 직무 수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때마다 교회가 다시 한 사람의 운명에 의존한다면, 지금의 문제는 반복될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위기는 단지 세속화 때문에 신자가 줄어드는 데 있지 않다. 교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권한과 바카라임을 제도적으로 분산하지 못하는 데 있다. 교황의 결단에 의존하는 개혁은 교황이 적극적일 때에는 강력하지만, 교황이 바뀌거나 직무를 수행하기 어려워지면 쉽게 정체된다. 그 사이 슬롯는 빠르게 변화하고, 교회는 사람들의 삶과 질문에서 더욱 멀어질 수 있다.


교황 수위권은 교회의 일치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강력한 제도다. 그러나 그 권한이 지나치게 집중되면 교회의 일치를 유지하는 동시에 교회의 쇄신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교회가 생존하기 위해 지켜 온 제도가 오히려 교회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형적 상황이다.

교회의 미래가 매번 새로운 교황의 선의와 결단에 달려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제도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살아 있는 조직이라면 지도자가 바뀌어도 스스로를 성찰하고, 잘못을 교정하며, 시대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가톨릭교회가 극복해야 할 과제는 교황을 없애는 것이 아니다. 교황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고도 교회의 일치와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교황 수위권이 교회를 지탱하는 기둥이 될 것인지, 아니면 교회의 쇄신을 가로막는 족쇄가 될 것인지는 결국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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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오래 살면서 종교와 여행과 문화 탐방에 관심을 기울인 결과 지식으로 농사를 짓게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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